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4. 통일신라시대 주악상의 악기와 상징
  • 범종에 표현된 주악상
송혜진

범종은 불법의 세계를 전파하는 법구(法具) 중의 하나로 사찰에서 시간을 알려 대중을 모이게 할 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사용하는 종이다.222)김상현, 「범종의 불교적 기능과 의미」, 『단호 문화 연구』 4, 용인 대학교, 1999, 59∼75쪽. 불교에서 범종을 세우는 목적은 성덕 대왕 신종(聖德大王神鐘)의 명문에 잘 드러나 있다.

무릇 지극한 도(佛道)는 형상(形象)의 밖을 둘러싸고 있어서 눈으로 보아서는 그 근원을 알 수 없고, 큰 소리(부처의 진리)는 천지 사이에 진동하여 귀로 들어서는 그 울림(근본)을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설(假說)을 세워 세 가지 진리의 오묘한 경지를 보듯이 신종을 매달아 놓고 일승(一乘)의 깨달음을 일깨운다.223)박병완, 「성덕대왕신종지명에 나타난 사상」, 『어문 연구』 57, 한국 어문 교육 연구회, 1988의 번역문 참조.

이에 범종의 모양은 산악을 세운 듯하고 소리는 용이 우는 듯하여 위로 하늘 끝까지 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옥까지 소리가 스며들어 가서 신종을 보는 자는 기이하다고 하고 종소리를 들은 자는 복을 받는다고 한다.

범종의 몸체에는 불교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다양한 모습이 새겨지는데, 주악 도상은 주된 장엄(莊嚴)의 상징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러한 주악상은 지옥 중생의 구제라는 목적과 아울러 불법의 진리를 종소리를 통해 전파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였다고 볼 수 있다.224)황미연, 앞의 글, 1996, 25쪽. 범종에 새기는 주제, 무늬, 장식 등은 각 시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을 묘사하였다.

주악상이 새겨진 통일신라시대의 범종은 모두 아홉 점이 전하는데, 국내에 네 점이 남아 있고 나머지 다섯 점은 일본의 각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주악상이 새겨진 통일신라시대 범종의 종류, 제작 시기, 주악 도상의 내용을 정리하면 표 ‘통일신라시대 범종에 표현된 주악 도상’과 같다.225)이호관, 「공예」, 『한국사』 9 통일신라, 국사 편찬 위원회, 1998, 526쪽 참조.

이들 범종에 보이는 비천의 형상 부분은 무릎을 꿇고 합장 공양하는 모습이거나 결가부좌한 상으로 천의를 날리며 주악하는 비천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9세기 이전의 범종에서는 대체로 둘이 한 쌍을 이루는 2구 1조의 주악상이 종의 앞과 뒤에 배치되어 있다.

725년(성덕왕 24)에 제작하여 현존하는 우리나라 범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원사 동종(上院寺銅鐘)에는 종신(鐘身)의 앞과 뒤에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 천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구름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아 하늘을 나는 것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천의, 볼륨감을 느끼도록 처리된 신체와 얼굴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불교 조각을 엿보게 한다. 왼쪽의 천인은 공후를 몸으로 감싸고 있으며, 생황을 부는 오른쪽의 천인은 악기를 불기 위해 입에 강한 힘을 주어 볼이 한껏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상원사 동종은 종신 외에도 상대(上帶)와 하대(下帶) 및 유곽(乳廓)에도 다양한 주악상이 새겨져 있다. 상대에는 장소와 금을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고, 하대에는 배소·횡적·요고·당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 담겨 있으며, 유곽에는 당비파·생황·요고 등의 연주 모습이 상대의 주악상과 비슷한 형태로 조각되어 있다.

<표> 통일신라시대 범종에 표현된 주악 도상
명칭 조성 시기 주악상 형태 주악상 구성 위치
상원사 동종 725년 비천 공후·생황 종신
금(琴)·장소(長簫) 상대
일본 고꾸후하찌망큐지 소장
무진사명 범종
745년 비천 횡적·요고 종신
선림원지 출토 범종 804년 비천 횡적·요고 종신
횡적·종적·
요고·비파
하대
실상사 파종 828년(추정) 비천 828년(추정) 종신
일본 운쥬지 소장 범종 8세기 비천 횡적·요고 종신
일본 죠큐진자 소장 연지사명 범종 833년 비천 횡적·요고 종신
일본 고묘지 소장 범종 9세기 중엽 비천 비파·요고 종신
청주 운천동 출토
청주 박물관 소장 범종
9세기 후반 비천 비파 종신
일본 우사하찌망큐지
(宇佐八幡宮社) 소장 범종
904년 비천 요고 종신
확대보기
상원사 동종
상원사 동종
팝업창 닫기

일본 고꾸후하찌망큐지(國府八幡宮社) 소장 무진사명(無盡寺銘) 범종 또한 상원사 동종과 비슷한 형태의 주악상이 새겨져 있다. 요고를 치는 왼쪽의 천인이 얼굴과 상반신을 옆으로 돌려 횡적을 부는 천인을 바라보는 모습의 주악상이다.

