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4장 예절로 다스리는 사회의 종법 질서
  • 3. 유교 예법의 책
  • 고전 예법의 연구
이영춘

고전 예서(禮書)란 이른바 ‘삼례(三禮)’라고 부르는 『의례(儀禮)』, 『예기(禮記)』, 『주례(周禮)』를 말한다. 이들은 고대 중국의 주공(周公)이 창제하고 공자가 정비하였다는 고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은 전국시대와 진·한(秦·漢) 격변기를 거치면서 유실되었고, 오늘날 전해지는 이들 예서는 대개 한나라 시대의 학자들이 수집·정리·부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역대 왕조와 주변국에서는 국가 차원의 왕조례를 정비하거나 사회 일반의 예속을 만들 때 이 삼례가 최고의 표준이 되었다. 중국에서 왕조례는 당 현종 때 『대당개원례』(732)로 집대성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후대 송·원·명·청 여러 왕조의 국가 전례에 기초가 되었다. 또 명대에 이루어진 『대명회전(大明會典)』과 『대명집례(大明集禮)』는 조선 왕조의 국가 의례 정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적 의례가 처음으로 정비된 것은 고려 인종 때 최윤의 등이 편찬한 『상정고금예문』(50권)이었고, 1234년(고종 21)에 금속 활자로 간행되었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현재 『고려사』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 다. 조선 초기에는 국가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확립하기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 고례와 고제(古制)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로 『세종실록오례』와 『국조오례의』가 편찬되었다. 이 두 책을 통해 국가의 의례 정립을 위한 고려와 조선 두 왕조의 노력을 알 수 있으며, 고전 예서에 대한 이해 수준도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의 고례 연구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 나타난 정도전의 『주례』 이해와 권근의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 등에서 보인다. 특히 권근의 『예기천견록』은 총 26권 11책에 달하는 것으로 그의 예학에 대한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세종대에 간행된 『예기대문언두(禮記大文諺讀)』와 15세기 후반에 간행된 『예기집설대전구결(禮記集說大全口訣)』은 『예기』에 언문(諺文)으로 구결(口訣)을 단 책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15세기 예학의 성과를 보여 주는 것이다. 이후 조선 예학자의 고전 예서 연구는 주로 『예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6세기 중반부터 성리학이 심화되고, 예학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학자들의 관심은 주로 『가례』에 집중되었고, 고례 연구는 상대적으로 미미하였다. 고례의 연구는 세종대에 국가 전례의 정비 차원에서 활발하게 연구되어 『국조오례의』가 편찬된 후에는 큰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소수의 학자, 특히 남인계 학자들이 다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정구(鄭逑, 1543∼1620)는 1603년(선조 36)에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12권 7책)를 저술하였고, 1615년(광해군 7)에는 『예기상례분류(禮記喪禮分類)』, 1617년에는 ‘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 등을 편찬하였다. 『오선생예설분류』는 주자의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를 표준으로 저술하였다. 그것은 『의례』와 『예기』를 중심으로 한 고례를 북송의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頣), 사마광(司馬光) 및 주자의 예설을 인용하여 다시 분류·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왕조례와 사대부례(士大夫禮)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정구의 고례 연구에서 나타나는 특징은 신분에 따른 예의 차등화 의식이었 다. 왕실의 예와 사대부의 예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의 예와 선비의 예, 그리고 서민의 예가 각기 다르다는 차별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201)김항수, 「한강(寒江) 정구(鄭逑)의 학문과 역대기년(歷代紀年)」, 『한국학보』 45, 일지사, 1986. 이것은 『의례』나 『예기』 같은 고전 예서와 『개원례』나 『국조오례의』 같은 국가 예서의 기본 인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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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서첩(眉叟書帖)』
『미수서첩(眉叟書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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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목(許穆, 1595∼1682)은 정구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로서, 성리학보다는 선진 유학(先秦儒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지은 『경례유찬(經禮類纂)』(5권 5책)은 만년의 미완성 저술이었지만 그의 고례적 취향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주례』, 『의례』, 『예기』 등 고례 3서 가운데 상례와 제례에 관련된 본문과 주석 1,000여 조를 발췌하고 자신의 간단한 해설을 붙여 편집한 것이다. 이 책에는 제왕례, 사대부례, 서인례(庶人禮)가 혼재되어 있으나, 그 차이를 명시함으로써 저자가 이를 통해 귀천을 분별하고 상하 질서를 확립하려고 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202)이영춘, 「복제 예송(服制禮訟)과 미수(眉叟) 허목(許穆)의 예론(禮論)」, 『진산 한기두 박사 화갑 기념 논총(震山韓基斗博士華甲紀念論叢)-한국 종교 사상의 재조명-』, 원광 대학교 출판부, 1993.

