• 한국문화사
  •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 제2장 상상의 틀, 여행의 수단
  • 3. 탐승 관광과 관광 열차의 등장
  • 탐승 관광이라 불린 테마 관광
성주현

꽃 관광은 당시 벚꽃 또는 복숭아꽃 관광이 가장 유명하였다. 벚꽃 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곳은 인천 월미도, 원산 송전만, 광주 공원, 진해, 서울 우이동, 개성, 군산 등지였다. 그래서 벚꽃 관광 계절이 되면 철도국은 관도 열차(觀桃列車), 관앵 열차(觀櫻列車), 관화 열차(觀花列車)라는 특별 또는 임시 관광 열차를 편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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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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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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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은 벚꽃뿐 아니라 고려의 왕도로 역사적 문화 유적도 적지 않아 1910년대부터 많은 관광객이 찾아들었다. 이에 따라 철도국에서는 특별 관광 열차를 편성하였고,135)「개성도(開城桃)와 임시 열차(臨時列車)」, 『매일신보』 1912년 5월 1일자. 개성 유지들은 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관앵회(觀櫻會)를 조직하기도 하였다.136)「개성 관도 특별 열차(開城觀桃特別列車)」, 『매일신보』 1913년 5월 4일자. 1912년 개성 벚꽃 관광 열차는 남대문역을 오전 9시 출발하여 10시 45분에 개성역에 도착하였으며 꽃구경과 선죽교 등 고려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고 오후 3시 15분에 개성역을 출발 6시에 남대문역으로 돌아왔다.137)「개성도와 임시 열차」, 『매일신보』 1912년 5월 1일자. 1920년에 편성된 임시 도화 열차는 갈 때는 남대문역을 오전 9시 8분에 출발하여 10시 5분에 개성역에 도착하였으며, 돌아올 때는 개성역을 오후 4시 10분에 출발하여 6시에 남대문역에 도착하였다. 요금은 왕복으로 대폭 할인하였는데, 3등칸은 1원 50전, 2등칸은 2원 50전이었다.138)「임시 도화 열차(臨時桃花列車)」, 『동아일보』 1920년 5월 2일자. 또한 1921년 편성된 관화 열차는 용산역에서도 출발하였는데, 용산역에서 오전 8시 15분에 출발하여 남대문역을 8시 40분에 경유한 다음 개성역에는 10시 35분에 도착하였다.139)「관도 열차 운전(觀桃列車運轉)」, 『동아일보』 1921년 4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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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화 열차 운행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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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이동 벚꽃 관광은 경원선 창동역을 이용하였는데, 매년 5월경 벚꽃이 만개하면 철도국에서 3월부터 관광 열차를 준비하였다.140)「관앵 열차 준비(觀櫻列車準備)」, 『매일신보』 1917년 3월 8일자. 1915년에 편성된 관앵 열차는 남대문역을 오전 8시 43분에 출발하여 용산역에는 8시 52분에, 창동역에는 9시 25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열차는 창동역을 오후 4시 24분에 출발하여 용산역에는 5시 3분에, 남대문역에는 5시 19분에 도착하였다. 또한 관앵 열차를 이용할 경우 운임도 남대문에서 창동역은 64전에서 45전으로, 용산역에서 창동역은 65전에서 45전으로 대폭 할인하였다. 그뿐 아니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나무 아래 천막을 치는 등 휴게 시설을 마련하기도 하였다.141)「관앵 열차」, 『매일신보』 1915년 4월 20일자. 그리고 1920년에 편성된 관앵 열차는 남대문역을 오전 8시 45분에 출발하여 창동역에는 9시 40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열차는 창동역을 오후 4시 20분에 출발하여 5시 35분 남대문역에 도착하였다.142)「관앵 열차 운전」, 『동아일보』 1920년 4월 21일자. 1921년에 운행된 관화 열차는 기존의 남대문역·용산역·창동역에 청량리역이 추가되었다. 운행 시간을 보면 남대문역을 오전 8시 45분에 출발, 용산역은 8시 58분, 청량리역은 9시 31분에 경유하여 창동역에는 9시 46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은 창동역을 오후 5시 15분에 출발하여 청량리역은 4시 35분, 용산역은 5시 5분에 경유하여 남대문역에는 5시 15분에 도착하였다.143)「관화 열차 운전」, 『동아일보』 1921년 4월 19일자. 당시 청량리역이 추가된 것은 관광객이 그만큼 많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광주 공원의 벚꽃 또한 유명하여 밤에 찾는 관광객을 위해 전등을 가설하기도 하였는데, 당시의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호남 지방에서 꽃동산으로 유명한 광주(光州) 공원의 벚꽃은 벌써부터 피기 시작하였으므로 17, 8일경에는 만개되리라 한다. 그런데 이곳 동산에다가 수만 족의 전등을 가설하였으므로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의 장관을 이루어 매일 매야(每夜) 수만 관객의 발자취가 끌지 아니 한다고 한다. 철도국에서와 남조선 철도 주식회사에서는 일반 관객의 편의를 돕기 위하여 전남 도내 어느 지방에서든 물론하고 광주 왕복에는 3할인을 할 뿐 아니라 16일부터 20일까지에는 광주에서 밤 9시 반에 떠날 수 있도록 임시 열차를 운전한다고 한다.144)「광주 벚꽃 17, 8일 만개(滿開)」, 『동아일보』 1933년 4월 15일자.

