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4장 개항에서 일제강점기 쌀 수출과 농촌 사회
  • 2. 일제강점기 쌀 생산과 농촌 사회
  • 쌀의 일본 유출과 쌀값의 변동
  • 쌀의 유출
김윤희

조선 쌀과 일본 자본제 상품이 교환되는 무역 구조는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다. 오히려 조선의 수출액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1910년 전체 수출액에서 쌀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32%였는데 1919년에는 50%로 크게 증가하였다. 반면, 1910년대 조선 쌀의 총생산량에서 수출된 쌀의 비율은 평균 12%에 그쳤다. 쌀은 생필품으로 조선인의 기본 소비량을 충당한 나머지가 수출되기 때문에 쌀 소비를 대신할 잡곡류 등의 공급이 수반되지 않으면 상품화가 크게 진전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1920년대 들어서면서 이러한 상황은 크게 변화하였다.

1920년대 조선 총수출액에서 쌀의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50% 정도로 1919년과 비교해 비율이 높아지지는 않았다. 반면, 1925년 이후 수입 무역액에서 이제까지 가장 많은 비중을 점하였던 일본산 면제품의 비중이 낮아지고 만주로부터의 좁쌀 수입액 비중이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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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항의 쌀 수출
군산항의 쌀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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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쌀의 총생산량에서 일본으로 수출된 쌀의 비율이 약 4.5%였던 데 비해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비율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1918년 일본 내 쌀 부족으로 발생한 쌀 폭동으로 조선 쌀의 수요가 증가하였고, 조선 쌀의 공급을 늘리기 위해 실시한 산미 증식 계획의 영향으로 1924년 쌀의 총생산량 중 31.3%가 일본으로 유출되었고, 점차 유출량이 증가하여 1936년에는 53%로 크게 증가하였다.

<표> 일제강점기 쌀의 생산, 유출, 소비량
연도 총생산량(만석) 총수출량(만석) 유출 비율(%) 1인당 소비량(1년, 석)
1912 1156 52 4.5 0.77
1916 1284 182 14.2 0.67
1920 1270 186 14.7 0.63
1924 1517 475 31.3 0.60
1928 1729 742 42.9 0.54
1932 1587 758 47.8 0.41
1936 1788 951 53.2 0.38
1940 1435 601 4.2 0.77
1944 1871 412 22.0 0.55
✽富田晶子 外, 「植民地期朝鮮社會經濟の統計的硏究(1)」, 『東京大學會誌』 136號, 1984.

총생산량에 대한 총수출량의 증가는 쌀의 국내 소비를 크게 감소시켰다. 1912년 1인당 1년 쌀 소비량이 약 0.77석이었던 데 비해 제1기 산미 증식 계획이 진행 중이던 1924년에는 0.6석으로 그리고 다시 제2기 산미 증식 계획이 진행 중이던 1932년에는 0.41석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통계는 산미 증식 계획으로 쌀의 생산이 증가되기는 하였지만, 증가율보다 훨씬 많은 쌀이 일본으로 유출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쌀의 수출이 증가할수록 조선인의 쌀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이 소비할 쌀을 시장에 내다팔고 대신 잡곡으로 연명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앞서 1925년 좁쌀이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은 쌀의 수출로 부족한 식량을 대신해서 만주의 잡곡 수입이 증가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이는 또한 수전에서는 쌀을 주로 재배하여 수출하고, 한전에서는 콩을 재배하여 수출하는 농업 구조였기 때문에 쌀 부족을 대신할 잡곡의 생산량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조선 농민들은 여전히 보릿고개를 경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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