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3장 조선 성리학의 정치 이념과 갈등
  • 3. 성리학적 사회 사상의 확산
  • 『이륜행실도』의 보급
조성산

군신 관계로 상징되는 국가 윤리와 부자·부부 관계의 가족 윤리를 제시해 주었던 『삼강행실도』의 보급 이후 이에 대한 보완으로 새로운 윤리 질서가 등장하였다. 이는 붕우(朋友) 간의 윤리와 장유(長幼)의 윤리로서 주로 향당(鄕黨)에서 행해지는 윤리 질서였다. 이것이 제기되어 구체화된 것은 중종대였다.111)『이륜행실도』 편찬 경위와 의의에 대해서는 김훈식, 「16세기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 보급의 사회사적 고찰」, 『역사학보』 107, 역사학회, 1985를 참조할 수 있다. 중종대는 조광조로 대표되는 사림이 도학 정치(道學政治)를 표방하면서 성리학적 이상 정치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이들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먼저 자신들의 세력 기반인 향촌 사회(鄕村社會)의 안정을 이루고자 하였다. 중앙에서뿐 아니라 향촌 사회에서도 유교적 질서를 확립하여 전 사회적인 범위에서 확고한 유교 이념을 이룩하는 것은 성리학적 이상 사회 성립에 가장 기본적이자 최종적인 목적이기도 하였다. 향약(鄕約)이 처음으로 전국에 시행되면서 일반 백성들의 생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다.

확대보기
『이륜행실도』
『이륜행실도』
팝업창 닫기

이러한 목적에서 『소학(小學)』과 『여씨향약(呂氏鄕約)』 보급에 힘쓰던 김안국은 새로운 윤리서를 제안하였다. 이것은 붕우유신(朋友有信),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이륜이었고,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를 통해 앞서 『삼강행실도』와 함께 오륜의 윤리서가 완결되었다. 『이륜행실도』에는 중종대 사림의 윤리관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역대 명현(明賢)의 행적을 선별하여 형제도(兄弟圖)에는 종족도(宗族圖)를, 붕우도(朋友圖)에는 사생도(師生圖)를 첨가하였다. 그리하여 형제도에는 25명, 종족도에는 7명, 붕우도에는 11명, 사생도에는 5명으로 모두 48명의 명현이 수록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중국인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한 명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 중종대는 앞서 『대학연의』의 이해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리학의 경세 사상과 사회 사상이 조선 사회에 획 기적으로 전파되는 중요한 시기였다.

사림은 동료애와 이를 통한 연대를 매우 강조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것은 붕우유신으로 형상화되었다. 붕우유신의 윤리는 사림이 훈구(勳舊)로 대표되는 기존 정치 세력과 대결하면서 정치권력을 장악해 가는 데 유용한 윤리 체계였다. 이와 함께 장유유서의 윤리도 강조되었다. 사림 사이에서 붕우유신이 수평적인 관계를 의미하였다면 장유유서는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연대를 공고히 하도록 작용하였다. 장유유서는 나이에 의해 규정되는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각각에 적합한 행위 규범을 제시하였다. 또 이는 향촌 사회에서 사림뿐 아니라 농민층과의 관계에서도 유효한 윤리 규범이 될 여지가 있었다. 재지 사족(在地士族)과 농민의 관계를 규정하게 될 때는 재지 사족 내부에서의 경우와 달리 나이 여하를 불문하고 재지 사족은 장(長)으로 농민은 유(幼)로 규정되었다.112)김훈식, 앞의 글, 1998, 64쪽. 이 점에서 이륜의 윤리 질서는 향당 윤리로서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확대보기
몽주손명(夢周殞命)
몽주손명(夢周殞命)
팝업창 닫기

사림은 향촌 사회에서 정치적·사회적 활동에 주력하였다. 처음부터 중앙 권력에서 어느 정도 배제된 상태였기에 그들은 향촌 사회에서 성리학적 교화 작업에 힘썼던 것이다. 중종대 사림은 고려 말에 조선 건국을 반대한 정몽주(鄭夢周), 길재(吉再)를 심정적으로 계승하는 절의파(節義派)의 후예로, 초기 중앙 관직에 진출하지 않고 영남을 중심으로 향촌 교화에 힘을 기울였다. 그곳에서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성리학적 이상을 실현할 바탕을 만들고 있었고, 결국 중종대를 기점으로 중앙 권력에 진출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중국에서의 주자학 성립 과정과도 유사한 일면이 있다. 중국의 주자학도 향촌 사회에서 성장하면서 점차 중앙 권력에 진입하였고 결국 관학화(官學 化)에 성공하였던 것이다.113)이범학, 앞의 글, 1994. 향촌 사회에서 많은 사람의 자발적 지지와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향촌 사회에서 통용되고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윤리 체제가 필요하였다. 여기에서 오륜 가운데 붕우유신과 장유유서가 가장 주목을 받게 되었다. 더욱이 향촌 사회의 지지 속에서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으로서는 이러한 윤리 질서가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삼강과 이륜을 포괄하는 오륜의 윤리 질서가 비로소 마련되었다. 군신의 의리를 기초로 하는 국가 윤리, 부자와 부부를 위시로 하는 가족 윤리, 붕우 간의 신의와 장유의 서열을 기본으로 하는 향당 윤리가 마련됨으로써 조선 사회의 기초적인 세 가지 사회 윤리 질서가 모두 갖추어진 셈이었다. 집권층은 이러한 윤리 질서를 효과적으로 일반 백성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라는 윤리서를 적극 보급하고자 하였다. 한눈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커다란 도판(圖版)을 첨부하고, 이와 함께 찬시(讚詩)를 넣음으로써 자칫 딱딱하기 쉬운 윤리서를 일반 백성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들 서적은 대량으로 발간되었는데, 특히 이 윤리서를 한글본으로도 만들었다는 것은 조선의 집권층이 얼마나 윤리서의 보급에 노력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