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4권 유교적 사유와 삶의 변천
  • 제5장 실학의 세계관
  • 5. 세계 지도의 이해와 국토 방위
  • 국토 방위의 중요성
김문식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나라에서 우수한 생산 기술과 교통수단을 도입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 판단하였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과 청나라의 우호 관계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으로 보지는 않았다. 청나라가 중국을 지배하는 것은 한계 가 있어 결국은 그들의 발상지인 영고탑(寧古塔) 지역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선에 다시 전쟁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종휘(李種徽, 1731∼1797)는 청나라가 중원(中原)을 버리고 발상지로 돌아가면 조선에게 곤란한 요구를 할 것이라 걱정하였다. 청나라는 세조 이후 북경을 버리고 심양(瀋陽)을 중시하는 정책을 썼는데, 이는 그들이 본거지로 돌아갈 때를 대비하는 증거로 보았다. 그런데 청나라가 본거지로 돌아왔을 때 조선에게 길을 빌려 달라거나, 식량을 요청하거나, 군대를 징발하거나, 영토의 분할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는데, 특히 식량과 영토의 분할을 요청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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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피아교계도(西北彼我交界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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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는 이처럼 미묘하였기 때문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청나라에 대한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조선 지식인들이 청나라에서 도입하려고 한 생산 기술이나 교통수단에는 벽돌, 목축, 수레, 선박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평상시에는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도구이지만, 유사시에는 군대를 위한 전쟁 도구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벽돌은 평소에는 궁궐이나 집을 짓는 데 사용하지만 유사시에는 성곽을 쌓을 수 있고, 목축하여 기른 우수한 말은 전마(戰馬)로 이용할 수 있었다. 또 수레와 선박은 평소에 사람과 물품을 나르는 데 사용하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전차(戰車)와 전선(戰船)으로 바꿀 수 있었다.

박제가는 조선이 청나라의 우수한 제도를 배워 그들을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어야만 오랑캐인 이들을 물리쳐서 명나라의 원수도 갚고 병자호란 때 조선이 당한 치욕도 씻을 수 있다고 하였다. 객관적으로 조선의 국력이 청나라를 능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력과 국방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중국의 법에 대해서 “배울 만하다”라고 말하면 떼를 지어 일어나서 비웃는다. 필부(匹夫)가 원수를 갚고자 할 때 원수가 날카로운 칼을 차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칼을 빼앗을 방법을 고민하는 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당당한 천승(千乘)의 나라로서 천하에 대의를 펼치려고 하는데도 중국의 법은 하나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중국의 학자 한 사람과도 사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숱한 고생만 겪게 할 뿐 아무 효과도 보지 못하고, 궁핍에 찌들어 굶어죽고 스스로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100배의 이익이 될 것을 버리고 결코 행하지 않았다. 나는 중국을 차지하고 있는 오랑캐를 물리치기는커녕 우리나라 안에 있는 오랑캐의 풍속도 다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 염려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사람들이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한다면 차라리 누가 오랑캐인지를 먼저 분간하는 것을 우선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을 높이고자 하면 차라리 저들의 법을 완전히 시행함으로써 중국이 더욱 높아질 수가 있다. 만약 다시 명나라를 위하여 원수를 갚고 우리가 당한 치욕을 설욕하고자 한다면 20년 동안 힘써 중국을 배운 다음에 함께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256)박제가, 『북학의외편』, 존주론(尊周論).

박제가는 청나라의 발달된 제도를 도입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었지만, 청나라를 오랑캐로 보는 시각까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박제가는 청나라가 적국이라면 오히려 그들의 장점을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하여 그들을 물리칠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박제가가 도입하려고 한 청나라의 제도는 모두 조선의 국방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전용할 수 있었다.

