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3권 다양한 문화로 본 국가와 국왕
  • 제5장 왕실 행사와 전례 음악
  • 3. 왕실 행사의 음악 기록
  • 왕실 행사를 위한 악장 모음집
송지원

악장(樂章)이란 제향이나 연향 등의 국가 전례에 사용하는 노랫말을 이른다. 조선 초기에 정도전(鄭道傳), 하륜(河崙) 등의 개국 공신이 납씨가, 정동방곡, 근천정(覲天庭) 등 개국을 송축하는 악장을 새로 지어 악관(樂官)으로 하여금 관현(管絃)에 올려 연주한 이래 조선시대에 악장의 전통은 계속 이어졌다. 따라서 대부분의 악장에서는 왕의 공덕을 송축하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러한 전통은 “한 왕이 일어나면 반드시 그 왕의 음악이 제정되고, 훌륭한 임금은 공(功)을 이루고 정치를 안정케 한 후 음악을 만들어 모두 각각 그 덕(德)을 형상화한다.”는186)『증보문헌비고』 권90, 악고1. 一王之興, 必有一王之樂 …… 古之聖王, 功成治定, 制爲聲樂, 皆各象其德. 의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한 곡을 이를 때 ‘성(成)’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도 왕이 이룬(成) 업적을 기리는 맥락이다.

조선시대 국가 전례에 쓰는 악장을 모아 엮은 악장 모음집 형태의 책 가운데 현전하는 가장 이른 것은 17세기 후반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악장가사(樂章歌詞)』이다. 물론 『악장가사』 이전의 것으로 『세종실록악보』, 『세조실록악보』, 『악학궤범』 등의 관찬(官撰) 악보와 악서가 있고, 『금합자보(琴合字譜)』(1592)·『양금신보(梁琴新譜)』(1610) 등의 민간 악보집에도 악장이 실려 있다. 그러나 소위 ‘악장 모음집’의 성격을 갖는 것은 『악장가사』가 가장 이르다. 『악장가사』에는 속악을 쓰는 종묘(宗廟)·영녕전악가(永寧殿樂歌)와 여민락·보허자·감군은 등의 연향 관련 악가, 풍운뢰우·사직·선농·선잠·문선왕 등의 아악을 쓰는 제향 악가 등이 실려 있어 국가 전례에 쓰는 악장을 모아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악장가사』 이후의 악장 모음집은 1765년(영조 41) 영조의 명에 의해 서명응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국조악장(國朝樂章)』이 있다. 『국조악장』에는 종묘악장(宗廟樂章), 문소전악장(文昭殿樂章), 열조악장(列朝樂章), 열조상존호악장(列朝上尊號樂章), 열조추상존호악장(列朝追上尊號樂章), 진풍정악장(進豊呈樂章), 조회례연의통용악장(朝會禮宴儀通用樂章), 친경악장(親耕樂章), 관예악장(觀刈樂章), 친잠악장(親蠶樂章), 대사례악장(大射禮樂章) 등 영조대의 국가 전례에 쓰이는 악장이 수록되어 있다. 영조의 발문(跋文)에도 있듯이 “주(周)나라의 아송(雅頌)과 표리(表裏)를 이룬다.”고 평가할 만큼 자부심을 가졌던 악장 모음집이다.

영조 이후에 편찬된 악장 모음집은 1781년(정조 5)에 정조가 직접 범례를 만들고 서명응에게 편찬을 명하여 이루어진 『국조시악』이 있다. 『국조시악』은 정조가 집권 초반에 추진한 악학 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된 악장 정비 사업의 하나로 이루어진 악장 모음집이다. 영조대에 편찬한 『국조악장』이 『열성지장(列聖誌狀)』과 『악학궤범』 등의 책에 실린 것을 베껴 써서 세대별로 순서를 매기기만 하고, 또 아악과 속악이 나뉘어 있지 않으며 풍운뢰우악장(風雲雷雨樂章)이 빠졌고, 부묘악장(祔廟樂章)은 없는데 있다고 하는 등 잘못된 점이 많아 후세에 제대로 전해지지 못할 것이 우려되어187)정조, 『홍재전서』 권179, 군서표기(群書標記), 어정(御定), 국조시악(國朝詩樂). 정조가 직접 범례를 만들어서 아악(雅樂)·속악(俗樂)·당악(唐樂)·향악(鄕樂)·요가(鐃歌)의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편찬한 것이 『국조시악』이다. 또 『국조악장』과 달리 각 악장의 아래에 악장을 지은 연월과 잘못된 시말(始末)에 대한 주를 달아 놓았고, 악장의 변천 과정이나 의의, 악장의 이정(釐正)에 대해 오간 논의, 그간 잘못되었던 점 등을 세주(細註)로 기록하여 악장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전에 나오는 악장 모음집과 크게 구분되는 새로운 형태의 자료로 평가된다.

정조대의 『국조시악』 이후 악장 모음집 형태로 나온 것은 1847년(헌종 13)에 홍경모(洪敬謨)가 편찬한 『국조악가(國朝樂歌)』이다. 『국조악가』는 이전에 만든 악장 모음집과 여러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 당시 국가 전례가 행해지는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악장을 모으고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홍경모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은 악장의 형태를 찾아 제시하는 방식으로 만든 악장 모음집이라는 면에서 그러하다. 이는 특히 종묘악장과 대보단악장, 중국 고대 악장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국조악가』 이후에는 악장 모음집으로 편찬된 것은 없으나 1897년(광무 1)에 만든 악서인, 유중교(柳重敎)의 『현가궤범(絃歌軌範)』에 수록된 악장(樂章)이 주목된다. 『현가궤범』은 성리설과 척사 의리론(斥邪義理論)에서 한말 도학자로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유중교의 음악론이 반영된 악서인데, 한말의 사회적 동요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유학의 학문적 심화에 있다고 보는 저자의 학문관과 결합하여 자신이 제시한 음악을 현실에 실행하고자 하는 의도로 만들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유중교는 결국 자신의 문도(門徒)를 중심으로 이를 실행에 옮기기도 하였다.

이상과 같은 조선시대의 악장 모음집이나 악서 외에도 국가적 규모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류나 국가 전례서에 시기별로 각 악장이 아울러 수록되어 있으므로 이들 문헌을 참고하면 악장의 내용, 음악, 연주자들의 명단도 함께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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