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
  • 3. 벼농사의 발전과 확산
  • 벼농사와 물
박찬흥

벼농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의 관리이다. 초기 벼농사에서는 하천의 삼각주 지역이나 소택지 등에서 간단한 수리 시설 없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점차 제한된 지역을 벗어나 물의 통제가 가능한 계곡 주변으로 경작지가 늘어나고 있다. 초기의 가장 일반적인 수리 시설은 작은 하천의 지류나 계곡 물을 담아서 쓰는 보(洑)의 형태였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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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碧骨堤) 장생거
벽골제(碧骨堤) 장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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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논의 개간이 평지나 하천가로 확대되면서 제방과 둑을 쌓아 물을 관리할 필요가 생겼고, 저수지도 만들게 되었다. 수리 시설은 벼농사의 발 달과 더불어 늘어났고, 벼농사가 많이 이루어졌던 백제와 신라에서는 일찍부터 제방과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관리하였다. 144년(일성이사금 11)에 “제방을 보수하고 널리 농지를 개간하였다.”는19)『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일성이사금 11년. 기록이 보인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면, 신라에서는 2세기 무렵에 벼농사가 보급되면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수리 시설을 만들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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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제비
영천 청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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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벼농사는 늘 가뭄의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었다. 402년(아신왕 11) 여름에 크게 가물어 벼의 모가 타 마르자, 백제 왕이 친히 횡악에 나아가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20)『삼국사기』 권25, 백제본기3, 아신왕 11년. 기록으로 보아, 벼농사가 널리 이루어졌던 백제나 신라에서는 물의 관리가 매우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수리 시설은 330년(흘해이사금 21)에 만든 벽골지(碧骨池)이다. 당시 벽골지가 있던 김제는 백제 땅이었으므로 이 기사가 『삼국사기』 「신라본기(新羅本紀)」에 기록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벽골제는 790년(원성왕 6)에 전주 등 일곱 개 고을의 백성을 징발하여 보수하였다.21)『삼국사기』 권10, 신라본기10, 원성왕 6년.

벽골지 이외에도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은 여러 개가 보이고,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든 뒤 비석을 세워 놓은 경우도 있다. 제방을 쌓았다는 기록을 보면, 429년(눌지마립간 13)에는 시제(矢堤)를 쌓았고,22)『삼국사기』 권3, 신라본기3, 눌지마립간 13년. 531년(법흥왕 18)에는 제방을 수리하게 하였으며,23)『삼국사기』 권4, 신라본기4, 법흥왕 18년. 859년(헌안왕 3)에도 제방을 수리하고 농사를 권장하였다.24)『삼국사기』 권11, 신라본기11, 헌안왕 3년. 또 저수지를 만든 뒤 세워 놓은 비석으로는 청제비와 오작비가 있다. 536년(법흥왕 23)에는 경북 영천에 청제(菁提)를 만들었고, 798년(원성왕 14)에는 청제를 다시 수리하였다는 것이 영천 청제비(永川 菁堤碑)에 새겨져 있다. 또 578년(진지왕 3)에는 둑을 뜻하는 ‘오(塢)’를 대구에 만들었음이 대구 무술명 오작비(大邱戊戌銘塢作碑)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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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제 전경
영천 청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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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수리 시설의 축조로 당시 신라에서는 논의 비율이 증가하고 기존의 논들도 더욱 안정적으로 물을 관개할 수 있게 되자 생산물의 수확이 증가하였을 것이다. 특히 영천 청제비 정원명(798)의 비문에 보이는 ‘상배굴리(上排掘里)’는 물을 빼는 수리 시설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그때까지 물을 대기 위해 둑을 허물던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배수를 조절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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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무술명 오작비
대구 무술명 오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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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규모의 수리 관개 시설을 만들었다는 것은 논농사가 그만큼 중요하였고 또 이 지 역에서 널리 행해졌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신라의 입장에서도 수리 관개 시설을 쌓거나 정비하여 안정적으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쌀 생산을 증대시킴은 물론 농민 생활을 안정시켜 효과적으로 백성들을 지배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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