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1. 기보법의 발달과 종류
  • 음악의 기록
권오성

언어가 인간의 생각과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면, 음악은 박자나 가락 혹은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인간의 언어는 입에서 나온 순간 즉시 사라지고, 또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는 미치지 않는 제약을 갖는 데 반해 언어를 시각적 기호로 바꾸어 기록해 놓는 문자는 항구적이고 언어가 갖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다. 악보(樂譜) 또한 마찬가지이다. 악보는 약속된 기호와 부호 혹은 용어를 사용하여 음악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악보에 담긴 음악의 재생은 물론이고 새로운 음악의 창작을 위해서 악보는 더없이 필요하다.

이렇게 일정한 약속이나 규칙에 따라 기호를 써서 악곡을 기록하는 방법이 기보법(記譜法)이다. 기보법을 통해 음악을 담은 악보는 음악의 연주, 재생(발표), 보존, 학습 등에 크게 기여하기 때문에 음악 문화의 발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이에 기보법은 보통 음의 높이나 길이 또는 강약, 음악의 속도와 감정, 연주법 등을 표시하여 성악(聲樂)이나 기악(器樂)을 막론하고 음악의 창작과 보존 및 재생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보법은 모든 음악을 완전하게 기록할 수 있는 절대적 수단이 아니며, 편의적일 수밖에 없다. 모든 종류의 음악에 두루 통용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기보법의 종류 또한 시대, 국가, 민족, 지역에 따라 형태와 기능 혹은 특성 등이 다르게 나타난다.

서양 음악에서는 기보법이 12세기 이후에 발달하기 시작하여 15∼16세기 무렵에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는 오선보(五線譜)가 확립되었다. 서양 이외의 지역에서는 각기 독특한 기보법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며, 기보법 없이 구전(口傳)에 의해서 음악을 보존하고 재생하는 지역과 민족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15세기 초에 세종이 정간보(井間譜)를 창안하면서 문자보(文字譜)나 기호보(記號譜)와 함께 여러 가지 형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들 기보법은 궁중이나 양반 같은 일부 지배 계층만이 사용한 것이고, 민간에서 불리던 판소리·산조(散調)·무악(巫樂)·민요(民謠) 등은 기보법을 사용하지 않고 구전으로 보존되고 재생되었다.84)성경린, 『한국 음악 논고』, 동화 출판 공사, 1976 참조.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 음악의 대부분이 현재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고유의 악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고유한 악보를 지니지 않은 국가나 민족의 음악은 보존이나 전승에 상당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 음악이 갖고 있던 고유한 원형도 변하기 쉽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고유의 악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전통 음악의 가치와 수준을 높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기보법은 육보(肉譜)·율자보(律字譜)·공척보(工尺譜)·약자보(略字譜)·정간보·오음약보(五音略譜)·합자보(合字譜)·연음표(連音標) 등 여덟 가지가 있다. 이 가운데에서 율자보와 정간보는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또 다른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보법은 음고(音高) 기보법, 시가(時價) 기보법, 주법(奏法) 기보법으로 나누기도 한다. 음고 기보법은 음악에 쓴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기보 체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율자보·궁상자보(宮商字譜)·공척보·오음약보·육보·차용보(借用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가 기보법은 음고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 음고의 길이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기보법이다. 정간보가 여기에 해당한다. 주법 기보법은 악기의 연주 방법이나 성악의 창법을 나타내는 데 사용하는 기보법으로, 합자보·육보·연음표 등이 있다.85)권오성, 『한민족 음악론』, 학문사, 1999, 145∼1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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