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9권 조선이 본 일본
  • 제3장 수신사 김기수가 바라본 근대 일본
  • 3. 김기수의 일본 인식
  • 서양의 기계와 기술에 감탄하다
한철호

일본은 수신사행에게 메이지 일본의 개화 실상을 각인시켜 곧이어 예정된 조일 수호 조규 부속 조약 및 무역 장정의 체결 협상을 순조롭게 진행하고, 러시아를 비롯한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응하여 조일 연대를 도모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의 경제적·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과도할 정도로 빡빡한 견문 일정을 짜 놓고 수신사에게 적극적으로 견문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김기수는 자신의 주 임무를 ‘수신’에 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겉으로는 다소 시찰에 소극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였지만, 실질적으로 국왕의 지시 사항인 ‘일본 국정 탐문’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일본의 각종 실상을 객관적이면서도 자세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에서는 일본이 전선(電線), 화륜(火輪), 농기계의 수용과 발전을 가장 급선무로 삼고 있다는 고종의 관심 에 초점을 맞추어 전신(電信)과 화륜을 중심으로 서양의 기계와 기술에 대한 김기수의 인식 또는 평가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확대보기
공부 대학교
공부 대학교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전신기-수신기
전신기-수신기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전신기-발신기
전신기-발신기
팝업창 닫기

먼저, 김기수는 5월 21일 공부성(工部省)의 공학료(工學寮)를 방문하여 병기, 농기와 각종 기계를 만들고 작동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야말로 “잠시 동안 보아 넘겨서 이루 다 기억할 수가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바로 “자세히 살펴보아도 형용할 수가 없었던” 전신이었다. 그가 당일의 일정을 서술하면서 “공부성에 가서 전신을 보았다.”고 썼던 점만 보더라도 전신이 가장 인상 깊었음을 알 수 있다.227)김기수, 『일동기유』 권1, 헐숙(歇宿), 359쪽. 그는 파견되기 전에 누군가에게서 “전신이 만 리나 되는 장거리에 소식을 전하는데 저쪽과 이쪽은 다만 반(盤) 한 개에만 의거한다.”며 그 작동 원리를 듣고, “이 법은 믿을 수가 없다. 침체(針體)가 비록 빠르다고 하더라도 한 번에 한 글자를 돌아서 10자, 100자의 많은 글자까지 이르게 되면 시각이 또한 오래 걸리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직접 전선을 목도(目睹)한 뒤 “전신선 끝이 집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의 설렁줄(舌鈴索)이 집 안에 들어가 있는 것과 같다.”고 묘사하면서 이어 작동 상황을 상세하게 기술하면서 “만 리나 되는 장거리에 전신하더라도 다만 같은 시간에 되는 것이다.”고 확인하였다. 아울러 그는 “전선을 연락하는 기둥은 곳곳의 도로에 있는데…… 한 기둥의 선도 수효는 하나뿐이 아니다. 이쪽저쪽에, 장소도 한 곳뿐이 아니다.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며, 멀고 가까운 것도 고르지 않으니 이것 또한 그렇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산과 들을 만나면 이것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여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큰 바다를 만나면 바로 물밑에 가라앉혀서 이를 통과시켰다 한다.”고 기술하면서 “이것은 모두가 내가 보고 들은 것이므로 들은 것도 상세히 듣고 본 것도 똑똑히 보았으니, 감히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228)김기수, 『일동기유』 권2, 완상, 389∼391쪽.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또한 김기수는 4월 29일 일본으로 출발하던 날 일본의 기선 고류마루를 처음 보았을 때, “한 척의 큰 배가 바다 중류(中流)에 서 있는데, 협판(夾板)·쌍범(雙帆)과 돛대 사이의 연통(煙筒)은 가위(可謂) 몽상(夢想)도 할 수 없을 만한 것이었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이어 기선에 승선하였을 때, 그는 “배의 제도는 자세히 보아도 설명할 수가 없는” 데다가 “몸가짐을 진중히 하여 마음대로 구경을 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아쉬워하면서도 직접 옷을 걷고 증기선을 면밀하게 관찰하였다. “대개 한 척의 배가 모두 기관(機關)이라, 한 개의 기관이 고장 나면 한 척의 배가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고 그 원리를 캐내려는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기선의 구조와 운행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였던 것이다.229)김기수, 『일동기유』 권1, 승선, 361∼365쪽.

