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4장 예절로 다스리는 사회의 종법 질서
  • 4. 유교 의례의 표상, 제사
  • 지역 공동체의 제사
이영춘

조선시대 지방의 각 군현에서 지내는 제사는 국가 차원에서 운영하는 제사와 지방의 유림(儒林)이나 문중(門中)에서 자발적으로 행하던 사적인 제사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각 고을의 사직과 향교에 대한 제사, 성황단(城隍壇)의 제사 등이 있다. 향교의 제사는 그 지역의 수령이 초헌관으로 참여하였다. 또 왕실의 능묘, 역대 왕조의 시조, 국가 차원의 명산대천 등의 제사는 비록 지방에서 행하였지만 국가 사전에 속하는 것이었으므로 중앙 정부에서 제관을 파견하여 제사를 행하였다. 경향 각지(京鄕各地)의 서원(書院)과 사우(祠宇)에 대한 제사는 그 지방의 유림이나 문중에서 제사를 올렸다.

지방 관아에서 관리하는 제사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향교와 사직 제사였다. 향교 제사는 대체로 성균관의 석전과 동일하였지만 고을의 등급에 따라 규모가 달랐다. 경주나 전주 같은 큰 고을의 향교에서는 성균관에 모신 신위만큼의 성현들을 다 제사하였지만, 작은 고을에서는 공자와 사현(四賢, 맹자·증자·안자·자사), 송대의 오현(五賢, 주돈이·정호·정이·장재·주희) 및 동국(東國) 18현만을 제사하였다. 향교의 석전은 봄가을에 한 번씩 대규모로 행하였고, 초하루와 보름의 삭망에도 약식 전을 올렸다. 정기 석전에는 고을의 수령이 헌관이 되고 지방의 유림과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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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부 지도 부분
남원부 지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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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사직 제사는 그 지방의 토지신과 곡신에 대한 제사로, 의식은 대체로 서울의 사직 대제를 축소한 형태로 거행되었다. 사직에는 정기적인 제사 외에도 기우제나 기곡제를 지냈다. 성황단은 주인 없는 귀신이나 전망자(戰亡者), 행려 귀신(行旅鬼神) 등 잡귀신을 제사하기 위한 제단인데, 여기서 잡귀의 해를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행하였다. 전염병이 유행하거나 극심한 기근 등 자연재해가 성행할 때 고을 수령이 중심이 되어 여기서 제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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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제 모형
석전제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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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국가나 지방 관아에서 주관하는 제사 외에도 유림이 자 치적으로 하는 제사가 많았다. 지방의 유림이나 문중에서 세운 서원이나 사우는 한때 600여 개소를 웃돈 적도 있었다. 서원이나 사우는 존경할 만한 학자를 제사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교육 시설이 부설되어 있는 곳을 서원이라 하였다. 이 밖에도 국가의 공신이나 대신, 지방의 유력자, 문중의 유력한 조상을 제사하는 사당도 많았다. 그 중에는 지방 사회의 명사들을 제사하는 향현사(鄕賢祠)라는 것도 있었다. 이들 서원이나 사우의 제사는 비록 유림이 주관하여 사적으로 지냈지만 규모나 중요성에 있어서 향교 제사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도 많았다. 이언적·이황·이이·김장생·송시열 등의 선현을 제사하는 서원 제사에는 그 지역의 유림이 총동원되다시피 하였고, 지방 관아에서 비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청주 화양동의 만동묘(萬東廟)는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종을 제사하는 사당으로, 충청도의 유림이 사사로이 창건하였으나,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전국 관아에 묵패(墨牌)를 돌려 재물을 징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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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동묘 양추문
만동묘 양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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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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