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1. 기보법의 발달과 종류
  • 정간보
권오성

정간보는 음의 길이를 알 수 있는 유량악보(有量樂譜)이다. 세종은 당시까지 쓰고 있던 기보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간보를 창안하였다. 육보는 음악의 가락이 드물고 잦은 것, 느리고 빠른 것을 나타내지 못하고 다만 음을 본떠서 그 음악을 전하는 단점이 있었고, 율자보나 공척보는 음의 길이·리듬·조식(調式)·조성(調性) 관계를 명확하게 표기하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국 음악 곧 당악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기보법으로는 우리 음악인 향악(鄕樂)을 적을 수 없었던 것이 정간보를 창안한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92)전인평, 『새로운 한국 음악사』, 현대 음악 출판사, 2000, 179∼180쪽. 우리나라 음악은 길고 짧음의 변화가 중국 음악보다 많기 때문에 음높이만 적는 악보로는 음악을 온전히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세종을 중심으로 여러 음악가가 마침내 율자보와 공척보의 결함을 극복한 정간보를 만들어 내었다. 정간보가 언제 창제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1447년(세종 29) 6월 이전에 창안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93)전인평, 앞의 책, 179쪽. 이 시기에 만든 정대업(定大業)·보태평(保太平)·여민락(與民樂)·치화평(致和平)·취풍형(醉豊亨) 등의 향악보(鄕樂譜)가 모두 정간(井間)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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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래의 중 전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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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간식 문자 표기법은 우물 정(井) 자로 된 줄을 1행 32정간으로 하고 거기에 12율명의 첫 글자를 기보하여 음의 높이를 알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그 정간 수에 의하여 음의 시가를 정확히 표시하는 기보법을 말한다. 이러한 정간식 문자 표기법에 의하여 작성된 악보를 정간보 또는 정간식 문자 악보라고 한다.

정간식 문자 악보에는 1행 32정간에 12율명을 기보한 정간보와 1행 16정간에 오음약자 곧 궁(宮)을 기준으로 위로는 상1(上一)·상2·상3·상4·상5 아래로는 하1(下一)·하2·하3·하4·하5를 기보한 오음약보가 있으며, 합자보에는 정간식에 기보된 합자보와 오직 주법표만 기보된 합자보가 있다. 정간식 문자보가 문자에 의한 표음 표기법(表音表記法)이라면 합자보는 악기들의 연주법을 기록한 주법보(奏法譜)이다.

정간보에서 음고 관계는 12율명의 문자로 표시하고, 음의 길이는 정간 수에 의하여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음의 높이는 황(당악계 음악은 C, 향악계 음악은 E♭), 대(C#, E), 태(D, F), 협(D#, G♭), 고(E, G), 중(F, A♭), 유(F#, A), 임(G, B♭), 이(G#, B), 남(A, C), 무(A#, D′♭), 응(B, D′)과 같은 12율명의 첫 글자로 표시하며 음의 시가는 1정간을 1박으로 나타낸다. 이러한 정간보는 기보법의 유형상으로 볼 때 음의 시가를 나타내는 악보의 한 형태에 속하는 표음 문자보로, 양악의 오선보와 함께 유량악보라고 한다.

정간보의 우수성은 또한 악보에 표시된 음고가 12율명에 의하여 고정도식(固定do式) 음이름인 만큼 언제나 명확하고 절대적일 뿐 아니라 한 옥타브 안에 12음률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악보상에서 각기 다른 조성의 악곡들을 자유롭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오선보의 원리와 유사한 것이다.

정간보에서의 한 옥타브 안에 기보되는 12율명을 오선보에서의 음이름과 대비하면 다음의 악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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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간보에서는 음의 길이를 표시하지 못하는 종래 나열식 문자보의 결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음악의 시가를 명확히 나타내는 정간 형태를 창안 도입함으로써 음악 표기에서 한 걸음 전진하였다. 곧, 정간법은 음악의 기본 요소인 음의 시가와 여러 악기의 합주를 표기할 수 없던 종래의 나열식 문자 악보나 구음 육보 같은 악보의 본질적인 결함을 극복한 매우 새롭고 혁명적인 악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정간보의 특징을 동양 최고의 유량악보라고 하는 데에서 찾지만, 그보다 더욱 가치 있는 일은 서양에서도 아직 만들어 쓰지 않던 총보(總 譜)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곧, 그것이 개별적인 악기나 노래의 선율만을 표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몇 개의 악기 파트와 노래 성부(聲部) 등을 포괄하는 총보 형태의 악보라는 점이다. 정간보로 된 『세종실록악보』에 실려 있는 악곡은 다섯 개 파트, 여섯 개 파트 등의 총보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예를 들어 첫째 파트는 현악기와 유율타악기(有律打樂器), 둘째 파트는 관악기, 셋째 파트는 장구, 넷째 파트는 박, 다섯째 파트는 노래 가사를 기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15세기 초엽에 다성(多聲) 음악 양식의 총보 형태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은 동양 각국의 악보 유산 가운데서 정간보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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