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2. 쌀 증산 정책
  • 조세와 국가 재정
이정호

조세로 거둔 곡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국가 재정 운영의 토대였다. 한편, 고려시대 재정 운영 방식에는 독특한 점이 있었다. 곡물을 국가에서 일괄하여 거두었다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출 용도별로 토지를 해당 관청 에 나누어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조세를 화폐가 아니라 쌀이나 포 같은 현물(現物)로 거두어야 했던 경제 발전 수준 때문에 중앙 정부가 국가 운영에 필요한 현물을 모두 거두었다가 다시 나누어 줄 수 없어서 생겨난 것이었다.

물론 호부(戶部)와 삼사(三司)처럼 재정 운영을 계획하고 총괄하는 관청이 있었다. 그러나 조세의 원천으로 토지를 분배받고 실제로 세입과 세출을 관장한 것은 각각의 해당 관청이었다. 따라서 쌀이나 베를 저장하고 지급하는 일은 창(倉)이라 불린 관청이 나누어 담당하였다. 조세로 거둔 곡물은 창에 보관하여 놓고 재정 운영의 용도에 대비하였던 것이다. 쌀 등을 보관한 대표적 창고로 좌창(左倉)·우창(右倉)·용문창(龍門倉)·대창(大倉)·운흥창(雲興倉) 등이 있었다. 고려시대에 재정을 담당한 관서(官署)를 지출 용도별로 살펴보면 표 ‘고려시대의 재정 관서’와 같다.94)박종진, 『고려 시기 재정 운영과 조세 제도』,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17쪽.

<표> 고려시대의 재정 관서
지출 용도 관청 이름
재정 운영의 주관 관청 호부(戶部), 삼사(三司)
공상(供上) 내장택(內庄宅), 내고(內庫), 전중성(殿中省), 상승국(尙乘局), 상사국(尙舍局), 상의국(尙衣局), 상약국(尙藥局), 상식국(尙食局), 중상서(中尙署), 양온서(良醞署), 수궁서(守宮署)
국용(國用) 대부시(大府寺), 우창(右倉), 대창(大倉), 운흥창(雲興倉), 경시서(京市署), 대창서(大倉署), 각사(各司)
녹봉(祿俸) 좌창(左倉)
군자(軍資) 용문창(龍門倉), 군기감(軍器監)
구휼(救恤) 의창(義倉), 상평창(常平倉),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 제위보(濟危寶), 혜민국(惠民局)

좌창은 관료의 녹봉(祿俸)을, 우창은 국용(國用)을, 용문창은 군량(軍糧)을, 상평창(常平倉)은 물가 조절을, 의창(義倉)은 진휼을 담당하였다. 문종 때 기록에 따르면 좌창에 납부되는 쌀, 보리, 조 등의 곡물이 약 14만 석이 었다.95)『고려사』 권80, 식화지3, 녹봉, 서문. 대체로 우창에서 관할하던 토지와 좌창에서 관할하던 토지 면적은 비슷하였던 것으로 여겨지고, 양자를 합친 면적은 최하 20만 결을 초과하는 규모로 좀 넉넉히 잡으면 약 30만 결 정도에 달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