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1장 음악 만들기
  • 5. 중국 음악의 창의적 수용, 고려
  • 기악과 잡희
권오성

기악(伎樂)과 잡희(雜戲)는 고려시대에 베풀던 공연 예술이다. 문헌 기록에 기악은 가무잡희(歌舞雜戲) 또는 기악잡희로 되어 있고, 잡희는 잡극기(雜劇伎)·가무잡희·가무잡기(歌舞雜伎)·백희가무(百戲歌舞)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52)송방송, 앞의 책, 1984, 333∼389쪽. 기악과 잡희는 노래·춤·음악·재주 등이 어우러진 종합 공연 예술로서 널리 베풀어지고 있었다.

고려시대 궁중에서는 팔관회, 연등회, 나례(儺禮)를 비롯한 각종 궁중 의식에서 기악과 잡희가 베풀어졌다. 매년 11월에 거행한 팔관회 때에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궁중의 넓은 뜰에 무대를 설치하고 사선악부(四仙樂府)와 용·봉·코끼리·말·수레·배 등의 여러 형태를 갖추고 춤과 놀이와 재주를 벌였다. 매년 2월 15일에 거행한 연등회 때에는 행사가 끝나면 음악과 춤 그리고 갖가지 놀이를 하였다.

나례는 한 해의 재앙과 병의 근원인 사귀(邪鬼)를 쫓아내고 즐겁고 경사스런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음력 12월 제야(除夜)에 궁중에서 행하던 의식이다. 나례는 놀이의 일종인 나희(儺戲)로 변하고 우인(優人)과 창우(倡優)가 생기고 이들이 베푸는 우희(優戲)와 잡희가 12세기 초에 출현하였다.

산대를 얽어 만든 것이 봉래산과 흡사하니 / 山臺結綴似蓬萊

과일 바치는 선인이 바다 속에서 오겠구나 / 獻果仙人海上來

잡객의 북소리 징소리 땅을 온통 뒤흔들고 / 雜客鼓鉦轟地動

처용의 소맷자락 바람에 날리며 돌아 가네 / 處容衫袖逐風廻

긴 장대 위의 사나이는 땅에서처럼 노닐고 / 長竿倚漢如平地

하늘로 치솟는 폭죽은 번갯불처럼 빠르도다 / 瀑火衝天似疾雷

태평시대의 이 분위기 제대로 전하고 싶다마는 / 欲寫太平眞氣像

늙은 신하의 붓 솜씨 형편없어 부끄럽기만 하네그려53)이색(李穡), 『목은집(牧隱集)』 권33, 「동대문에서 궐문 앞까지의 산대잡극은 전에 보지 못하던 바라(自東大門至闕門前山臺雜劇前所未見也)」. / 老臣簪筆愧非才

고려 말에 이색(李穡, 1328∼1396)이 산대잡희를 보고 읊은 한시이다. 이에 따르면 산대는 봉래산(蓬萊山) 모양이고, 바다에서 온 선인이 과일을 드리는 춤을 추고, 풍악 소리에 맞추어 처용무를 추었으며, 긴 장대 위에서 솟대타기를 하고 폭죽놀이를 한 것을 알 수 있다. 무대를 높이 가설하고 각종 놀이를 하는 산대잡희에서는 이렇듯 당악 정재인 헌선도와 향악의 반주에 맞추어 춤추는 가면무인 처용무를 공연하였고, 곡예로서 장간기(長竿技)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궁중이나 민간 할 것 없이 민간 신앙인 굿이 풍미하였다. 고려 때의 향악을 수집한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는 굿 음악으로 보이는 12곡의 악보가 가사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나례가(儺禮歌)·성황반(城隍飯)·내당(內堂)·대왕반(大王飯)·잡처용(雜處容)·삼성대왕(三城大王)·군마대왕(軍馬大王)·대국 일(大國一)·대국 이(大國二)·대국 삼(大國三)·구천(九天)·별대왕(別大王)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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