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2. 농지 개간과 수리 시설 축조
  • 천방의 개발과 축조
염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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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川防)은 하천에 흐르는 물을 이용하는 수리 시설이다.367)이태진, 「16세기 천방(보)(川防(洑)) 관개(灌漑)의 발달」, 『한국 사회사 연구』, 지식 산업사, 1986 ; 이수건,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조 사회사의 일 연구」, 『한국 사학』 9,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2. 천방은 보(洑)라고도 불리는 수리 시설로 소규모 공사로 축조할 수 있었다. 산골짜기를 흐르는 계곡의 물도 천방을 통해 관개수(灌漑水)로 활용할 수 있었다.368)『문종실록』 권4, 문종 즉위년 10월 경진. 至若一面山谷一面平野 則山谷之地 猶可川防引水 而備旱嘆 平野之民 非雨澤 固無備旱之策 雖曰一邑倻 而禾穀之損實 從以賴殊今也. 천방 축조에 대한 논의는 특히 문종대부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문종이 1450년(문종 즉위년)에 경기·충청·강원·황해·경상·전라·함길도 관찰사에게 제언 수축에 대해서 내린 유시(諭示)를 보면, 문종은 제언뿐 아니라 천방에 대해서도 지적하면서 수리(水利)에 활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이득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극히 강조하고 있었다.369)『문종실록』 권4, 문종 즉위년 10월 계유. 국왕의 관 심 속에 활발하게 축조되기 시작한 천방은 세조대에 이르러서는 제언 축조와 더불어 수리 사업의 양대 중추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양상은 성종대에 이르러 더욱더 가속화되었다.370)『문종실록』 권4, 문종 즉위년 10월 계유 ; 『세조실록』 권2, 세조 원년 9월 정해 ; 『성종실록』 권70, 성종 7년 8월 병신.

천방은 15세기 후반부터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내륙의 소규모 수리 시설로서 활발히 개발되고 있었다. 천방 개발은 14세기 후반부터 시도되기 시작하여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천방은 지형에 따라 하천을 막아 물을 끌어 올려서 하천보다 높은 지대에 물을 대거나, 범람하기 쉬운 지역에 방축을 쌓고 구멍을 뚫어서 저습지를 농토로 이용하는 기술이었다. 이 방법으로 새 농토를 확보해 간 것은 대부분 노비 노동력을 다소 보유하고 있던 유향품관(留鄕品官) 등 재지 지배층이었다.371)이태진, 앞의 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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