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2장 조선시대 성리학의 발전
  • 5. 여성의 성리학
  • 임윤지당의 성리학과 수양론
이영춘

임윤지당은 영·정조대에 강원도 원주에서 살았던 여성 유학자였다. 그녀는 일평생 유교 경전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우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심오한 원리를 체득하였다. 그리고 부단한 수양과 도덕적 실천으로 높은 인격을 완성하여 달관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연구하고 체득한 것을 『윤지당유고(允摯堂遺稿)』라는 문집으로 남겼다.80)임윤지당의 생애와 사상은 이영춘, 『임윤지당-국역 임윤지당유고-』, 혜안, 1998 참고.

임윤지당은 저명한 성리학자였던 녹문(鹿門) 임성주의 여동생이며, 운호(雲湖) 임정주(任靖周)의 누님이었다. 8세 때 부친을 여의고 녹문에게서 『효경(孝經)』, 『열녀전(列女傳)』, 『소학』, 사서(四書) 등의 유교 경전과 사서(史書) 등을 학습하였다. 윤지당은 19세(1739)에 원주의 선비 신광유(申光裕)에게 시집갔다. 결혼한 지 8년 만인 27세에 부군을 사별하고(1747), 일생 동안 존심양성하는 공부를 쌓았다. 결혼한 초기에는 가사에 전심하였으나, 만년에는 독서와 저술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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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당유고』
『윤지당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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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문집인 『윤지당유고』에는 성리학적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설(說) 여섯 편과 경전 연구서인 ‘경의(經義)’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기심성설’, ‘인심도심사단칠정설’, ‘예악설(禮樂說)’, ‘극기복례위인설(克己復禮爲仁說)’, ‘치란재득인설(治亂在得人說)’, ‘오도일관설(吾道一貫說)’ 등이 그것이다. 이들 저술에는 그녀의 이기론, 심성론, 사단칠정론, 인물성동이론, 예악론, 정치론 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경의’ 두 편은 각기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석서인데, 중요한 장구마다 간단하게 설명을 붙이고 자신의 해석과 지론을 붙인 것이다.

윤지당은 사람이 천지 중도(中道)의 바른 기품을 받아 그 사이에서 생장하여 만물의 으뜸이 된 것으로 인식하였다. 이와 같이 윤지당은 인간의 존재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보편적 인격의 실현과 심성의 수련이란 측면에서 윤지당은 남녀 간에 차별을 두지 않았다. 그는 남자와 여자의 존재를 음양의 우주 질서와 같이 상호 보완적인 존재로 파악하였다. 남녀는 우주와 사회에서 똑같이 중요한 필수적 존재이지, 서로 간에 우열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지당은 그 자신이 성현을 배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노력하였다. ‘극기복례위인설’에서, 그녀는 “내가 비록 부인이지만, 타고난 성품은 애초부터 남녀의 다름이 없다. 끝내 안연(顔淵)이 배운 것을 성취 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성인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마음만은 간절하다.”라고 소신을 피력하였다.

윤지당은 태극·이기설에서 이·기·태극을 거의 일원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주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심성에 작용하는 것은 오직 담일(湛一)한 하나의 기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즉, 그녀는 기의 근본을 담일한 것으로 보았고, 그것을 이와 일체로 보았던 것이다. 이 점은 오빠인 임성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윤지당은 ‘예악설’에서 예의 실천을 매우 강조하였다. 그녀는 모든 예법이 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였지만, 특히 관혼상제(冠婚喪祭)는 예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가례』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윤지당은 여성의 보편적 심성 수련과 예의범절의 습득을 강조하였고, 학문과 문예에서 재능 있는 여성을 존중하였다. 또 춘추대의(春秋大義)와 명분을 숭상하여 여성의 의리와 용기를 찬미하였다. 이와 같은 윤지당의 철학 사상은 조선 후기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점증하고 있던 의식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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