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3장 사회 경제 생활과 문서
  • 1. 정소, 조선 사회를 비추는 거울
  • 소지, 공증·민원·소송을 요구하다
김경숙

조선시대 사람들은 이처럼 다양한 양식의 소지류 문서를 통하여 정소 활동을 전개하면서 자신의 요구 사항을 국가에 제기하고 해결하였다. 그렇다면 정소 활동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안이 있었을까? 현재 남아 있는 소지류의 내용을 보면 백성들에게서 발생하는 문제를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노비, 토지, 위선(爲先), 정려(旌閭), 족보(族譜), 세금, 군역(軍役), 환곡, 산송, 채무, 구타, 강상 윤리(綱常倫理), 풍속 등 매우 다양하여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148)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고문서』에서는 소지류의 내용을 ①산송, ②노비, ③토지 관계, ④정려(旌閭)·증직(贈職) 등, ⑤서원(書院)·사우(祠宇)·향교(鄕校), ⑥족보(族譜), ⑦전결세(田結稅), ⑧신역(身役)·호역(戶役), ⑨환곡(還穀)·진휼(賑恤), ⑩진상(進上)·공물(貢物), ⑪잡역(雜役)·잡세(雜稅), ⑫주인권(主人權), ⑬관개(灌漑)·보(洑), ⑭어전(漁箭), ⑮가사(家舍), ⑯채무(債務), ⑰장시(場市), ⑱우(牛)·마(馬)·응(鷹)·호(虎), ⑲풍속(風俗)·토색(討索) 등 총 열아홉 가지 주제로 분류하였다. 여기에는 조선 사회 여러 계층이 살아간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겨 있으며, 나아가 그 시대의 사회 모습 및 시대상까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이들은 정소 제도가 국가와 민인의 소통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먼저 국가를 직접 대상으로 하는 ‘민원(民願)’과 국가에게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요청하는 ‘소송(訴訟)’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민원은 그 내용에 따라 다시 ‘공증(公證)’과 ‘일반 민원’으로 나뉘는데, 이 글에서는 공증을 독립시키고 일반 민원을 민원으로 지칭하기로 한다. 이렇게 볼 때 정소는 크게 공증, 민원, 소송의 세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공증 정소’는 주로 매매, 상속, 증여 등 개인의 소유권에 변동 사항이 생겼을 때 그 사실을 신고하고 관의 증명을 받는 절차이다. 이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기 때문에 사전 허가보다는 사후 승인에 가까우며, 관에서는 사실 여부를 조사한 후 ‘빗기입안(斜出立案)’을 발급하여 국가 차원에서 공증하였다. 공증 대상은 노비, 토지, 권리권 등 재산권과 관련된 경우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사람들이 영위한 경제 생활의 한 측 면을 파악할 수 있다.

‘민원 정소’는 민인들이 국가의 제도나 행정 업무 과정에서 요구 사항이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국가에 청원 또는 요구하는 절차이다. 조선시대의 민원 내용은 대체로 유교 사회의 특징적 현상인 양자 입양, 충(忠)·효(孝)·열(烈)·학행(學行)의 포양(襃揚), 세금·군역·환곡 등의 부세 문제 등이 중심을 이루었고, 관료의 휴가 요청, 물품이나 문서의 도난·소실(燒失)·서실(閪失), 소의 도축(屠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여기에는 당시 사람들이 당면하여 고민한 사회 문제, 민의(民意)의 향방, 시대적 과제 등 당시의 사회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소송 정소’는 개인 또는 단체가 다른 개인 또는 단체와의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국가에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절차이다. 노비송, 전답송, 산송, 채무, 구타, 풍속 등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소송으로 전통시대 사회 갈등과 해결 방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공증, 민원, 소송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시대 정소 제도는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한 기능의 시스템을 찾을 수 있다. 공증 정소는 등기소의 등기 업무, 민원 정소는 민원실 또는 국민 고충 처리 위원회의 업무, 소송 정소는 법원의 업무와 연결된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오늘날에는 공증, 민원, 소송의 영역이 명확하게 나누어져 경계가 분명하지만, 전통시대에는 이들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는 이들 모두 ‘소지’라는 문서를 매체로 이루어졌고, 향촌(鄕村)에서는 일차적으로 지방 수령이 이를 담당하였다. 그 결과 조선시대 정소는 매우 광범위하다는 특성을 보이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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