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2권 여행과 관광으로 본 근대
  • 제2장 상상의 틀, 여행의 수단
  • 3. 탐승 관광과 관광 열차의 등장
  • 일제 강점기에도 유명했던 진해 벚꽃 관광
성주현

일제 강점기에도 벚꽃 관광은 어느 곳보다 진해가 가장 유명하였다. 진해에서는 벚꽃 만 여 그루를 10여 거리에 나란히 심어 조성하였는데, 벚꽃이 활짝 필 때는 “노을과 같고 흰 눈과 같은 꽃의 터널”이라고 하였다.152)小西榮三, 「朝鮮鐵道沿線案內」, 『朝鮮·滿洲·支那案內』, 聖山閣, 1930, 84쪽. 진해 벚꽃 관광은 주로 부산, 마산, 창원 등 남부 지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았다. 1929년 동아일보사 김해 지국에서 모집한 벚꽃 관광단 관련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본보 경남 김해 지국에서는 오는 4월 망간(望間) 만화(萬化)가 방창(方暢)할 시기를 택하여 지방 인사의 관광단을 조직하여 마산, 진해, 부산 등지의 관앵(觀櫻) 및 승지(勝地)를 견학하겠다는데, 중간 노정 및 숙박은 최초 당지에서 자동차로서 유림역(楡林驛)을 향하여 마산 방면을 구경하고, 오후 기선(汽船)으로 진해로 향하여 1박 후, 그 익일에 해군 요새 일반을 견학하고 그날 오후 부산으로 향하야 온천장(溫泉場)에서 1박 후 부산 형무소, 기타 관청, 회사, 연락선, 항만을 일주 견학한 후 오후 4시 반 열차로 귀김(歸 金)할 예정인 바, 좌기(左記) 요령에 의하여 신속 신청을 요망한다더라.

1. 출발 일정 4월 15일(변경이 유할 시는 다시 발표)

1. 신청 4월 10일까지 본보 지국으로

1. 회비 매인 6원씩

1. 인원 성년 이상 남녀 약 30명153)「진해, 부산 등지의 관광단 모집」, 『동아일보』 1929년 3월 28일자 ; 「관앵 급 견학단 모집(觀櫻及見學團募集)」(광고),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

진해 벚꽃 관광은 벚꽃 구경뿐만 아니라 마산, 진해, 부산 등지의 명승지와 해군 시설, 관공서, 온천장 등 다양한 볼거리와 기차, 배, 자동차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한 종합적인 테마 관광이었다. 이 관광단의 비용은 처음에는 6원이었으나 조기에 신청할 경우에는 50전을 할인하여 5원 50전으로 내리기도 하였다.154)「부산 관광단 회비를 감하」, 『동아일보』 1929년 3월 31일자. 한편 동아일보사 마산 지국과 근우회(槿友會) 마산 지회에서는 부인 견학단을 조직하여 진해 벚꽃 관광에 나서기도 하였다.155)「제2회 마산 진해 부인 견학 단원 모집」(광고), 『동아일보』 1929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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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관북 서수라의 앵화산(櫻花山),156)「관북 탐승 성황」,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 1935년 5월 25일자. 대전의 유성 온천,157)「앞을 다투는 탐화객(探花客) 유성 온천에 운집」, 『조선중앙일보』 1934년 4월 29일자. 그리고 성진·부산·평양도 꽃 관광으로 유명하였으며, 임시 또는 특별 열차를 편성하여 관광객을 유치하였다.158)「봄소식! 꽃 시절을 앞두고 쇄도할 관광객」, 『조선중앙일보』 1935년 3월 17일자. 또 경성도 비원(秘苑), 우이동, 장충단(奬忠壇) 등지의 벚꽃이 유명하여 지방에서 관광단을 조직한 다음 열차를 이용하여 관광을 오기도 하였다.159)「관화 시절(觀花時節)의 단속(團束)」, 『동아일보』 1921년 4월 21일자 ; 「경성 관앵단 모집(京城觀櫻團募集)」 및 「경성 시찰 단원 모집(京城視察團圓募集)」, 『조선중앙일보』 1934년 4월 24일자 ; 「서울로 서울로 관광객 사태」, 『조선중앙일보』 1935년 4월 17일자 ; 「부산 대구에서 관광객 천오백」, 『조선중앙일보』 1935년 4월 21일자. 철도국에서는 각지에서 경성으로 오는 특별 관광객을 위해 부산에서 오전 9시 20분, 대구에서 오전 7시 55분, 성진에서 오전 7시 35분, 원산에서 오전 7시에 각각 임시 열차를 편성하기도 하였다.160)「꽃구경 임시 열차」, 『동아일보』 1935년 4월 46일자.

특히 벚꽃 관광의 경우 관광객에게 바가지를 씌우며 호객하는 행위를 단속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관광지에서의 물건 값을 맥주 1병 75전, 사이다 1병 30전, 일본 비빔밥 1인분 50전, 점심 상등 1원 보통 70전, 좌석 값 30전, 과자 1인분 30전으로 각각 정하기도 하였다.161)「관화 시절의 단속」, 『동아일보』 1921년 4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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