광주 공원의 벚꽃 관광은 철도국과 남조선 철도 주식회사에서 꽃이 만개하기 이전인 16일부터 20일까지 5일 동안 임시 관광 열차를 편성하여 좀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뿐 아니라 관광객이 흥미를 돋울 수 있게 전등을 설치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들 지역 외에도 벚꽃으로 유명한 곳은 원산 송전만(松田灣)이었다. 송전만은 원산만 북쪽에 있는 호도 반도의 남서각과 송전 반도의 주항만 사이에 형성되어 있으며, 자연적으로도 “해수가 깊이 침입하여 연하묘애(煙霞杳譪)한 것은 구름인가 바다인가 하는 의심을 생케 한다.”고145)김춘국, 「대육적 경취로 본 원산항의 풍광」, 『개벽(開闢)』 54, 1924. 12, 90쪽. 할 정도로 풍광이 매우 좋은 곳이었다. 이곳이 벚꽃 관광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였다. 동아일보사 진흥 지국(鎭興支局)에서 창간 10주년을 맞는 1930년 4월 독자와 더불어 격의 없는 간담(懇談)으로 의의 있게 보내기 위해 송전만 견학단(見學團)을 조직하였다. 송전만 견학단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1. 일시 : 1930년 4월 27일(음 3월 29일, 일요일) 오전 7시 진흥발(鎭興發, 집회는 본 지국으로) 당일 귀환

1. 장소 : 송전만 감화원

1. 신청 : 4월 23일(음 3월 25일)까지

1. 회비 : 매인당 1원씩(신청 시 첨부할 일, 점심 제공)146)「앵화(櫻花)로 유명(有名)한 송전만 견학단(松田灣見學團)」, 『동아일보』 1930년 4월 16일자.

진흥 지국은 이후 연례행사로 송전만 앵화 관광단을 조직하여 벚꽃 관광을 하였다.147)「앵화 관광단 모집(櫻花觀光團募集)」, 『동아일보』 1931년 4월 9일자 ; 「진흥(鎭興)서 모집(募集)하는 앵화 관광단(櫻花觀光團)」, 『동아일보』 1931년 4월 19일자 ; 「앵화 관광단」, 『동아일보』 1931년 5월 1일자 ; 「송전만 영흥교 앵화 관광 대회(櫻花觀光大會)」, 『동아일보』 1932년 4월 26일자 ; 「송전만 견학 성황」, 『동아일보』 1932년 5월 1일자 ; 「송전만 관앵단 모집」(광고), 『동아일보』 1934년 5월 2일자 ; 「앵화 관광단 모집」, 『동아일보』 1936년 5월 2일자. 1932년 진흥 지국의 송전만 벚꽃 관광은 경원선 마장역의 후원으로 영흥 학교(永興學校)에서 관앵 대회(觀櫻大會)라는 명칭으로 실시하였으며,148)「송전만 영흥교 관앵 대회 개최」, 『동아일보』 1932년 4월 26일자 ; 「앵화 관광단 모집」, 『동아일보』 1931년 4월 9일자 ; 「송전만 견학 성황」, 『동아일보』 1931년 5월 5일자. 1936년에는 영흥 지국과 공동으로 진행하였다.149)「송전만 관앵단 모집」(광고), 『동아일보』 1936년 5월 2일자. 송전만 벚꽃 관광은 동아일보사 고원 지국에서도 관앵단(觀櫻團)을 조직하여150)「송전만 감화원 관앵단 모집」, 『동아일보』 1936년 5월 4일자. 오전 6시 30분에 고원역을 출발하여 오후 8시에 돌아오는 코스였다.151)「송전만 관앵단 모집」(광고), 『동아일보』 1936년 5월 7일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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