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1. 쌀 생산의 확대
  • 고려시대 백성들의 주식
이정호

쌀은 역사적으로 일반 백성의 주식이 아니었다. 쌀은 국왕, 왕족, 관료 양반 등 지배층의 주식이었거나 국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조세로 납부하 는 대상이었다. 백성의 주식은 좁쌀·보리·콩 등 밭작물이었다. 이 점을 살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사례가 남아 있다.

가뭄·홍수 등 자연재해로 기근이 들었을 때 나라에서는 곤궁한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곤 하였는데, 이를 진휼(賑恤)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1101년(숙종 6)에는 보리가 익을 때까지 기한을 정해 진휼하였다.73)『고려사』 권80, 식화지3, 진휼(賑恤), 수한역려진대지제(水旱疫癘賑貸之制), 숙종 6년 4월. 이것은 보리를 수확하고 나면 곤궁한 백성의 식량이 어느 정도 해결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백성이 주로 먹던 식량은 보리였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보리는 수확 시기가 벼와 달라, 벼처럼 가을철에 수확하는 곡물이 흉년들 경우 다음해 수확 전까지 공백기를 메우는 곡물로서 중요하였다.

일반 백성의 식량으로서 좁쌀과 콩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슬프다, 유월 철에 / 嗟哉六月閒

심은 조는 아직 익지 않았는데 / 種粟粟未熟

아이는 병들어 나무뿌리 씹으며 / 兒病咬菜根

천장을 바라보며 슬픔을 머금었네 / 仰屋含悽惻

머리털 잘라 술지게미 바꿔 왔지만 / 剪鬟換醩來

쉬고 썩어서 먹을 수 없구나.74)『동문선(東文選)』 권5, 제동문온(祭東門媼). / 敗惡不可食

윤소종(尹紹宗, 1345∼1393)이 지은 이 시를 보면, 백성의 식량 사정이 매우 열악하였으며, 때문에 좁쌀이 매우 중요한 식량이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고려 말 이성계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였다. 이성계가 동북면(東北面)의 안변에 이르렀을 때 마침 비둘기 두 마리가 밭 한가운데의 뽕나무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화살을 쏘자 비둘기 두 마리가 함께 떨어졌다. 길가에서 두 사람이 김을 매고 있었으니, 한 사람은 한충(韓忠)이요, 다른 한 사람은 김인찬(金仁贊, ?∼1392)이었다.

두 사람이 이를 보고 탄복하면서 말하기를, “잘도 쏩니다. 도령의 활솜씨여!” 하니, 이성계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벌써 도령은 지났소.” 하고는, 두 사람에게 명하여 비둘기를 가져가다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에 두 사람이 감사의 표시로 좁쌀밥(粟飯)을 준비하여 바치니, 태조가 그 성의를 보아 좁쌀밥을 먹었다.75)『태조실록』 권1, 신우 9년 9월.

이성계의 도량이 뛰어나고 겸손한 점을 서술한 내용인데, 그 중에는 당시 사람들의 주식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단서가 있다. 길가에서 김을 매고 있던 한충과 김인찬은 이성계가 잡아 준 비둘기로 겨우 고기 맛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감사의 표시로 정성껏 좁쌀밥을 대접한 것이다. 이에 이성계는 성의를 보아 좁쌀밥을 먹었다. 일반 백성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좁쌀밥을 대접할 정도로, 쌀밥으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꿈에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성계와 같은 관료는 성의를 보아 좁쌀밥을 먹어 줄 정도로 평상시 식사는 좁쌀밥 이상의 것, 대체로 쌀밥을 주식으로 한 것을 반영하고 있다.

콩 또한 고려시대에 중요한 식량이었다. 콩은 구황 식량(救荒食糧)으로 의미가 컸다. 예를 들어 청렴결백(淸廉潔白)하기로 유명하였던 윤해(尹諧, 1231∼1307)는 관직에 있었음에도 집안이 가난하여, 죽을 쑤어 먹을 수도 없어 콩을 달여 배고픔을 채웠다고 한다. 콩 재배는 농업 기술의 측면에서도 유용한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콩은 재배 과정에서 생성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 성분으로 일종의 비료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토양의 지력 회복에 도움을 준다.

콩의 장점은 우리나라 식생활 영양의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주식이 곡물 위주여서, 육식을 통해 단백질 영양소의 섭취가 이루어지는 서양과 달리, 단백질 섭취 면에서 취약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취약점을 보완해 주었던 곡물이 바로 콩으로, 콩의 식용은 우리의 식단에서 부족 해지기 쉬운 단백질 영양소의 섭취에 유용한 것이었다. ‘두장(豆醬: 메주, 청국장) 문화’라고도 일컬어질 정도로 우리나라 식단에서 콩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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