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3. 고려 사회에서 쌀의 역할
  • 물품 거래의 수단, 쌀
이정호

쌀은 중요한 식량이었을 뿐 아니라 다른 물건을 구입하는 수단, 소위 화폐이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동전, 은화, 지폐 등을 물품 거래에 이용하였지만, 민간에서 통상 물품을 거래할 때는 주로 쌀을 사용하였다.

저포(紵布)나 은병(銀甁)의 가치를 표준으로 하여 교역하고, 일상생활의 세미(細微)한 것으로 필(疋)이나 양(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쌀로 치수를 계산하여 상환한다. 그러나 백성들은 오래도록 그런 풍속에 익숙하여 스스로 편하게 여긴다.110)서긍, 『고려도경』 권3, 성읍(城邑), 무역(貿易).

이 기록은 고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견문한 내용을 기록한 서긍의 『고려도경』에 보이는 내용이다. 교역에서는 저포나 은병이 척도(尺度)이지만, 고려의 풍속상 세간(世間)의 물품 거래는 쌀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잘 알고 있듯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동전을 주조하여 유통을 시도한 때가 고려시대였다. 숙종대(1095∼1105)에 첫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동전을 유통시키기 위해 먼저 쌀을 이용하고 있었다.

1104년(숙종 9) 7월에 주현(州縣)에 명령하여 쌀을 내어 주식점(酒食店)을 열게 하고, 백성들에게 사고팔고 할 것을 허락하여 돈의 편리함을 알도록 하였다. 당시 돈이 통용된 지 3년이나 되었지만 백성들이 가난하여 활발하게 통용시킬 수가 없었으므로 이러한 명령을 내렸다.111)『고려사』 권79, 식화지2, 화폐(貨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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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대의 동전들-해동통보(海東通寶)
고려 숙종대의 동전들-해동통보(海東通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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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중보(海東重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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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통보(三韓通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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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중보(三韓重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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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 때 동전을 유통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쌀을 우선 이용하였다. 종래 사용되던 교환 수단으로 쌀을 대신해 동전을 유통시키려고 오히려 쌀을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동전을 주조해 민간에 공급하였지만 동전이 유통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가난한 백성들이 구매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 쌀을 방출하여 백성의 구매력을 높이고, 또 동전 유통의 장소로 주식점을 열었던 것이다. 동전 유통과 쌀의 유통, 어쩌면 서로 모순된 조처가 취해졌던 셈이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편리한 동전 유통에 앞서 일반 백성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또 영향을 미치고 있던 것은 쌀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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