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1장 사대부의 생애 주기와 문서·기록
  • 3. 노년에서 죽음까지
  • 누가 노인인가
박현순

유년부터 노년까지의 일생은 유년, 소년, 청년, 장년, 노년 등 여러 단계로 나누어진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서는 10대부터 90대까지의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 60대가 되면 남에게 일을 시키고 70대에는 아들에게 가사를 전한다고 하여 이때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노후 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예기』는 중국 고대에 나온 책이지만 노인으로 파악되는 연령대는 오늘날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떠하였을까? 조선시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여러 가지 나이를 기준으로 규정을 달리하는 조항이 있다. 그 중 노인과 관련해서는 60세, 70세, 80세, 90세 등 다양한 기준이 있다.

우선 60세는 여러 가지 역(役)에서 해방되는 나이이다. 군역을 담당하는 양인 남성이나 공노비는 16세에 복무를 시작하여 만 60세가 되면 풀려났다. 만 60세는 조선시대 양인이나 노비가 육체적인 노동에서 벗어나는 때였던 것이다.

관료로서 일할 수 있는 나이는 이와 달랐다. 조선시대 관료는 크게 중앙 관료와 지방관으로 나뉘는데, 지방관에 대해서는 “65세가 지난 자는 지방관으로 임명하지 않는다.”고 하여 65세로 임용 연령을 제한하였다. 수령의 임기는 5년이었으니 이것은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편 『경국대전』 「예전(禮典)」에는 “벼슬이 1품에 이르고 70세 이상으로서 국가의 중대한 일에 관계되어 치사(致仕)하지 못하는 자는 본조(本曹)에서 왕에게 보고하여 의자와 지팡이(机杖)를 하사한다.”는 규정이 있다. 치사는 은퇴를 의미하는 것으로 70세가 넘어도 은퇴를 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특별히 예우한다는 것이다. 이때에도 은퇴의 기준은 7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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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 어사(御賜) 궤장
현종 어사(御賜) 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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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상관(堂上官)이거나 가족을 데려가지 않고 단신 부임(單身赴任)하는 경우는 70세가 넘어도 지방관이 될 수 있었고, 중앙 관료의 경우에는 특별히 나이 제한이 없었다. 실제 70, 80이 넘어서도 벼슬살이를 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법전에서는 70세가 관직에서 은퇴하여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는 시점으로 파악되었다.

70세는 또한 자녀의 봉양을 받아야 하는 나이로 인정되었다. 부모의 나이가 70세가 넘으면 아들 한 명을 군역에서 면제해 주었고, 공노비의 경우도 세 명 이상의 자녀가 역을 지는 경우 그 중 한 명의 역을 면제해 주었다. 관료의 경우에도 부모의 나이가 70세 이상이면 아들 중 한 명이 사직하고 귀향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자녀가 국가의 공적인 업무에서 벗어나 부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 밖에도 국가에서는 7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여러 가지 은전(恩典)을 베풀어 주었다. 70세 이상이 되면 강도나 살인의 죄를 저지른 경우가 아니 면 수감하지 않았고, 강도죄를 짓더라도 자자형(刺字刑)을 면제해 주었다. 70세 이상인 당상관의 아내에게는 국가에서 매달 주육(酒肉)을 하사하였으며, 2품 이상의 실직(實職)을 지낸 자는 70세가 되면 그 집의 요역(徭役)을 면제해 주었다. 또 실직이 없는 당상관도 70세가 넘으면 국가에서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 즉, 70세는 국가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데 기준이 되는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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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궤장연회도첩(賜几杖宴會圖帖)』-지영궤장도(祗迎几杖圖)
『사궤장연회도첩(賜几杖宴會圖帖)』-지영궤장도(祗迎几杖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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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독교서도(宣讀敎書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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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선온도(內外宣醞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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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세 이상이 되면 혜택이 더욱 확대되었다. 8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노인직(老人職)이라고 하여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1품의 품계(品階)를 하사하였다. 국가에서 장수를 기념하여 명예직을 주었던 것이다. 또 관료의 경우 부모가 80세 이상이면 두 아들이, 90세 이상이면 모든 아들이 관직을 사퇴하고 귀향할 수 있었으며, 부모가 90세 이상이면 모든 아들이 역에서 면제되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식의 봉양을 더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법전의 규정을 보면 국가에서 노인을 우대하는 방법은 연령마다 차이가 있었다. 60세는 육체적인 노동에서 벗어나는 나이였으며, 70세는 관직에서 물러나 자녀의 봉양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나이였다. 그리고 80세 이후는 장수를 기념하여 국가에서 명예를 부여하고 혜택을 확대하는 나이였다. 그만큼 80세 이상을 사는 일은 흔치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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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향안 입록인의 사망 연령대 분포
예안 향안 입록인의 사망 연령대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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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실제 수명은 어느 정도였을까? 조선시대는 오늘날에 비해 유아 사망률이 훨씬 높았다. 출산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출산 직후에 사망하는 경우뿐 아니라 전염병으로 어려서 죽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영양 상태가 부실하고 질병에 대한 치료가 미흡하여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오늘날에 비해 평균 연령이 낮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람들의 평균적인 수명을 보여 주는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다만 한두 가지 자료를 통해 대체적인 모습을 추정해 보도록 하자.

