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5장 실학의 세계관
  • 5. 세계 지도의 이해와 국토 방위
  • 세계 지도를 이해하는 방식
김문식

17세기 말 이후 조선과 청나라는 우호적인 관계에 들어가고 양국 사이의 문물 교류도 점차 활발해졌다. 북경을 방문한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 선교사와 중국인이 한문으로 번역한 서양의 과학 기술서와 세계 지도를 구입하였고, 이를 응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별도의 전담 팀을 구성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이 중화의 문물을 가진 문화 국가라는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였으며, 청나라의 문물이나 서양의 과학 기술을 도입할 때에도 이런 관점을 적용하였다. 조선의 지식인은 청나라 문물이 우수하다는 점은 인정하였지만 이것은 중국을 지배한 여진족이 그들의 본토에서 가져온 오랑캐 문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중국에 전래되어 온 중화의 문물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서양의 과학 기술도 삼대(三代) 이후 서양으로 전해졌던 중국의 문물을 서양인이 잘 계승하였다가 다시 중국으로 가져 온 것이라고 여겼다. 말하자면 조선 지식인들은 ‘중화의 문물’이라는 문화적 관점에서 모든 사물을 판단하였는데, 이러한 사고는 세계 국가를 바라보 는 시각에도 적용되었다.

동아시아에서 세계 지리에 대한 전통적인 사고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직방 세계(職方世界)’를 중심으로 하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천원지방’이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모양’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주비경(周髀經)』과 『회남자(淮南子)』에 처음 등장한 이후 하늘과 땅에 대한 원형적(原形的) 사고로 전승되었으며, 한나라 이후에는 음양 사상(陰陽思想)과 결부되어 해석되기도 하였다. 또 ‘직방’이란 주나라 때 전국의 지도와 사방에서 올라오던 조공(朝貢)을 관리하던 관직 이름이며, ‘직방 세계’란 중국과 그 주변에 있으면서 조공을 내던 국가를 합해서 말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사는 공간을 ‘중화(中華)’로 설정하고 그 주변의 나라들은 ‘이적(夷狄, 오랑캐)’으로 구분하는 화이론적(華夷論的)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의 지식인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명나라 말기에 서양 선교사가 가져온 서양식 세계 지도와 지리서(地理書)를 접하자 중국과 조선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까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땅은 네모 모양이며 세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하고 그 주변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조공국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중국이 다섯 개의 큰 대륙 가운데 하나인 아시아 주의 동쪽에 조그맣게 그려져 있는 세계 지도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간행된 서양식 세계 지도는 이내 조선으로 들어왔다.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는 서양 선교사인 마테오리치가 작성한 세계 지도였는데, 이 지도가 북경에서 간행된 것은 1602년이다. 그런데 북경을 방문한 조선 사신단이 곤여만국전도를 구입한 것은 바로 이듬해인 1603년(선조 36)이었다.

17세기 초에 이 지도를 보았던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지도가 잘못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마테오리치의 지도에 나타난 해양의 여러 나라를 보면 중국은 동쪽 구석에 치우쳐 있으면서 크기가 손바닥만 하고, 우리나라의 크기는 버들잎만 하며, 서역이 세계의 중앙으로 되어 있다. 마음이 허탈하여 수용할 수가 없으니, 우리나라에 이를 전한 자가 잘못한 것이다.255)유몽인(柳夢寅), 『어우야담(於于野談)』 권1, 기리단(伎利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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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여만국전도
곤여만국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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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몽인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커다랗게 자리 잡고 그 주변을 여러 국가가 둘러싸고 있는 종래의 세계 지도를 보면서 실제의 세계도 그런 상태로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서양식 세계 지도에서 전혀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자, 이것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오히려 이런 지도를 조선으로 가져온 사람이 잘못이라고 하였다.

이런 혼란은 100년이 지난 18세기 초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 1708년(숙종 34)에 왕명(王命)으로 마테오리치의 세계 지도를 그린 병풍을 제작할 때 책임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그런 최석정이었지만 마테오리치의 지도를 사실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다.

