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5장 소리의 기록, 음반사
  • 1. 1896년 첫 녹음부터 1910년대까지
  • 1896년 최초의 녹음
노재명

음반(音盤)은 음(音)의 기록물로서 소리를 보관하였다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재생해서 들을 수 있는 편리한 발명품이다. 음반은 1877년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 처음 발명하였다. 처음 발명될 당시의 음반은 원통형이었고 나팔통이 달린 유성기(留聲機)로 재생하였다. 그 후 원통형 음반은 평판(平板)으로 발전하였다. 평판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는 레코드 프레스 기술이 부족하여 한쪽 면에만 소리 골을 새기고 뒷면은 소리 골을 내지 못한 일명 ‘쪽판’을 생산하였다. 초기에 음반을 취입하는 방식은 나팔통에 대고 녹음하는 기계식이었고 그 후 마이크가 발달하면서 전기식 녹음으로, 모노에서 스테레오와 디지털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음반 매체도 유성기 음반(Standard Playing)에서 장시간 음반(Long Playing)과 콤팩트디스크(Compact Disc)로 점차 발달하였고, 오디오 또한 빠른 속도로 개발되었다.

1880년(고종 17)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간 이양선(異樣船)에서 프랑스 신부가 평양 감사에게 유성기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유성기를 대면한 기록이다. 그리고 1886년(고종 23)에 충남 아산의 해미 현감이 유태인 오페르트(Ernst Jacob Oppert)가 몰고 온 상선(商船)에 초대되어 영국의 스코트가 개량한 연통식(煙筒式) 레코드를 들었다고 한다. 같은 해 일본의 쓰시마 섬 영주인 무쓰 무네미쓰(陸奧宗光)가 미국에서 처음 납관식(蠟管式) 실린더 축음기를 일본에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듬해인 1887년(고종 24)에는 미국 공사 알렌(Herace Newton Allen)이 유성기를 가져왔는데, 상품화된 지 6년 만에 우리나라에 들여온 이 유성기도 원통식이었다.

1899년 3월 19일자 신문 기사에는 “서양 격치가(格致家)에서 발명한 유성기를 매구(買求)하야 서서봉상시전(西署奉常寺前) 113통 9호(一百十三統九戶)에 치(置)하얏는데……”라는 대목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에 미국 유성기를 수입하여 판매한 일본보다 3년 늦게 유성기를 시판한 것을 알 수 있다.249)황문평, 「사운드 문화」, 『노래 백년사』, 숭일 문화사, 1981, 18쪽.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유성기를 판매하기 시작한 1899년 당시부터 원통형 음반에 우리나라 사람의 소리가 녹음되었을 것이라 쉽게 짐작할 수 있는데, 아직까지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유성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어떤 음악인지보다 희한한 기계에서 소리가 나온다는 그 자체에 놀라고 신기해 하였으며, 마치 번지 점프를 타는 듯한 충격적인 유희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확대보기
에디슨 축음기와 음반
에디슨 축음기와 음반
팝업창 닫기

오늘날 음반은 소리뿐 아니라 영상과 활자까지도 저장할 수 있는 기록물로 발전하였다. 음반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하자 이제 음반은 책이나 다른 어떤 기록 매체 보다도 다양한 정보를 생생하게 담을 수 있는 기록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음반은 이제 음악 외에도 지나간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기록 매체로 대접 받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음반에 관한 연구는 우리나라 학계의 큰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다행히 20여 년 전부터 이보형이 주축이 된 한국 고음반 연구회(韓國古音盤硏究會)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이 방면의 연구를 주도해 왔고, 그에 따라 고음반의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었다. 이제 음반학 분야에서는 한국 고음반 연구회의 주도적인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음반 산업은 서양 문화를 일시에 소화할 수밖에 없었던 개화기와 일제 강점기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출발부터 우리 고유의 음반 문화를 가꾸어 나가지 못하였고 외국인의 손에 따라 좌우되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음반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이 남긴, 가장 오래된 녹음은 1896년 7월 24일에 안정식, 이희철 등 세 명이 미국에서 취입한 에디슨 원통형 음반이다. 이는 1998년 4월 25일 미국에서 내한한 음악학자 로버트 프로바인(Dr. Robert.C.Provine)이 발표한 ‘미국에 보존된 19세기 말의 한국 음악’이란 글과 함께 처음 소개되었다.250)노재명, 「정가 음반사」, 『제9회 한국 음반 전시회 학술 대회-안내 인쇄물-』, 한국 고음반 연구회, 1998년 9월 29일, 6쪽. 미국 국회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1896년 한국인 녹음 자료는 1998년 4월 25일 국립 국악원 국악 박물관에서 열린 사단 법인 한국 국악 학회 월례 발표회에서 로버트 프로바인(Dr. Robert. C. Provine)이 「미국에 보존된 19세기 말의 한국 음악」이라는 글과 함께 우리나라 학계에 처음 소개하였다. 이들 진귀한 음반은 대량 생산한 상품이 아니라 학술 목적의 기록용으로 녹음한 것인데, 요즘의 녹음기처럼 현장음을 단 한 장의 레코드에만 즉석 기록한 것이다. 에디슨 원통형 음반 여섯 개에 약 17분 분량의 한국인 녹음이 담겨 있다. 이는 1896년 미국 인류학자 엘리스 플랫처(Alice. C. Fletcher)가 여러 나라의 민속 음악을 수집하여 연구하는 과정에서 미국 내에 있던 한국인들을 수소문하여 조사, 녹음, 기록한 자료이다. 여기에는 매화타령, 애국가(민요조), 아리랑(해주 아롱타령), 제비가(긴잡가), 달아 달아(구전 동요) 등의 노래, 그리고 특이하게 손뼉을 치면서 즐기는 놀이인 수박치기 소리가 수록되어 있다.251)미국 국회 도서관 원본 소장. 국악 음반 박물관 노재명 소장 국악 녹음 테이프 관리 번호 MIMC-0972(1998년 복사본). 이 복사본이 한국 고음반 연구회 주최 ‘광복 60주년 기념 음반 자료 특별전-한민족의 발자취를 소리에 담다-’(2005년 8월 2∼27일, 국립 국악원 국악 박물관 전시장) 전시회에 진열 소개된 바 있다. 그리고 이 복사본 전시를 계기로 한국 고음반 연구회 회원들이 미국 국회 도서관과 접촉하여 이 음원을 콤팩트디스크로 복각하였다(정창관, CKJCD-010, 1CD, 2007년 비매품).

곡목의 다양함, 그리고 수박치기 소리까지 녹음된 점에서 당시 미국 학 자의 한국 소리 문화에 대한 학문적인 호기심과 연구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전문 음악인이 아닌 무명의 재미 동포들이 한 녹음이고 음질은 아주 열악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사람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뜻 깊고 매우 감격스러운 음반이다. 그리고 음악, 언어, 인류학, 국제 교류사 등 여러 분야의 학문에 좋은 참고 자료라 할 수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