그리고 5월 7일 신바시에 가기 위해 요코하마에서 기차를 타러 정류장에 갔을 때, 김기수는 “차가 벌써 역루(驛樓) 앞에서 기다린다 하기에 역루 밖에서 또 복도를 따라 수십 칸을 다 지나갔는데도 차는 보이지 않는다. 기다란 행랑(行廊) 하나가 40∼50칸이나 되는 것이 길가에 있기에 차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것이 바로 차라고 한다.”면서 “조금 전에 기다란 행랑이라고 생각하던 것이 차이지 행랑은 아니었다.”라고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이어 그는 기차, 객실, 철로의 구조와 모습을 세밀하게 살펴 설명하고, 기차에 오른 소감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확대보기
요코하마역
요코하마역
팝업창 닫기

차마다 모두 바퀴가 있어 앞차의 화륜이 한 번 구르면 여러 차의 바퀴가 따라서 모두 구르게 되는데 천둥 번개처럼 달리고 비바람처럼 날뛰어, 한 시간에 300∼400리를 달린다고 하는데도 차체는 안온(安穩)하여 조금도 요동하지 않는다. 다만 좌우의 산천, 초목, 옥택(屋宅), 인물만이 보이기는 하나, 앞뒤에서 번쩍번쩍하므로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다. 담배 한 대 피울 동안에 벌써 신바시에 도착하니, 곧 90리 길을 온 것이다. ……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230)김기수, 『일동기유』 권2, 완상, 383∼384쪽.

처음에는 객실 안에 들어가서도 기차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정도의 당혹감이 담배 한 대 피울 동안 회오리바람처럼 달려가서 목적지에 도착하 자 경악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확대보기
기차
기차
팝업창 닫기

더욱이 그는 육군성(陸軍省)의 병학료(兵學寮) 정조국(精造局)에 가서 “큼직한 집 앞에 벽돌로 쌓은 굴뚝이 있는데, 높이가 하늘에 닿은 듯하므로 우러러보았더니 정신이 아찔하였”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화륜이 작동하는 상황을 재차 목격한 뒤, “사람이 한 종목의 물건을 만들려면 한 성능의 기구 밑에서 만들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었다.”고 평가하였다.231)김기수, 『일동기유』 권4, 문사, 부관육군성정조국기, 503∼505쪽. 따라서 그는 증기 기관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기계와 기술을 ‘기기음교’로 규정하면서도 “다만 배와 차에만 화륜이 있는 것이 아니라, 화륜이 한번 설치되매 금과 옥을 다루는 기구와 나무와 돌을 다루는 도구를 움직이게 하여, 모나게 하고 둥글게 하고 굵게 하고 가늘게 하고, 크게 하고 작게 하고 정하게 하고 거칠게 하는 것을 화륜으로 정제(整齊)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한 개의 화륜으로 천하의 능사(能事)를 다 할 수가 있다.”고 정확하게 판단하기에 이르렀다.232)김기수, 『일동기유』 권4, 환조, 부행중문견별단, 513∼514쪽.

이와 같이 김기수는 파견되기 전에 전선, 기선, 전신 등에 대해 정보를 접하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직접 보거나 체험한 뒤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 놀라움과 감탄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나아가 그는 이들을 작동하는 근본적인 동인(動因)이 증기 기관에 있다고 정확히 인식하였다. 비록 그가 전통적인 유교적 관점에서 서양의 기술과 기계를 ‘기기음교’로 단정한 한계를 지니기는 하였지만, 이에 대해 가능한 한 자세히 묘사하고 원리를 캐내려 하였던 의도는 당시 조선 정계의 분위기를 염두에 두면서 실상을 정확히 알림과 동시에 수용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제시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김기수는 귀국 후 고종에게 복명하는 자리에서 일본이 전선, 화륜, 농기계 등 세 가지 일을 급선무(急先務)로 삼아 힘쓰고 있느냐는 물음에 동의를 표하였으며, 일본이 각국의 정밀하고 편리한 기계들을 이미 배워서 가르치고 익히는 방법에도 모두 익숙하였다고 아뢰었다. 나아가 고종이 “재주가 이미 정묘(精妙)하고 학문에 또한 부지런하면 이와 같이 쉽게 배울 수 있는가?”라고 묻자 “과연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함으로써233)『승정원일기』 1876년 6월 1일. 우리나라 역시 적극적으로 수용할 태세를 갖춘다면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