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3장 조선 성리학의 정치 이념과 갈등
  • 2. 성리학 경세 이념의 전개
  • 『대학』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 경세 이념의 형성
조성산

조선의 집권층은 자신의 집권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성리학의 정치 이념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은 통치 질서와 사회 질서 전 분야에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일이었다. 특히 그들은 『대학연의』를 통해서 군주권의 임의적인 행사를 억제하고 유교적 도덕 질서에 따른 통치 행위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성학 정치의 강조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다시 『대학연의』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낳을 수 있었다.

남송 후기 성리학이 관학(官學)으로 자리 잡고 보급되면서 성리학자 중에 국가 경영에 참여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82)남송 후기 성리학의 보급과 관학화에 대해서는 이범학, 「남송 후기 이학(理學)의 보급과 관학화(官學化)의 배경」, 『한국학 논총』 17, 국민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1994를 참조할 수 있다. 성리학자들은 국가 경영에 참여하면서 도덕 수양의 문제와 국정 운영, 곧 경세의 문제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정리해 갔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스럽게 제왕학(帝王學)에 대한 고민이 대두하였다. 군주의 심성 수련과 이를 통한 성리학의 국정 운영은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 국가를 이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선결 과제였기 때문이다.

군주의 심성 수련을 위한 학문으로 먼저 『대학』이 주목되었다. 『대학』 은 원래 『예기(禮記)』의 한 편명(篇名)이었으나 송대 주희에 의해 사서(四書)의 일부가 되면서 매우 중요한 저작으로 간주되었다. 『대학』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부터 마음을 바로잡아 궁극에는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심성론과 경세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경서이다. 여기에는 성리학이 가지고 있는 심성론과 경세 이념이 체(體)와 용(用)의 일관된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이를 통해 『대학』은 제왕학의 가장 기본적인 학문 방향을 제시하는 교과서가 될 수 있었다.

『대학』은 주희가 처음 주목한 경서는 아니었다. 일찍이 주희의 선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은 최초로 『대학』을 『예기』로부터 독립시켜 『대학광의(大學廣義)』 한 권을 주해(註解)하였고, 이를 제왕 경세의 근본으로 파악하였다. 또 그의 문인 범조우(范祖禹, 1041∼1098)는 『대학』을 제왕학의 기초 경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제학(帝學)』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하였다.83)이범학, 「진덕수(眞德秀) 경세 이념(經世理念)의 성립과 그 배경」, 『한국학 논총』 20, 국민 대학교 한국학 연구소, 1998, 158∼159쪽. 이러한 제왕학에 대한 관심 고조와 『대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통해 『대학연의』는 탄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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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수 초상
진덕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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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 후기 이종(理宗) 때의 대표적 경세 관료였던 진덕수(眞德秀, 1170∼1235)는 1229년에 『대학연의』를 완성하였다. 진덕수는 주희의 제자 첨의지(詹儀之)의 문하에서 수학한 주희의 재전 제자(再傳弟子)였다. 그는 『대학장구(大學章句)』를 통해 『대학』의 의미를 재발견한 주희의 영향을 받았다. 『대학연의』의 말뜻은 『대학』 경전의 의미를 충실히 발휘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대학연의』는 『대학』의 정치 이념과 부합하는 구체적인 역사 사례를 모아 제시함으로써 이해를 도왔다. 곧 추상적인 정치 이념과 구체적인 역사 사례를 종합하고, 기존 역사적 사건을 성리학적 입장에서 재해석하여 역사 사실을 이념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경전과 역사가 하나 된 저작이 『대학연의』였던 것이다.

『대학연의』가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략 고려 충선왕 때 원나라와 교섭하는 과정에서 유입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84)김인호, 「여말선초 군주 수신론과 대학연의(大學衍義)」, 『역사와 현실』 29, 한국 역사 연구회, 1998, 91쪽. 『대학연의』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공민왕 때 윤택(尹澤, 1289∼1370)이 경연(經筵) 교재로 이용하였다는 『고려사』가 최초이다.85)윤택에 관해서는 변동명, 「제5장 고려 후기 성리학 수용 계층의 정치 사상-윤택(尹澤)과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중심으로-」, 『고려 후기 성리학 수용 연구』, 일조각, 1995가 참조된다. 아마도 무인 정권기와 몽고 침입을 겪으면서 손상된 왕의 위상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군주관이 필요할 때 개혁파 인물들이 『대학연의』를 주목한 것이 아닌가 싶다. 『대학연의』는 도덕성 함양을 통한 성학론을 제기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학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군주 수신론(君主修身論)과 일정한 차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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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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