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5장 소리의 기록, 음반사
  • 2. 1920년대부터 1945년 광복까지
  • 1932∼1945년 중소 음반 회사의 우리 음악 음반
노재명

1930년까지 우리나라에서 음반을 발매한 회사는 몇몇에 불과하였으나 1930년대 초반에 이르러는 양상이 크게 바뀌었다. 1930년대 초반 거의 비슷한 시기에 폴리도르, 오케이, 시에론, 태평 레코드(다이헤이, 기린) 등 여러 회사가 음반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이렇게 많은 회사가 우리 음악 음반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우리 음악 음반 제품이 처음 발매된 1907 년 이래 약 25년 동안 유성기가 많이 보급되었고 그만큼 음반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 음반 시장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점은 예로부터 가무악을 좋아하는 우리 민족 정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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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도르 레코드는 1927년 일본 도쿄에서 설립되었고 1932년 무렵부터 광복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회사에서는 흑반(黑盤)과 적반(赤盤)으로 나누어 우리 문화 예술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회사에서는 판소리 명창 이동백·김창룡·정정렬·이선유·조학진·조상선·임소향·박록주·문련향·박초월, 가야금 병창 명인 오태석·조앵무, 가야금 명인 정남희·김운선(김죽파), 경서도 명창 서산호주·신해중월·표연월·이영산홍·김옥엽·이진봉·김주호·곽명월·곽산월·선우일선 등이 음반을 취입하였다. 그리고 대금 명인 김계선, 퉁소 명인 정해시, 해금 명인 김덕준(진)·방용현, 단소 등의 관악기 명인 고재덕·이병우, 국악 합주단인 폴리도르 고악단, 명무(名舞)이며 명고수이자 피리 명인인 한성준 등도 음반을 취입하였다. 또 이 회사에서는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조학진 등이 취입한 창극 심청전(23SP)과 창극 적벽가(18SP) 음반을 제작하였다. 또 왕수복·김용환·강홍식의 대중 가요, 성동호·서상필의 연극, 이화자·선우일선의 신민요, 배재 학당과 중앙 보육 학교 교가 음반이 이 회사에서 취입되었다.

오케이 레코드는 1932년 무렵 이철(李哲)이 창립한 회사로서 1933년부터 광복 때까지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회사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사람이 설립한 음반 회사 가운데 가장 크게 성공하였고 폴리도르 레코드와 어깨를 겨루었다. 1932∼1937년 무렵 오케이 레코드는 음반 생산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제국 축음기 주식회사 등 다른 음반 회사의 시설을 이용하여 음반을 제작하였다. 그리고 1938년 무렵부터는 제국 축음기 회사가 오케이 레코드를 인수하여 운영하였다. 오케이 레코드는 정규반(흑반·백반), 고급반(적반)으로 나누어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회사는 다른 회사에 비해서 월등히 싼 가격으로 음반을 공급함으로써 음반 시장에서 장기간 동안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고 유성기 음반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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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레코드의 음반
오케이 레코드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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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레코드에서 발매된 국악 음반 가운데 판소리와 남도 민요는 유성준, 장판개, 박동실, 박중근, 전일도, 오수암, 이화중선, 임방울, 박록주, 김준섭, 하농주, 김연수, 오비취, 김소희, 신숙, 이중선, 서영주, 김록주(김해 김록주와 동명이인), 김옥련, 모추월, 조금옥, 조난옥 등이 녹음하였다. 경서도 명창으로는 김종조, 최순경, 구대감, 최정식, 신해중월, 유개동, 박부용, 홍소월, 장학 선, 최풍천, 신금홍(판소리 명창 신금홍과 동명이인), 김영순, 이은영 등이 이 회사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그리고 가야금 병창 명인 오태석·이소향·최소옥·김금옥·성금화, 불교 음악 명인 권명학·하룡남·김수남·민교식, 정가 명창 최일원·고영태, 남도 민요 명창 조진영, 대금 명인 김계선·박종기, 해금 명인 지용구, 가야금과 거문고의 명인 김종기, 피리 명인 강학수, 판소리와 민요의 명창 김추월, 판소리와 가야금의 명인 조상선, 고수이자 피리와 호적의 명인인 정원섭, 고법과 해금의 명인 지동근, 거문고 명인 신쾌동, 가야금 명인 정남희·김금암(김병호) 등도 이 회사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이 밖에도 대중 가수 남인수·백년설·박향림·고복수·김해송·장세정·이난영·김정구를 비롯해서 이화자(신민요), 신불출(만담), 녹성 동요회와 백양 동요회(동요), 정훈모(소프라노) 등이 이 회사에서 녹음을 남겼다. 