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4장 개항에서 일제강점기 쌀 수출과 농촌 사회
  • 2. 일제강점기 쌀 생산과 농촌 사회
  • 쌀 생산과 유출을 위한 경제 기반 정비
  • 식민지 유통망의 구축
김윤희

조선 쌀을 일본으로 대량 유출하기 위해 조선 총독부는 한반도를 가르는 철도를 근간으로 유통망을 정비하였다. 1898년과 1903년 경부선과 경의선 철도 부설권을 장악한 일본은 러일 전쟁 발발로 전쟁 물자 수송이 시급해지면서 철도 부설에 박차를 가하였다. 1905년 경부선과 1906년 경의선을 완공하여 남북을 가르는 철도 유통망을 구축하였고, 의주와 부산을 연결하는 철도를 근간으로 하여 1914년 호남선과 경원선을 완공하였으며, 1928년 함경선을 완공하였다. 이로써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한반도를 X 자로 연결하는 철도망을 완비하였다.

그리고 이 철도망의 종단역(終端驛)이던 부산, 목포, 군산, 진남포, 원산 등은 해로 수송을 통해 일본과 연결되었고, 신의주와 회령의 북쪽 종단역은 만주 철도와 연결되어 중국 진출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과 조선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해운이던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 간 연락선(釜關聯絡船)은 1905년 9월 일본의 산요 기선 주식회 사(山陽汽船株式會社)가 개설한 것이었다. 산요 기선 회사는 한국의 경부 철도와 일본의 도카이도(東海道)·산요·규슈(九州) 철도 간에 여객, 수하물, 화물을 연대 수송할 것을 계약하고 수송을 개시하였다. 그 외 조선과 일본 간의 항로는 조선 총독부와 일본의 지원을 받는 조선 우선(郵船) 주식회사, 오사카 상선(大阪商船) 주식회사 등 일본 해운 회사가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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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선 특급열차
경부선 특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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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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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를 근간으로 한 유통망의 구축과 함께 철도와 해로를 연결하는 도로와 항만에 대한 정비 작업도 진행되었다. 1906년부터 1918년까지 1,300여만 원의 예산을 투여하여 주요 항구의 항만 시설을 개축하고 세관 설비를 마련하였다. 또한 항만과 철도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확충하여 수송망의 연계성을 강화하였다.269)이호철, 『식민지 시대 농업 생산력 구조와 한전 농법」, 『한국 근대 경제사 연구의 성과-추언(秋堰) 권병탁(權丙卓) 박사 화갑 기념 논총』 Ⅱ, 추언 권병탁 박사 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1989, 285∼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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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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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조선을 연결하는 유통망의 구축과 동시에 철도망을 매개로 철도역 부근이 새로운 상품 매개지(媒介地)로 등장하였다. 용산, 남대문, 평택, 대전, 이리, 김천 등 철도역 소재지가 중심 상업지로 성장하였으며, 농촌에서 쌀을 집산하는 기능을 담당하기 시작하였다. 한 예로 평택 지역은 일본인이 이주할 만한 최적지로 주목받기도 하였다. 평택은 본디 병남면 평택리로 평택역을 설치할 당시 마을조차 형성되어 있지 않은 전답지(田沓地)였다. 철도 역사(驛舍) 주변은 물론 군청 청사가 들어선 곳도 대부분 전답이었고, 변두리에 민가(民家)가 몇 호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경부 철도선 부설과 동시에 일본인들 사이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04년에 간행된 『최신 한국 실업 지침(最新韓國實業指針)』에서는 일본인이 이주해서 농업이나 상업에 종사해 볼 만한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넓은 경지 면적을 배후지로 갖고 있던 평택은 철도역이 건설되고 해로를 따라 아산을 거쳐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일본 본토와의 연계성도 높은 지역이었다.270)김재훈, 「1925∼1031년 미가 하락과 부채 불황」, 『한국 경제 연구』 15, 한국 경제 연구 학회, 2005, 241∼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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