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5장 국가 및 관리 생활과 문서
  • 5. 왕명과 상주문
  • 국왕의 명령
  • 교서
박재우

조선시대에 국왕과 신료는 정치의 주체로서 그들의 정치 행위는 기본적으로 문서의 작성과 전달을 통해 시행되었다. 특히 국왕은 왕명의 반포를 통해 정치와 행정을 이끌어 갔다. 그러므로 왕명의 종류와 처리 절차는 조선시대 왕권의 위상과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왕명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문서는 교서이다. 교서는 국왕이 명령을 내리거나 훈계하거나 선포하는 문서이다. 교서는 즉위(卽位), 구언(求言), 공신녹훈(功臣錄勳), 배향(配享), 문묘 종사(文廟從祀), 사면(赦免), 사여(賜與), 권농(勸農), 봉작(封爵), 책봉(冊封) 등 다양한 용도로 썼다.

교서는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였던 문서였다. 원래 고려의 왕명에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심의를 받은 제서(制書)와 중추원을 통해 곧장 반포한 조서(詔書), 교서, 선지(宣旨) 등이 있었다.260)박재우, 「고려 전기 왕명(王命)의 종류와 반포」, 『진단학보』 95, 진단학회, 2003. 하지만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제서는 물론이거니와 조서, 선지도 없어지고 교서만이 남았는데, 이것이 조선에 계승된 것이다. 조선시대의 교서 중에 가장 앞선 시기의 것은 ‘마천목 좌명공신 교서(馬天牧佐命功臣敎書)’이다.261)정구복 외, 「마천목 좌명공신 교서(馬天牧佐命功臣敎書)」,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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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 좌명공신 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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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

2    익대좌명공신절충장군

3    웅무시위사상장군 마천목

4  왕약왈 처리하기 곤란한 일을 만나지 않으면 어찌 날카로움을 시험하며

5    그릇이 어짐을 힘입지 않으면 선비가 국란을 평정할 수 없다.

6    오직 너는 굴레 씌울 수 없는 재주를 간직하고 빼앗기 어려운

7    절개를 잡았으며, 힘은 가히 호랑이를 누르고 용기는 가히

8    사람을 겸하였으니 통하고 변함을 적절히 행하고 의를 드러냄에 몸을

     잊었으며

9  왕가를 위해

10   힘써 일찍이 공적을 드러내었다. 또 활쏘기에 정교하여

11   쏘면 반드시 명중하니 이른바 웅비의 선비요

12   조아의 재주라는 것이다. 역신 박포 등이

13   몰래 종친을 끼고 반란을 부채질하던 날을 당하여

14 사직의 위태로움이 간발도 용납할 수 없었는데, 너는 이에  

15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의를 주창하여 팔을 휘둘러

16   군흉을 당겨 굴복시키고 크게 소리쳐 악인들을 이겨

17   숙청하여

18 사직을 누란의 위태로움에서 붙들고 국가를

19   태산의 평안함에 두었다. 내가 그것을 가상히 여겨 말하기를 신실함을

20   잊을 수 없다 하고, 인하여 유사에게 명하여 형상을 그리고 공신각을

     세우며

21   공적을 비석에 기록하여 새기며, 겸하여 토지와 노비

22   은대 1요 표리 1단 구마 1필을 내리니,  

23   이르거든 가히 수령하라. 오호, 가슴에 특별히 예우할 마음이 있어

24   이에 공을 힘써 밝혀 대하여 홍휴에 드날리니

25   성명을 바꾸지 마라. 고자교시 상의지실.