종래의 세계 지도는 옛날과 지금의 그림이 똑같지는 않지만 모두 평면에 땅을 네모나게 만들고, 중국의 교화가 미치는 지역을 외곽의 경계로 하였다.

지금 서양 선교사의 학설은 땅이 둥글다는 것을 위주로 하며, “하늘이 둥글면 땅도 둥글다. 땅이 네모나다는 것은 땅의 도가 고요함을 위주로 하고 그 덕성이 방정함을 말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의 큰 원을 본체로 하고, 남북으로 가는 곡선을, 동서로는 가로로 직선을 그은 다음 지구의 상하 사방에 만국의 이름을 분포시켰다.

중국의 구주(九州)는 북쪽 근처의 아세아 지역에 위치하는데, 그 학설이 매우 거칠고 허망하며 황당하고 정도에도 어긋난다. 그렇지만 그 학설이 전수된 것이 유래가 있어 함부로 깨트릴 수도 없다. 이에 그대로 두어 새로운 식견을 넓히고자 한다.

최석정은 전통적인 세계 지도와 서양식 세계 지도를 비교하면서 차이가 너무 큰 것에 당혹하였다. 그렇지만 100년 전의 유몽인처럼 서양식 세계 지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그 사이에 서양식 역법을 적용한 달력이 매우 정확하며, 서양 천문학이 일식(日蝕), 월식(月蝕)을 정확히 계산해 낸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최석정은 서양식 세계 지도의 내용을 그대로 믿지는 못하지만 그 학설도 나름대로의 근거가 있는 것이므로 참고하자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서양식 세계 지도와 지리서에 나타나는 ‘오대주설(五大州說)’과 ‘지구설(地球說)’을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오대주설’이란 세계는 다섯 개의 큰 주로 구성되며, ‘지구설’이란 지구가 공처럼 둥근 모양이라는 학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의 지식인들은 ‘오대주설’과 ‘지구설’을 사실로 수용하였는데, 서양의 과학 기술은 동양의 전통에 이미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식으로 대응하였다. 서양의 우수한 과학 기술은 오래 전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서기(西器) 중국 원류설’이었다.

어느 문명이나 새로운 문화 요소가 들어오면, 이를 번역(飜譯)할 수 있는 전통적 개념이 필요하다. 중국 고대의 학자인 추연(鄒衍)은 ‘구주설(九州說, 세계가 아홉 개의 주로 구성되었다는 설)’을 주장하였고, 『회남자(淮南子)』와 『산해경(山海經)』의 기록에는 오대주설이나 지구설과 유사한 개념이 있었다. 이제 서양의 과학 기술을 수용하게 된 조선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동양 고전을 근거로 서양 지리학의 이론을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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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전도
여지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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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여지전도(輿地全圖)는 서양식 세계 지도가 조선에서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지도이다. 이 지도는 1834년(순조 34)에 최한기(崔漢綺, 1803∼1877)가 제작한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몽고와 아라사(俄羅斯, 러시아)에 대한 인식에서는 더욱 진전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지도는 전통적인 직방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구대륙을 위주로 하고 그 반대쪽에 있던 아메리카는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아메리카 지역이 아직 조선인의 인식 범위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또 중국을 지도의 중앙에 배치하고 아시아 국가를 실제보다 확대한 반면에 유럽과 아프리카는 매우 축소시켜 그리고, “『상서(尙書)』 우공편(禹貢篇)을 중시하고, 옛 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참고하여 제작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여지전도는 직방 세계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적 지리 인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새로 알려진 외부 세계를 그 외곽에 추가하여 그린 세계 지도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지리관, 곧 중국을 중앙에 위치시킨 직방 세계를 중심으로 하면서 그 외곽을 조금씩 넓혀 가는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였다. 서양식 세계 지도에는 수많은 지명과 국가가 등장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들의 실체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도 없었다. 조선의 지식인은 중국 중심의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알았지만, 조선은 여전히 중국과 함께 세계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주요 국가였고 그 영역도 실제보다 훨씬 넓은 것으로 이해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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