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5. 고려시대의 음악 도상 자료
  • 범종에 나타나는 주악 도상
송혜진

현재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범종 약 160여 개 가운데 주악 도상이 새겨진 것은 10여 종이다. 통일신라 종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시대의 범종은 기본적으로 통일신라의 요소를 따르고 있지만 고려 초기에 제작한 종은 종신에 주악상 대신 몸을 옆으로 뉘어 마치 나는 듯한 비행(飛行) 비천상을 새기는 등의 양식적 변천을 보여 준다.

특히 2구 1조의 주악 비천상이 주류를 이루던 이전 시대에 비해 단독 주악상으로 바뀌었으며, 악기와 춤의 표현도 상당히 변화하였다. 비천상이 직접 연주하는 모습 외에 천의 자락에 매달린 악기가 허공에 표현되거나 춤을 추는 천인을 위해 반주하는 듯한 악무(樂舞)의 편성 등 이전 시기에 볼 수 없던 주악 도상이 관심을 모은다. 쇼우지(正祐寺) 소장 종에는 주악 천인이 연꽃 모양의 구름 위에 앉아 각각 비파와 생황을 연주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그 밖에 텐린지(天倫寺) 소장 종, 쇼텐지(承天寺) 종, 오노에진자(尾上神社) 종, 국립 춘천 박물관 소장 동원(東垣) 1800종, 시카우미진자(志賀海神社) 소장 종 등에는 부처와 보살의 양옆으로 천인 없이 악기만을 천의에 묶어 표현하였다.235)고명지, 「고려 범종의 장식 요소 연구」, 홍익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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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쇼우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일본 쇼우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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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쇼우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일본 쇼우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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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천의 자락에 매달린 악기가 허공에 표현되는 것은 불국토를 장엄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미풍이 불어오더니 미묘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하늘의 음악처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으며, 음악과 미묘하고 다채로운 비단으로 공중에서 공양을 하였다.

허공에서는 우레나 천둥 소리가 큰 소리를 냈으며, 종·정·대고·공후 같은 악기와 여러 가지 소·슬·금·쟁·요·정 등이 부드럽고 애잔한 소리를 내며 노래와 춤에 맞추어 연주되었는데, 그들이 조화가 잘 되어 억백천 겁 동안 공양하고 받들었으니 여러 도무극(度無極, 바라밀)이 다 갖추어졌다.236)박범훈, 『한국 불교 음악사 연구』, 장경각, 2000 참조.

범종 또한 불국토를 장엄하는 수단이었고, 종신에 악기를 천의에 묶어 허공에 떠 있는 구름과 함께 표현한 것은 악기가 저절로 울리는 불국토의 모습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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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쇼후쿠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일본 쇼후쿠지 소장 종의 주악 비천상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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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범종에 가장 많이 표현된 도상은 천인상이며, 좌상(坐像), 비천상(飛天像), 입상(立像) 등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춤을 추고 있거나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거나, 향을 공양하거나, 연꽃 가지를 손에 잡고 있거나, 공중에서 아래로 꽃을 뿌리고 있는 모습 등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비천상의 양옆으로는 주악 비천상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일본 쇼후쿠지(聖福寺) 소장 종의 주악 비천, 일본 사이다이지(西大寺) 간노인(觀音院) 소장 종에 새겨진 횡적·비파·생황·동발·박 등의 편성에 춤이 어울린 구성은 일반적인 범종의 주악 도상에 비해 매우 이채롭다.

이 밖에 고려시대 범종의 주악 도상의 특징으로는 통일신라시대보다도 종신에 표현되는 악기의 종류가 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일본에 있는 텐린지 소장 종(1011 추정), 쇼텐지 종(1065), 오노에진자 종, 시카우미진자 소장 종에서 공후·생황·비파·요고·횡적·박·동발·피리 등을 볼 수 있다. 주악 도상이 표현된 고려시대의 범종은 표 ‘고려시대 범종에 표현된 주악 도상’과 같다.

<표> 고려시대 범종에 표현된 주악 도상
명칭 조성 시기 주악상 형태 주악상 구성
일본 사이다이지 간노인 소장 종 10세기 중엽 비천 박·동발· 춤 ·횡적·생황
일본 텐린지 소장 종 1011년(추정) 천의 생황·비파·횡적·박·공후·장구
일본 오노에진자 소장 종 고려 전기 비천 횡적
천의 비파·배소·횡적 피리·공후·?
일본 쇼우지 소장 종 1019년 비천 비파·생황
일본 쇼텐지 소장 종 1065년 천의 박·횡적·요고
일본 쇼후쿠지 소장 종 1009∼1020년(추정) 비천 박·바라·춤·생황·횡적
일본 시카우미진자 소장 종 고려 천의 비파·박
동원 1800종 고려 천의 요고·횡적

이 가운데 10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사이다이지 간노인 소장 종과 쇼후쿠지 소장 종에는 고려 전기의 특징인 무용 천인상이 주악 비천상과 함께 표현되어 있다. 특히 쇼후쿠지 소장 종에는 14구의 천인이 등장하는데, 중앙의 무용 천인은 허리를 꼬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였다. 사이다이지 간노인 종에도 두 팔을 엇갈리게 올리고 허리를 돌리며 춤을 추는 무용 천인상의 양옆으로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비천상이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도상된 무용과 음악은 실제로 당시 고려에서 연행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불교를 국가적으로 신봉하던 고려에서는 음악과 무용을 통해 불법을 찬미하고 장엄하려는 의식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행사가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였으며, 여기에서 등장하던 무용과 음악이 고려 범종에 형상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237)최원정, 「고려 범종 양식 소고」, 『문화 사학』 17(간송 전영필 선생 40주기 추도 특집), 한국 문화사 학회, 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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