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
  • 6. 조의 수취와 지급
  • 조의 수취
박찬흥

제사나 의례는 단순한 종교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제사를 위해서는 필요한 물품이 있는데, 국가 체제가 정비됨에 따라 이러한 제수(祭需) 용품은 복속 집단의 공납(貢納)이나 조세(租稅)로 충당되었다. 일본 고대의 조(租)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곡령을 지닌 첫 이삭(初穗)을 공동체의 수장에게 바치던 공납 의례에서 비롯되었고, 이것이 발전하여 율령제(律令制) 아래에서는 논 중의 수조전(收租田) 경작자에게 경작 면적을 기준으로 전조(田租)를 부과하였다. 중국에서도 조는 수확물의 일부를 나누어 제사에 바치는 곡물로서, 혈족 집단이 공동의 조상신에게 제사 지내고 그 족제(族制)를 유지하는 경제적 기초였다. 『맹자(孟子)』에 보이는 조법(助法)의 ‘조(助)’도 원래는 제사에 바칠 곡물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동원하여 토지를 경작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조(租)’라는 한자는 벼인 ‘화(禾)’ 자와 ‘조(且)’ 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조(且)’는 ‘또 차’, ‘많을 저’ 등의 뜻도 있지만 ‘도마 조’라는 뜻도 있는데, 받침 위에 신에게 바칠 희생을 겹쳐 쌓은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이 다. 따라서 ‘조(租)’는 벼를 겹겹이 쌓아 신에게 바치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본래 공동체 내부의 제사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벼를 제수 용품으로 바쳤던 것이 ‘조’였던 것이다. 그 뒤 각 지역 공동체가 통합되면서 복속된 집단에서 ‘조’를 바치게 되었고, 고대 국가가 형성되고 정비됨에 따라 ‘조세(租稅)’를 거두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에서 모두 쌀을 조세로 거두었고 이 점은 신라에서 마찬가지였다. ‘개선사석등기’에는 ‘경조(京租)’라는 용어가 보이는데, 아마도 신라의 수도인 경주로 징수되는 조세를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또 일본 쇼소인(正倉院)에서 발견된 사파리가반부속문서(佐波理加盤附屬文書)의 앞면에는, 보천촌에서 매월 정해진 양의 쌀과 콩을 수취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때 수취된 쌀은 ‘상미(上米)’, 즉 상등품의 쌀이었으니, 좋은 품질의 쌀을 조세로 수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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