확대보기
상원사 동종 주악 천인상 탁본
상원사 동종 주악 천인상 탁본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고꾸후하찌망큐지 소장 무진사명 범종 주악상 탁본
고꾸후하찌망큐지 소장 무진사명 범종 주악상 탁본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실상사 파종 비천상 탁본
실상사 파종 비천상 탁본
팝업창 닫기

선림원지에서 출토된 범종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서 천의 자락을 흩날리며 몸을 약간 옆으로 돌린 채 연화대좌에 결가부좌하여 횡적과 요고를 연주하는 모습이다.

실상사 파종(實相寺破鐘)의 비천상은 구름 위에 결가부좌한 채 몸을 서로 마주보도록 옆으로 돌리고 각각 생황과 횡적을 연주하는 모습이다. 머리 뒤로는 바람에 흩날리는 천의 자락이 굴곡을 이루며 부드럽게 솟아오르고 있어 생동감을 보여 준다.

일본 운쥬지(雲樹寺) 소장 범종 또한 2구 1조의 주악 천인상이 앞뒤로 동일하게 조각되어 있다. 왼쪽의 천인은 두 손을 모아 입으로 횡적을 불고 있고 오른쪽의 천인은 오른손을 머리 위에 들어 앞에 놓인 요고를 치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

대체로 9세기 이전의 범종에서는 2구 1조의 주악 천인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나, 일본 죠큐진자(常宮神社)에 소장되어 있는 연지사명(蓮池寺銘) 범종에서는 단독 주악상이 나타나고 있다. 833년(흥덕왕 8)에 제 작하였다는 뚜렷한 명문을 갖고 있는 이 범종에는 구름 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두 팔을 벌린 채 요고를 치는 단독 주악상이 앞과 뒷면에 동일하게 조각되어 있다. 9세기에 들어오면서 2구 1조의 주악상이 단독상으로 바뀌는 새로운 형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확대보기
일본 조큐진자 소장 연지사명 범종 주악상의 탁본
일본 조큐진자 소장 연지사명 범종 주악상의 탁본
팝업창 닫기

일본 고묘지(光明寺)에 소장되어 있는 범종은 9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는 천의 자락을 날리며 구름 위에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 천인상이 새겨져 있다. 한 구는 비파를 연주하고 한 구는 요고를 양손으로 치는 모습인데, 요고를 치는 주악상은 구름 위에서 상체를 세우고 하체를 꺾어 ㄴ 자로 날고 있다.

9세기 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청주시 운천동에서 출토된 범종에는 일본 고묘지에 있는 범종과 유사한 주악상이 새겨져 있다. 종신에는 두 구의 비천상이 조각되었는데, 모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한 구는 구름 위에 앉아 천의를 날리며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상이고, 한 구는 합장한 모습의 천인상이다.

확대보기
운천동 출토 범종
운천동 출토 범종
팝업창 닫기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9세기 이후에 제작되는 범종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이 구름 위에 직접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단독 주악상으로 바뀌고 있다. 종신의 한 면에 한 구씩 단독 주악상을 조각하고 이를 앞면과 뒷면에 동일한 형식으로 배치하는 특징을 보여 준다. 또한 비파와 같은 전에 볼 수 없었던 악기의 등장도 새롭다고 하겠다.226)최응천, 「통일신라 범종의 특성과 변천-특히 주악 천인상의 변화를 중심으로-」, 『경주 사학』 16, 경주 사학회, 1997 참조.

주악상이 연주하는 악기는 공후와 생황, 횡적과 요고, 생황과 종적, 비파와 요고 등이며, 상대와 하대에 당초문(唐草紋)과 함께 두서너 명의 작은 주악 비천상을 새긴 경우도 있다.227)황미연, 앞의 글, 1996, 28쪽. 범종에 표현된 주악상의 악기는 주로 당악기로 이 시기의 당악 수용에 관한 방증 자료로 활용되고 있지만 아직 악기의 구조나 변천 과정, 편성의 근거로 채택되지는 못하고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