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원

앞서 열거한 국가 전례서가 왕실의 각종 행사를 위한 시행 세칙(施行細則) 혹은 틀을 제시한 것이라면, 의궤(儀軌)는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 모시(某時)에 있었던 실제 행사의 전모를 기록한 행사 보고서 성격의 책이다.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의 진행 과정, 소요된 재용, 인원, 의식 절차, 행사 후의 논상(論賞) 등을 기록해 놓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전교(傳敎)·계사(啓辭, 임금에게 올리는 문 서를 모은 것)·이문(移文, 동등한 관청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내관(來關, 관련 관청에서 해당 관청으로 보내는 공문서)·감결(甘結, 상급 관청에서 하급 관청으로 보내는 공문서) 등 상하 또는 동급 관청 간의 각종 공문서 내용, 소요 인원, 물자의 조달과 배정, 경비의 수지(收支), 영조(營造) 기물(器物)의 설계 및 공작, 각종 반차도(班次圖), 행사 유공자의 포상, 행사에 참여한 음악인과 무용인의 명단 등이 기록되었다. 의궤의 제작 부수는 일반적으로 어람용(御覽用) 1부와 예조·춘추관·강화부·태백산 사고·오대산 사고·적상산 사고 등에 보관하는 각 1부 등으로 9부 내외였다. 현재 의궤가 소장되어 있는 곳은 규장각(奎章閣)과 장서각(藏書閣), 프랑스 파리 국립 도서관, 일본 궁내청(宮內廳)이다. 프랑스에 있는 것은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외규장각(外奎章閣) 있던 것을 약탈해 간 것이고, 일본에 있는 것은 1920년대에 일제가 빼앗아 간 것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와 정조의 생부 사도 세자가 회갑을 맞는 1795년(정조 19)에 새 롭게 건설한 신도시 화성(華城, 지금의 수원)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중심으로 여드레 동안 있었던 행사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¹⁸⁰⁾『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반차도(班次圖)를 보면 이때 어가를 따라간 인원은 1,779명(이 중 악대가 115명), 말은 779필이다. 그러나 의궤 기록을 보면 거둥에 동원된 실제 인원은 6,000여 명에 달한다. 정조의 원행(園幸)은 자식으로서의 효심을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으나 한편으로 자신의 위업을 과시하고 정치 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성에서 치른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는 바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다. 이 행사는 화성에 행차한 지 닷새째인 윤2월 13일 진정(辰正) 3각(오전 8시 45분경)에 화성의 봉수당(奉壽堂)에서 열렸다. 이때의 연향은 제7작까지 올리는 규모였고, 매 작이 올려질 때마다 각종 정재가 공연되었다. 이때 연행된 음악과 무용은 표 ‘봉수당 진찬에서 연행된 악무’와 같다.

물론 이러한 모든 행사는 왕과 혜경궁 홍씨가 참여하는 가운데 예행연습(豫行演習)을 거친 것이다.¹⁸¹⁾『원행을묘정리의궤』 권수(卷首), 택일(擇日). 乙卯閏二月十一日, 親臨奉壽堂, 行進饌習儀. 그러한 연습을 거친 후 본 행사인 회갑연에서 베푼 각종 정재와 음악의 내용이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요컨대 의궤는 각종 행사의 전모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현장성 있는 행사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