수레는 그 자체가 무기는 아니지만 수레를 사용하면 저절로 군수 물자를 편리하게 수송할 수 있다. 벽돌은 그 자체가 무기는 아니지만 벽돌을 사용하면 만백성의 안전을 위한 성곽을 제대로 구비하게 만든다. 기술자의 기술과 목축은 그 자체가 무기는 아니지만 삼군(三軍)이 사용할 말이나 공격하고 전투하는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고 무기가 예리하게 정비되지 않았다면, 군사 활동을 전개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망루(望樓)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창과 방패를 잡고 서 있는 것이나 앉았다 일어섰다 하며 치고 찌르기를 훈련하는 것은 군사 활동의 말단에 해당한다. 천지 안의 재능 있는 학자를 얻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장비를 마련하는 것이 군사 활동의 근본이다.257)박제가, 『북학의외편』, 병론(兵論).

정약용은 청나라에서 벽돌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였는데, 이는 성벽을 견고하게 쌓아 외적을 방비하기 위해서였다. 정약용은 이용감에서 벽돌 제조법을 도입한 후 제조한 벽돌로 국경 지대에 있는 성벽을 차례로 고쳐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중국에서는 성을 모두 벽돌로 쌓았기 때문에 견고해서 깨뜨리기 어렵고, 평지에 있는 성은 모두 안팎을 겹쳐 쌓았다. 우리나라의 성은 모두 암벽을 깎고 벼랑에 기대어 쌓았으므로 한 꺼풀 안쪽은 푸석푸석한 흙이다. 한 사람이 끌어당겨도 손 가는 대로 무너질 지경인데 이런 성을 어디에 쓰겠는가.

이용감에서 벽돌 굽는 법을 빨리 알아 오는 것이 마땅하다. 여러 도의 변경 성을 100년을 한정하여 차례로 고쳐 쌓을 것인데, 그전의 돌은 땅에다 펴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벽돌을 쌓으면서 치첩(雉堞)도 법식대로 설치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258)정약용, 『경세유표』 권2, 동관공조, 사관지속, 수성사.

홍양호도 청나라의 제도와 문물을 도입하여 청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청나라의 우수한 말을 도입하여 군대에서 전마로 사용하며, 수레 제도를 도입하여 기병(騎兵)에 도움을 주고 전차를 만들자고 하였다. 또 중국의 벽돌 제도를 도입하여 궁성을 개축하고 청나라의 예상 침략 로에 있는 성곽을 보수하거나 신축하여 국방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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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사행렬도 중의 역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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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회는 조선의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외부에는 강성한 국가들이 있는데, 이를 방비할 전선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걱정이었다. 그는 임진왜란 때 한산 대첩(閑山大捷)의 승리는 조선 전선의 성능이 일본보다 우수해서가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해상에서 침략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선의 정비와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는 당당한 만승(萬乘)의 나라로 삼면의 바다를 거머쥐고 있으면서 밖으로는 강성한 이웃이 있는데, 안에는 보위할 방패가 없다. 어쩌면 이처럼 계획이 없을까.

우리는 매양 한산도 대첩을 사방의 나라에 요란하게 뻐긴다. 우리의 배는 질박한 반면 저들의 배는 정교하고 부드러워, 질박한 배로 부드러운 배를 부딪치면 도처에서 부서지기 때문에 승리를 거두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지덕을 겸비한 이 충무공이 출현하여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전략으로 적의 예봉(銳鋒)을 꺾은 것이지 어찌 전선의 공이겠는가. 원균의 패배는 우리 전선을 가지고 생긴 일이 아닌가.259)이강회, 『유암총서』, 운곡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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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통사신석언해(朴通事新釋諺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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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성곽, 무기, 전차, 전함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 수단을 모두 갖추었다 하더라도 국제 정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동적인 국제 정세를 소상히 파악하고 비상시에는 해당국과 의사소통(意思疏通)을 원활히 하기 위해 유능한 역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감안할 때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청나라, 몽고, 일본의 순이었고, 이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국어, 몽고어, 일본어의 습득이 시급하였다.

