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3장 궁궐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 4. 내시
  • 내시와 환관
박홍갑

원래 환관은 거세된 남성이나 궁정에서 봉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고대 중국은 물론이고, 서양 문명의 모태가 된 그리스와 로마에도 환관이 존재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근세까지 환관 제도가 지속되었던 동양 문화권과 달리 유럽에서는 곧 소멸되고 말았다. 이는 기독교 영향 때문이었다.

환관에 대한 기원을 찾다보면, 고대 아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 등지에서 다양한 거세 방법이 개발된 적이 있고, 중국에서도 이미 갑골 문자(甲骨文字)에 환관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으니, 인류 역사상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환관이 존재하였음이 분명하다. 특히 전제 군주 국가에서 왕은 한결같이 수많은 후궁과 시녀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여 정절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바로 거세한 남성이었다.

중국은 나라 규모가 커서 그런지는 몰라도 명나라 말기에 환관이 10만 명이나 될 정도였고, 청나라 때에도 1만 3000명 내외의 환관이 활동하고 있었으니, 가히 환관의 나라라 할 만하다. 또한 이들의 권력과 횡포가 황제를 능가하는 일도 있어서, 환관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휘청거리는 때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고려 말에도 원나라로 팔려갔던 환관이 고국의 정치를 좌우한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이렇듯 동양권에서의 환관 제도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주로 보이고, 또 멀리 베트남에서도 환관이 있었다고 전한다. 더 넓게는 인도나 터키 같은 곳에서도 환관이 존재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일본만은 환관의 존재를 찾아볼 수 없다. 환관 제도가 정착할 만한 왕조 국가가 성립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무사 계급이 정권을 유지하였기 때문에 크게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다. 중국, 한국, 베트남은 왕조 국가에다 문신(文臣)을 우대하는 사회였고, 세계 여러 국가 중에서도 보기 드물게 과거 제도를 오랜 기간 실시한 나라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나타난 환관 명칭은 내시(內侍), 내관(內官), 내환(內宦), 환수(宦竪), 환자(宦者), 화자(火者), 엄인(閹人), 엄관(閹官), 총환(寵宦), 혼수(閽竪) 등 너무나 다양하여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 화자는 거세된 남자의 마지막 수술 과정에서 불로 마무리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내시부(內侍府)가 있던 곳은 오늘날 청와대 옆 효자동이다. 한성 북부 순화방(順化坊)에 효자로 이름난 문신 조원(趙瑗)의 아들 형제가 살아 효곡(孝谷)이라 불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효자동이 되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내시들이 집단적으로 살아 화자동(火者洞)이라 불렀던 것을 나중에 발음이 비슷한 효자동으로 개명하였다는 설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으로 환관보다는 환자(宦者)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조선 전기에 들어와서 내관이나 환관이란 말을 주로 쓰다가,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이들과 함께 내시라는 용어가 정착되어 갔다.110)장희흥, 『조선시대 환관 연구』, 동국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3. 고려시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내시는 궁중 숙위(宮中宿衛)와 근시(近侍)를 맡은 국왕 측근 세력을 가리키는 말이니, 오늘날 대통령 경호실의 역할을 맡은 자 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시와 성격이 다르니 유의해야 한다. 고려 의종 때 환관들이 정치 세력화하면서 궁중 숙위를 맡은 내시직 진출이 빈번하였고, 조선 세조 때 와서 근시 기구였던 내시원(內侍院)이 폐지되면서부터 내시라는 용어를 환관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엄밀하게 말한다면 내시와 환관은 출발부터 달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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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의 내시
기산풍속도의 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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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을 이해하였다 할지라도, 환관보다는 내시란 용어가 좀 더 친숙한 느낌이다. 이는 필자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환관이라 부를 때면 왠지 중국 역사에서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며 탐욕을 일삼아 나라를 위태롭게 하던 장면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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