한편 오케이 레코드는 일제 강점기 전집물을 가장 많이 발매하였다. 이 회사가 낸 전집으로는 정정렬 도창 창극 춘향전(20SP), 오수암·이화중선·임방울·김록주의 창극 흥보전(12SP), 김연수·박록주·정남희·김준섭·김옥련의 창극 심청전(16SP)이 걸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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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론 레코드는 1931년부터 광복 때까지 우리 문화 예술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 회사는 일본 음반 회사였고 대부분 이서구의 기획에 따라 음반을 제작하였다. 판소리 명창 김정문·이화중선·이중선·임방울·신금홍·박록주·김옥진·이옥화, 경서도 명창 박춘재·최순경·김흥렬·이영산홍·김옥엽·이진봉·박부용·이금옥, 가야금 명인 한성기 등이 이 회사에서 음반 을 취입하였다. 이 회사에서 제작한 전집물로는 김정문, 신금홍 등의 창극 춘향전 음반(12SP)이 있다. 그리고 영화 변사 김영환, 만담가 신불출, 대중 가수 김창배·최연련·김성파·김윤심·최향화·김연실 등이 이 회사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태평 레코드는 1932년 무렵부터 광복 때까지 다이헤이, 기린, 킹 레코드 상표로 우리 문화 예술 음반을 발매하였다.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전일도·박록주·주난향·김남수·김유앵·이취향·변진홍, 경서도 명창 김종조·김태운·이영산홍·김옥엽·이진봉·이진홍·이진향·장옥화·장향란·김복성·이소홍·김향·김추월, 남도 민요 명창 이난향, 가야금 병창 명인 오태석·이소향 등이 이 회사에서 음반을 냈다. 그리고 대금 명인 박종기, 가야금 명인 심상건·한성기, 피리 명인 고재덕, 단소와 양금의 명인 최수성, 국악 합주단인 태평 조선 악단, 불교 음악 명인 권명학 등도 이 회사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이 밖에 이난영, 임생원, 이은파, 강석연, 백난아, 백년설 등의 대중 가요를 이 회사에서 녹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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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과 음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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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온 레코드는 우리나라 사람이 설립한 음반 회사로 추정된다. 대부분의 소규모 회사가 그렇듯이 이 회사 또한 음반 생산 시설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에서 제작한 음반의 레이블을 보면 일본 오사카의 고카 레코드 등 다른 음반 회사의 시설을 이용하여 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회사에서는 1930년대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고라이라는 상표로도 음반을 냈다. 밀리온과 고라이 레이블로 발매된 국악 음반으로는 판소리 명창 이화중선·임방울·김남수·조소옥, 경서도 명창 이영산홍·고일심, 대금 명인 박종기, 가야금 명인 강태홍, 가야금 병창 명인 최계란 등의 녹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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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의 춘향가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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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3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돔보 조선 레코드(잠자리표), 쇼지쿠 레코드, 코리아 레코드, 뉴코리아 레코드, 리베라 레코드, 시스터 레코드, 케이아이 레코드, 디어 레코드, 금조인 특허 레코드와 같은 회사에서 약간의 우리 음악 음반을 제작하였다. 돔보 조선 레코드(잠자리표)는 경서도 명창 박부용·이금옥·박숙자·이영자, 가야금 명인 한성기, 쇼지쿠 레코드는 가야금 명인 한성기, 경서도 명창 김주호, 코리아 레코드는 국악 합주단인 코리아 악단, 뉴코리아 레코드는 판소리 명창 김초향, 리베라 레코드는 경서도 명창 박부용, 케이아이 레코드는 판소리 명창 김남수, 디어 레코드는 경서도 명창 이영산홍·김옥엽, 금조인 특허 레코드는 서도 명창 백운선의 음반 등을 발매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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