26   건문 3년 2월 일

이 문서는 1401년(태종 1) 2월에 마천목에게 내린 좌명공신(佐命功臣) 교서이다. 좌명공신은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이방원(李芳遠)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신료에게 내린 공신호이다. 마천목은 이에 참여하여 공로를 세워 좌명공신에 책봉되었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문서 종류인 ‘교’, 2∼3행은 수취자인 ‘익대좌명공신절충장군웅무시위사상장군(翊戴佐命功臣折衝將軍雄武侍衛司上將軍) 마천목’, 4행은 문서 양식인 ‘왕약왈(王若曰)’, 4∼23행은 문서 내용, 23∼25행은 문서 양식인 ‘오호(於戲) …… 성명을 바꾸지 마라’, 25행은 문서 양식인 ‘고자교시 상의지실(故玆敎示想宜知悉)’, 26행은 발급 날짜인 ‘건문(建文) 3년 2월 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양식은 기본적으로 조선시대에 공통적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조선 전기의 공신 중에 개국공신(開國功臣), 정사공신(定社功臣), 좌명공신은 공신 교서와 함께 공신녹권을 주었다. 마천목이 좌명공신으로 책봉될 때 교서와 함께 받은 녹권도 역시 현전하고 있다. 녹권은 공신도감(功臣都鑑)이 왕명을 받아 공신에게 발급하는 문서로 왕명이 아니지만, 마천목의 공신 교서와 관련된 문서이므로 여기서 소개하고자 한다.262)현전하는 녹권으로 가장 시기가 앞선 것은 1392년(태조 1)에 발급한 ‘이화 개국공신 녹권(李和開國功臣錄券)’이다. 당시 이화는 교서와 녹권을 함께 발급받았으나 현재 녹권만 전해지고 있다. 반면 교서와 녹권을 함께 받아 전하는 것으로 시기가 가장 앞선 것은 좌명공신 마천목의 교서와 녹권이다. 그러므로 마천목의 교서와 녹권을 함께 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다음 자료가 ‘마천목 좌명공신 녹권(馬天牧佐命功臣錄券)’이다.263)정구복 외, 「마천목 좌명공신 녹권」,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1      공신도감

2         익대좌명공신절충장군웅무시위사상장군

3         마천목  본관

4       이 사람을 좌명공신 녹권에 붙이는 일은, 당사와 별감이

5       함께 논의하고 아뢰었으니, 건문 3년 정월 23일에 의정부 관에 따

        르면, 건문 3년 정월

6       15일에 좌부승지 박신이 담당하여

7       구전한

8  왕지에 “지난번에 역신 박포가 재앙의 마음을 품고 몰래 회안 부자를

       끼고 나의 골육을 해치기로 도모하여 마침내

9      군사를 일으켜 궁궐로 향하고 방자히 흉악을 행하니

10 종사의 안위가 간발도 용납할 수 없거늘,……

16      ……창녕

17      백 석린, 완천군 숙, 문하시랑찬성사 지란, 개성유후사유후

18      거정, 지삼군부사 윤지 영렬, 우군동지총제 윤곤, 형조전서

19      박언, 도승지 석명, 상장군 천목, 판전중시사 희민, 봉상경 유

20      기 등이 정성을 다하고 힘을 합쳐 거듭 충성을 바쳐 추대하여 명

        을 도와 오늘에 이르렀다.

        ……

28      통틀어 모두 공로가 중대하니 영세토록 잊기 어려우므로

29      포상의 은전을 담당 관청은 거행하라.”고 하신 일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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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 좌명공신 녹권 뒷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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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 좌명공신 녹권 앞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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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왕지 내의 뜻으로 부린 일이라는 관이 있었으므로, 신들이 자세히 살피니 역신

31     박포가 재앙의 마음을 품고 몰래 회안 부자를 끼고

32  종친을 해치기로 도모하여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58     창녕백 성석린, 완천군 숙, 문하시랑찬성사 이지란, 개성유

