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6. 농촌 사회와 농민 생활
  • 농민의 민속놀이
염정섭

민촌(民村)의 농민들이 기나긴 겨울철을 보내다가 이제 막 농사일을 시작할 즈음에 이르러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수행하였다. 민속놀이는 특히 정월에 집중적으로 설행되었는데, 줄다리기, 횃불싸움, 석전(石戰) 등은 수많은 마을 주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줄다리기는 미리 마을 주민을 양편으로 나누어 각각 암줄과 수줄을 짜놓는데, 한 마을을 동과 서로 나누어 편을 나누면서 전 과정이 시작되었다. 각각의 집집마다 모은 짚으로 새끼를 꼬아 수십 가닥으로 합사(合絲)한 큰 줄을 한 가닥으로 만들고, 다시 이 가닥을 여러 개 모아 꼬아서 굵은 줄을 만든 뒤 줄에는 손잡이 줄을 무수히 매다는 방식으로 암줄과 수줄을 만들었다. 암줄과 수줄의 앞머리에는 모두 도래라고 하는 고리를 만들어 두는데 나중에 줄다리기를 실제로 진행할 때 비녀라 불리는 통나무를 꽂아 연결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참가하여 줄을 당기어 승패를 겨루었다. 줄다리기의 승부는 실상 짧은 시간에 마무리되지만, 암줄과 수줄을 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실제로 줄다리기를 하는 날에도 이런 저런 사단이 벌어지면서, 승부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놀이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줄다리기에 사용하는 줄에는 암수가 있어 동을 수줄, 서를 암줄이라 하며, 이긴 쪽은 그해 농사가 풍작이 되고 악질(惡疾)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암줄이 이겨야만 풍작이 된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에 벌어지는 횃불싸움은 마을 사이의 전투로 벌어졌다. 언덕에 진을 친 두 마을의 패거리들이 홰에 불을 붙여 휘두르면서 달려가 상대편을 공격하여 진지를 빼앗거나 포로를 많이 잡을 때까지 풍년의 기대를 보상으로 간주하며 다치는 것에 굴하지 않고 싸움을 벌였다. 마지막 홰가 꺼질 때까지 죽 싸움이 계속되었다. 횃불싸움에 동원하는 홰는 싸리나 갈대 따위를 묶어서 만들었다. 들일을 밤늦게까지 할 때 사용하던 홰와는 달리 싸릿대 등을 잘 묶은 사이사이에 관솔을 넉넉하게 박고, 기름을 듬뿍 먹인 솜뭉치를 함께 잡아매어, 흔들려도 잘 꺼지지 않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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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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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읍내(邑內) 또는 성내(城內)에서 벌어진 돌팔매 싸움이라고 불린 석전도 정월 대보름날 치열하게 벌어졌다. 고려에서는 돌팔매 싸움에 능한 사람들을 모아 척석군(擲石軍)이라는 군대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석전에 참여할 사람은 당대의 주먹패이자 싸워서 이겨야 하는 군인이었기 때문에 곁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고려 말 대학자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은 개성 시내에서 벌어지는 석전을 구경하기 위해 염흥방(廉興邦)과 더불어 비가 내려 옷이 젖어 드는 것도 무릅쓰고 남산(南山)에 올랐던 상황을 시문(詩文)으로 남겨 놓기도 하였다.502)이색(李穡), 『목은시고(牧隱詩稿)』 권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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