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4장 개항에서 일제강점기 쌀 수출과 농촌 사회
  • 1. 개항과 쌀 수출
  • 쌀 수출의 증대와 유통의 확대
  • 쌀 거래와 일본인의 침탈
김윤희

일본으로의 쌀 수출이 확대되면서 쌀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의 침탈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일본인과 조선 상인의 쌀 거래 방식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나타났던 것이 자금 선대(資金先貸) 방식이었다. 1897년(광무 1) 개항된 진남포의 경우에도 개항 직후부터 곡물 매입은 자금의 선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남포에서의 곡물 매입은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나는 쌀을 매입할 일본인이 집산지인 평양의 조선인 객주에게 자금을 미리 빌려 주어 매입을 부탁하고, 석당(石當) 일정한 중개 매매 수수료였던 구전(口錢)을 지불하는 방식이었다. 자금을 먼저 지불한 후 추수가 끝나면 쌀을 넘겨받았던 것이다.260)강만길 엮음, 앞의 책, 91∼94쪽. 이와 같이 일본인의 자금 선대 방식은 자본력이 취약한 조선 상인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쌀 매매 중개 상인 중에는 적극적으로 일본인에게 자금을 선대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곡물 매입 방식 중 다른 하나는 일본인이 직접 생산지로 들어가서 쌀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1894년(고종 31) 일본 상인의 개항장 밖 행상이 허용되면서 일본인은 중개상을 거치지 않고 산지에서 직접 쌀을 구매하였다. ‘한 국 토지 농산 조사 보고(韓國土地農産調査報告)’의 기록을 보면, 일본인이 쌀의 산지였던 경상도와 전라도에 내려가서 지역 장시(場市) 또는 농민에게 직접 쌀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261)조석곤, 『한국 근대 토지 제도의 형성』, 해남, 2003. 그러나 이러한 방식보다 좀 더 일반적인 것은 지방 객주를 통해 쌀 재배 농민에게 미리 쌀 구매 가격을 지불하고 추수기에 받는 방식이었다. 쌀이 익지도 않은 여름철에 미리 구입하는 방식은 가격 조건에서 일본인에게 매우 유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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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생산되지 않는 여름철은 외국 상인과의 상거래가 비교적 한산하였고 이로 인해 한전(韓錢)의 환율이 낮게 평가되는 시기였다. 따라서 일본인은 한전 시세가 낮은 여름철에 자금을 미리 지불함으로써 추수기 이후 한전 시세의 상승에 따른 환차익(換差益)까지 얻을 수 있었다. 부산의 일본 영사관 보고에 따르면 미수확기에 일본 상인들이 산지의 객주를 통하거나 직접 농가에 대부하고 가을에 쌀을 징수하면 약 20전 정도를 싸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자금의 선대에 의한 일본 상인의 쌀 매입으로 말미암아 쌀의 상품화는 더욱 촉진되어 갔고, 자금의 선대로 쌀을 매입하는 방법은 외국인의 토지 소유가 공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토지 소유에 필적하는 효과를 거두었던 것이다.

이 시기 일본인들은 직접 생산에도 침투하고 있었다. 러일 전쟁 이후 일본인의 토지 소유가 급증하였지만, 그 이전에도 일본인 가운데는 부산이나 인천 등지에 거주하며 농지를 구입하여 조선인에게 소작을 맡기는 경우가 있었다. 초기에는 대개 정주(定住)한 청나라 상인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1900년대 이후는 일본인이 상당한 정도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었다. 더구나 러일 전쟁을 전후해 일본인의 토지 소유는 공공연한 것이 되어 일본인이 토지 매수를 청구만 하면 조선의 관리들은 조세 영수증을 교부하고 소유를 인정하는 실정이었다.

일본인이 조선에서 토지를 매입하면 이점이 많았다. 우선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에 비해 매매 가격이 약 10분의 1밖에 안 되는 데다가 토지 등록 비용이 들지 않고 조세도 저렴하여 지방세 부과도 없는 등 일본에서 토지를 매입하는 것에 비하면 크게 유리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인은 현금을 지급하거나, 돈을 빌려 주고 저당된 토지를 대신 소유하는 방법으로 토지를 구입하였다. 일본인의 토지 매입은 특히 삼남 지방에서 심하였다. 전북 군산 지방에서는 1901년 일본인의 매수지가 4,000여 정보나 되었다.262)지세 개정에 대해서는 배영순, 『한말 일제 초기의 토지 조사와 지세 개정』,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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