홍여하(洪汝河, 1621∼1678)는 1666년(현종 7)에 제1차 예송에서 채택된 송시열(宋時烈)을 비롯한 서인의 기년설(朞年說)을 비판하기 위하여 『의례경전상복고증(儀禮經傳喪服考證)』(1책)을 저술하였다. 이는 남인의 삼년설(三年說)에 대한 경전적 근거를 밝히기 위한 저술로서 그의 ‘의례소(議禮疏)’의 부록으로 조정에 올렸던 것이다.

안정복(安鼎福, 1712∼1791)은 『예기의(禮記疑)』(1책)와 『예기집설보(禮 記集說補)』(1책)를 남겼다. 『예기의』는 「곡례(曲禮)」, 「단궁(檀弓)」, 「증자문(曾子問)」, 「문왕세자(文王世子)」 등 4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예기』에 보이는 여러 가지 변례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예기집설보』는 『예기』의 내용 중에서 「곡례」 상·하편, 「단궁」 상·하편, 「왕제(王制)」, 월령(月令) 등 11편에 대한 해설이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상례외편(喪禮外編)』(12권), 『사례가식(四禮家式)』(9권), 『예의문답(禮疑問答)』(2권) 등 많은 예서를 저술하였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상례사전(喪禮四箋)』(60권)이다. 이는 그의 고례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4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203)이영춘, 「다산(茶山)의 예학(禮學)과 복제 예설(服制禮說)」, 『조선시대사 학보』 5, 조선시대사 학회, 1998. 여기서 그는 중국 예학자들의 예설을 분석·검토·비판하였다. 또 『춘추좌씨전』, 『통전』 등의 통설과 송시열·허목을 비롯한 우리나라 학자들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학설을 수립하였다. 그는 용어의 개념을 고증하는 데 집중하였고, 기존의 전통 학설에 비판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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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김장생 초상
전 김장생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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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연구를 보면 조선 중기 이후 남인계 학자들은 고례를 대단히 중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들에 비해 서인계 학자들은 『가례』의 연구에 더 치중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가례』 연구도 고례에 대한 치밀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졌다.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가례집람(家禮輯覽)』이나 『의례문해(疑禮問解)』도 대부분의 근거를 『의례』와 『예기』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계(兪棨, 1607∼1664)와 윤선거(尹宣擧, 1610∼1669)가 함께 지은 『가례원류(家禮源流)』는 『가례』의 내용을 고례에서 찾아 고증한 것이다. 이 밖에 기호학파의 학자들 중에서도 고례에 관심을 두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론에 속하는 박세채와 최석정 등이다.

박세채(朴世采, 1631∼1695)의 『육례의집(六禮疑輯)』(33권 14책)은 『의례경전통해』와 『가례』를 주요 근거로 하고, 여러 예서를 참고하여 관혼상제 및 향음주례(鄕飮酒禮)·사상견례(士相見禮) 등을 정리한 것이다. 『남계선생예설(南溪先生禮說)』(20권 10책)은 박세채가 문인들과 예에 관하여 문답한 내용을 수록하였다. 이 책도 대부분 『가례』의 편차에 따라 정리한 것이지만, 문묘, 서원 등의 제향과 왕실례(王室禮)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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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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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정(崔錫鼎, 1646∼1715)의 『예기유편(禮記類編)』(18권 5책)은 1693년(숙종 19)에 간행되었는데, 이는 권근의 『예기천견록』을 계승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중국 원대의 학자 진호(陳澔)가 저술한 『예기집설(禮記集說)』의 오류를 면밀히 고증하여 바로잡았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金在魯, 1682∼1759)의 『예기보주(禮記補註)』(30권 5책)는 1758년(영조 34)에 간행되었다. 이 역시 진호의 『예기집설』을 보완하고 오류를 수정한 책이다. 이 책은 조선 초기 권근의 『예기천견록』과 김장생의 예설, 그리고 최석정의 『예기유편』으로 이어진 『예기』 연구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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