59     후사유후 황거정, 지삼군부사 윤지, 김영렬, 우군동지총제

60     윤곤, 형조전서 박언, 도승지 박석명, 상장군 마천목, 판전

61     중시사 조희민, 봉상경 유기 등이 정성을 다하여 힘을 합쳐 거듭

       충성을 바쳐 추대하여 명을

62     도와 오늘에 이르렀으니, 진실로

63 왕지와 같이 공로가 중대하여 영세토록 잊기 어렵습니다. 이치가

64     좌명삼등공신이라 칭하고 각을 세우고 형상을 그리며 비를 세워 공

       을 기록하고 부모와 처는 1등을 뛰어넘어 봉증하고, 직자는

65     3등을 뛰어넘어 음직을 주고, 직자가 없는 자는 생질과 사위에게

       음직을 주며 전 몇 결과 노비 몇 구, 구사

66     3명, 진배파령 6명을 초입사를 허락하며, 적장은 세습하여 녹이 끊

       어지지 않게 하며 자손은 곧

67     정안에 기록하기를 좌명삼등공신 누구의 후손이라 하여 비록 죄가

       있더라도 용서하기를 영세에 미치도록 한다. ……

81     ……위 항의 공신을 포상하는 일은 모두 정

82     사공신의 예에 따라 각기 담당 관청에 이문하여 거행하라고 하신

       것이나, 삼가 기록하고

83     아뢴 때에, 건문 3년 정월 24일 좌부승지통정대

84     부경연참찬관보문각직학사지제교충예문춘추

85     관편수관지예조사 신 박신이 엎드려

86 왕지를 받으니, 아뢴 대로 하라고 하시되,……

89     ……삼등공신 창녕백 석린, 완천

90     군 숙, 문하시랑찬성사 지란, 개성유후사유후 거정, 지

91     삼군부사 윤지, 영렬, 우군동지총제 윤곤 등은 전 각

92     80결, 노비 각 8구, 백은 각 25냥, 표리 각 1단, 내구마

93     각 1필을, 형조전서 박언, 도승지 석명, 상장군 천목, 판전중

94     시사 희민, 봉상경 유기 등은 전 각 80결, 노비 각 8구,

95     은품대 각 1요, 표리 각 1단, 내구마 각 1필씩으로 상을 준다.

      ……

104    상을 주라.

105    는 교로서, 이 같으신 일이 있었으므로 녹권을 시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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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 좌명공신 녹권 부분
마천목 좌명공신 녹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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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건문 3년 신사 2월 일

107            녹사 권지의정부녹사 김 (초압)

108            녹사 권지식목도감녹사전장사랑가각고직장 김 (초압)

109         판관 전선교랑선공주부 송 (초압)

110         판관 통선랑사수감승 안 (초압)

111        부사

112        부사 봉정대부병조의랑지제교 정 (초압)

113      사 통훈대부판사수감사 노 (초압)

114      사 통훈대부판선공감사 박 (초압)

115     판사 가정대부예문관학사상의의정부사겸판사수감사 정 (초압)

116     판사 가정대부참지의흥삼군부사동지의정부사 김 (초압)

117   도감

118           좌랑 승의랑고공좌랑 유 (초압)  

119           좌랑 승의랑겸상서주부 한 (초압)

120         정랑 통덕랑고공정랑지제교겸상서사승경연부검토관 김(초압)

121         정랑 통덕랑겸의흥삼군부경력사도사 현 (초압)

122         의랑 봉정대부예문춘추관응교지제교경연시독관 김 (초압)

123         의랑 봉정대부 이 (초압)

124       지조사

125     전서 가선대부 김 (초압)

126     전서

127   판사

128   이조

129   별감

130     통정대부승정원좌부승지경연참찬관보문각직학사지제교충예문춘

        추관편수관지예조사 박 (초압)

131     절충장군신무시위사상장군겸판각문사 구 (초압)

132     중직대부사헌중승 안 (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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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목 초상
마천목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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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401년(태종 1) 2월에 공신도감이 마천목에게 내린 공신녹권이다. 건문(建文) 3년 정월 15일에 좌부승지(左副承旨) 박신(朴信)이 제2차 왕자의 난에서 공로를 세운 인물에 대하여 포상을 하라는 왕지를 구전(口傳)하자, 정월 23일에 의정부가 공신도감에 관(關)을 보냈다. 이에 공신도감은 별감과 함께 포상의 시행안을 마련하였고, 정월 24일에 좌부승지 박신이 구체적인 시행안에 대하여 결재를 받았다. 이를 근거로 공신도감은 마천목에게 녹권을 발급하였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발급자인 ‘공신도감’, 2∼3행은 수취자인 ‘마천목’, 4행은 문서 양식인 ‘이 사람을 좌명공신 녹권에 붙이는 일은’, 4∼105행은 녹권의 발급 경위와 포상 내용, 106행은 발급 날짜인 ‘건문 3년 신사 2월 일’, 107∼132행은 담당 관리와 초압인데 107∼117행은 공신도감의 관리, 118∼128행은 이조의 관리, 129∼132행은 별감의 것이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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