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1장 나라 이름과 왕 이름에 담긴 의미
  • 4. 국왕을 국왕답게 하는 이름들
  • 황제의 칭호, 제호
신명호

제호(帝號)란 글자 그대로 ‘황제의 칭호’라는 뜻이다. ‘황제’라는 칭호는 진시황제 때부터 시작되었다. 진시황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진나라의 왕이었는데, 중국을 통일한 후 진시황은 “지금 명호(名號)를 고치지 않으면, 공을 성취한 것을 나타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전할 수 없다.”고 하여 명호를 고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왕 대신에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진시황은 황제가 죽은 후 신료들이 황제의 일생을 평가하여 시호(諡號)를 올리는 것은 참람(僭濫)하다고 하여 시호법 자체를 없애 버렸다. 대신 자신이 최초의 황제이므로 시황제(始皇帝)가 되고 후대 황제는 2세 황제, 3세 황제 등으로 부르게 하였다.24)사마천, 『사기』 권6, 진시황본기 제6. 하지만 진나라가 멸망한 후 왕조가 바뀌 면서 이런 방법으로는 황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황제에게도 특정한 황제를 지칭하는 제호를 붙이게 되었다. 이후로 제호는 황제의 칭호를 상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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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장조정조순조익종추존의궤(太祖莊祖正祖純祖翼宗追尊儀軌)』
『태조장조정조순조익종추존의궤(太祖莊祖正祖純祖翼宗追尊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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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서 최초의 제호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에 나타났다.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한 후 다섯 명의 조상을 황제로 추숭(追崇)하였던 것이다. 그 대상자는 태조를 비롯하여 장종(莊宗, 사도 세자), 정종(正宗, 정조), 순조(純祖), 익종(翼宗)이었다. 이 다섯 명 중에서 태조와 순조를 제외한 세 명은 묘호를 장조(莊祖), 정조(正祖), 문조(文祖)로 바꾸었다. 아울러 다섯 명 전부에게 제호를 새로 올렸으며 그들의 황후에게도 시호를 올렸다.25)『고종실록』 권39, 고종 36년(1899, 광무 3) 12월 7일.

당시 제호와 함께 황후들의 시호가 새로 올려졌다는 사실은 제호가 일종의 시호였음을 암시한다. 다만 기왕의 시호가 일생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었다면, 제호는 황제로서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한 시호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조선시대 왕에게는 일생을 평가하는 시호, 국왕으로서의 업무를 평가하는 묘호가 있었는데, 대한제국이 되면서 황제의 공덕을 찬양하는 제호가 하나 더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대한제국기의 제호도 묘호와 마찬가지로 신료들이 세 가지를 추천하면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 결정하였다. 예컨대 태조의 경우에는 제호로서 ‘고황제(高皇帝)’, ‘순황제(純皇帝)’, ‘열황제(烈皇帝)’ 세 가지가 추천되었다. 이 중에서 고종 황제가 ‘고황제’를 선택함으로써 태조는 ‘고황제’가 되었다. ‘고황제’의 ‘고’란 ‘기강을 만들고 표준을 세웠다.’라는 뜻으로 태조의 공덕을 찬양하는 글자였다. 태조 고황제의 왕비인 신의 왕후(神懿王后)와 신덕 왕후(神德王后)에게도 ‘고황후’라고 하는 시호를 올렸으며 뜻은 동일하였다.

같은 방식으로 해서 장조에게는 ‘의황제(懿皇帝)’, 정조에게는 ‘선황제(宣皇帝)’, 순조에게는 ‘숙황제(肅皇帝)’, 문조에게는 ‘익황제(翼皇帝)’라는 제호를 올렸으며 그들의 황후에게도 시호를 올렸다. 이들 다섯 명을 추존(追尊) 황제로 삼고 제호를 올린 것은 대한제국이 명실상부한 황제국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으며, 그 결과 제호는 황제의 대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 예컨대 선황제라고 하면 바로 정조를 지칭하였다. 이어서 순종 황제 때에 진종에게 ‘소황제(昭皇帝)’, 헌종에게 ‘성황제(成皇帝)’, 철종에게 ‘장황제(章皇帝)’를 제호로 올림으로써 대한제국기에 모두 여덟 명의 추존 황제가 탄생하게 되었다.

살아서 황제로 군림하였던 고종과 순종은 승하(昇遐)한 후에 제호를 받았다. 고종 황제는 태황제(太皇帝)라는 제호를 받았고 순종 황제는 효황제(孝皇帝)라는 제호를 받았다. 이렇게 조선시대의 국왕 중에 제호를 받은 황제는 모두 열 명인데,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기에 탄생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제호는 대한제국기의 황제 체제를 상징하는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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