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5장 소리의 기록, 음반사
  • 3.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 콤팩트디스크
노재명

1987년 에스케이시(SKC) 회사는 장시간 음반을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한 콤팩트디스크(CD)를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생산 초기인 1980년대 후반에는 콤팩트디스크 자체가 고가인 데에다가 사용 기계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장시간 음반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콤팩트디스크가 지닌 편리함과 고음질의 장점을 앞세워 음반 시장을 점차 장악하였고, 1992년에는 장시간 음반의 생산량과 비슷한 추세로 제작되다가 1993년 이후 장시간 음반의 판매량을 앞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는 여러 음향 영상 매체 중에서도 콤팩트디스크가 거의 모든 음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257)노재명, 「광복 이후 한국 음반사」, 『스테레오 음악』 23호, 중앙일보사, 1994년 1월 20일, 276∼281쪽.

우리나라 음반 시장의 최대 호황기였던 1990년대에 외국의 여러 직배 음반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활발하게 영업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팝송이 음반 시장을 선도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외국 팝송을 뛰어넘는 수준의 옛 대중 음악의 우수성이 알려지고 본격적인 재조명 작업이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이에 따라 팝송의 인기가 점차 시들해지면서 복고풍의 대중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중고 음반 시장에서 대중 음악 장 시간 음반이 100∼1,000원 하고 팝송 불법 복제 장시간 음반이 500∼5,000원, 팝송 라이선스 장시간 음반이 3,000∼10,000원, 외국 회사에서 제작한 팝송 장시간 음반 원판이 몇 만 원 이상까지 하던 것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그리하여 외국 팝송 음반 가격은 폭락하고 국악과 대중 음악 장시간 음반은 최하 5,000원, 최고 500만 원까지 급등하였고,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우리 음악 음반이 최고가의 전 세계적 수집 대상으로 부상하였다. 그러한 분위기와 함께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과 소비자들의 복제 기술과 개인 소유 복사 기자재의 발달로 국내외 음반 시장이 상당 부분 황폐해지자 외국 음반 회사가 대부분 우리나라 음반 시장을 떠났다. 현재는 지구 레코드, 서울 음반, 신나라 레코드, 시제이 뮤직 등의 회사가 음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나라 음반 생산 시설과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오늘날 음반 산업은 실로 놀라운 진보를 이루어 냈다.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음원 불법 복제로 인해 음반 시장이 크게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음악 고음반은 전 세계 평론가와 수집가의 극찬과 최고의 관심을 받으며 수집, 연구, 흠모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한류(韓流) 환경까지 잘 활용한다면 우리 음악 음반의 세계화와 수출 경쟁력은 상당히 높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긍지, 자신감을 좀 더 갖고 우리 나름의 알찬 음악 상품 개발, 치밀한 기획을 덧붙인다면 세계적으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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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제작된 콤팩트디스크 가운데 노재명 등이 기획 제작한 서울 음반의 빅타 유성기 원반 시리즈와 엘지 미디어의 콜롬비아 유성기 원반 시리즈, 지구 레코드의 대 중 음악가 신중현 음반 시리즈, 그리고 문화 방송(MBC) 최상일 프로듀서 등이 기획 제작한 한국 민요 대전이 근대 우리나라 음반사에 있어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음반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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