우선 조선시대 국왕들의 수명을 보자. 태조에서 고종까지 조선시대 왕 26명의 평균 연령은 정변(政變)으로 목숨을 잃은 단종을 제외하더라도 48.1세에 불과하다. 연령대별로 보면 30대 사망자가 여덟 명, 50대 사망자 가 일곱 명으로 가장 많으며, 환갑(還甲)이 지나서 죽은 경우는 태조, 정종, 광해군, 영조, 고종 다섯 명뿐이다. 70세를 넘긴 왕은 74세로 죽은 태조와 83세로 죽은 영조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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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안 향안과 2007년 남성의 사망 연령대 비교
예안 향안과 2007년 남성의 사망 연령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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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반인의 경우는 좀 차이가 있다. 경상도 예안의 향안(鄕案)에 오른 양반의 경우를 보자. 향안은 군현 단위로 작성한 양반의 명부로 성인 남성만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여기에는 향안에 오르기 전에 사망한 사람은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평균 연령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노인의 사망 연령대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다.

1570년(선조 3)부터 1717년(숙종 43)까지 예안 향안에 올라 있는 사람은 모두 487명으로, 이중 생몰년이 확인되는 사람은 모두 211명이다. 이들의 사망 연령대를 보면 50대 후반까지는 그리 비율이 높지 않다. 예안에서는 대개 50대 후반까지 이름을 올려 그 이전에 사망한 사람은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목되는 것은 60대 후반·70대 전반을 정점으로 사망자가 수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 연령대에 많은 사람이 사망하고 그 이후에는 점차 소수의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60대 후반에서 70대 전반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어떤 수준에 있는 것일까? 예안 향안과 통계청에서 발표한 2007년 60대 이상 남성 사망자의 연령대를 비교해 보자. 도표 ‘예안 향안과 2007년 남성의 사망 연령대 비교’를 보면 두 자료의 70대 전반 사망자 비율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이를 중심으로 그 전후의 추이는 대조를 보여 60대 후반까지는 예안의 비율이 높고 70대 후반 이후는 2007년의 비율이 높다. 예안 향안에 오른 사람들은 오늘날에 비하여 60대에 죽은 사람은 많고 70대 후반을 넘어 생존한 사람은 적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에 비하여 기대할 수 있는 수명이 짧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균 수명이나 전체적인 경향과는 별개로 개인의 수명은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단명한 사람도 있고, 장수한 사람도 있다. 70세의 이황, 69세의 박지원(朴趾源), 73세의 정약용(丁若鏞), 71세의 김정희(金正喜)는 평균적이었다고 한다면 이이(李珥)는 49세로 단명하였고, 88세를 산 이원익(李元翼)은 드물게 장수하였다. 송시열(宋時烈)은 83세를 살았으나 사약(賜藥)을 받은 것이니 더 오래 살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70세를 전후하여 세상을 뜬 경우가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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