이압(李, 1737∼?)은 청나라가 한자와 중국어를 알기 때문에 만주어는 몰라도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몽고는 중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조선과 몽고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처할 방안이 없음을 걱정하였다. 박제가는 평상시에는 역관에게 외교를 맡겨도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비상시에는 그럴 수 없으므로, 이를 대비해 사대부 지식인들이 직접 중국어, 만주어, 몽고어, 일본어를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홍양호도 중국어와 몽고어의 습득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청나라의 급박한 요청이 있거나 군사력이 강한 몽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평소부터 외국어를 습득해 두어야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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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어유해(蒙語類解)』
『몽어유해(蒙語類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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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이래 중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형식만 남아 말하는데 능통한 자가 매우 적습니다. 따라서 사신이 저들과 상대할 때에는 귀를 막고 입을 닫은 채 짤막한 한마디 말조차 역관에게만 의지하는데, 역관들이 말하는 것도 겨우 길거리의 일상 회화를 아는 정도이니 장차 어떻게 심정(心情)과 의지(意志)를 통하여 어려운 일을 모두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다행히 양국의 관계가 좋아 사신의 일에 지장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요청을 하거나 바로잡아야 할 일이 있다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 같으니 작은 걱정이 아닙니다.

몽고어는 그저 헛된 이름만 끼고 전혀 가르치거나 익히지 않습니다. 몽고와 우리나라는 지금 비록 서로 사신을 교환하지 않지만, 국경이 매우 가깝고 병마(兵馬)가 가장 사나우므로 훗날의 일을 미리 짐작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 소홀히 하여 살피지 않겠습니까.260)홍양호, 『이계집』 권19, 진육조소.

박지원은 중국 여행을 통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동아시아의 정세를 보았고, 국제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조선의 첩자가 중국에 상주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사대부의 자제 중에 청나라의 과거 시험을 통과하고 관리가 되어 북경에 거주하면서 중앙 정부의 동향을 파악할 인력과 상인으로 중국 각지를 다니면서 명나라의 회복을 기도하는 강남의 한인과 결탁할 수 있는 인력을 생각하였다. 그러자면 조선 사람도 청나라 한인처럼 머리를 깎고 오랑캐 복장을 입어야 했다. 박지원은 조선의 관복(官服)이 중화 문화의 핵심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청나라의 관복이 말을 타고 전쟁을 수행하기에 편리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박지원이 생각하기에 조선이 나아갈 길은 청나라의 우수한 제도를 도입하여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고, 다양한 정보망을 통해 국제 정세의 변화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었다.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 하면서 먼저 천하의 호걸(豪傑)과 사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른 국가를 정벌하려 하면서 먼저 간첩을 사용하지 않고 공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 만주(청)는 천하를 점거하여 주인 노릇을 하지만 스스로 중국과 친하지 않다고 여기는데,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솔선하여 복종하니 저들이 믿는 바이다.

자제들을 파견하여 학교에 보내고 관리가 되기를 당나라, 원나라 때의 전례(前例)와 같이 하고, 상인들이 출입하는 것을 금지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친함을 보이는 것을 기뻐하여 허락할 것이다. 국내의 자제들을 잘 뽑아서 머리를 깎고 오랑캐 복식을 입힌 다음, 군자는 가서 빈공과(賓貢科) 시험에 응시하게 하고, 소인은 멀리 강남으로 장사를 가서 허실을 정탐하고 호걸들과 사귀게 된다면, 천하의 일을 도모할 수 있고 국가의 수치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261)박지원, 『열하일기』, 옥갑야화.

조선의 지식인들은 해외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중국이나 일본의 실정에 비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서 크게 낙후한 조선의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들은 상호 교유를 통해 자신들이 습득한 새로운 학문 정보를 교환하였고, 청나라의 우수한 생산 기술과 교통수단의 도입을 통해 민생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려 하였다. 또 그들은 조선의 국방력을 향상시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려 하였으며, 평상시에 유능한 역관을 양성하고 외국어를 익힘으로써 비상사태(非常事態)에 대비할 것을 주장하였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자신들의 해야 할 임무를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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