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2권 한반도의 흙, 도자기로 태어나다
  • 2 토기 제작전통의 형성과 발전
  • 01. 기술혁신과 공방의 발전, 원삼국시대
  • 토기의 유형
  •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와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
이성주

원삼국시대까지 무문토기 전통이 지속되어 하나의 토기 유형을 설정할 수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의 군곡리패총에서는 중국 화폐인 화천(貨泉)이 출토되어 유적이 형성된 연대를 짐작하게 하는데 호남 지역 원삼국시대의 일상생활용 토기를 대표하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패총에서 나오는 옹형토기, 발형토기 및 시루 등 생할용 토기는 원삼국시대 꽤 늦은 시기까지 타날기법과 물레질법이 적용되지 않고 바닥은 여전히 무문토기처럼 납작바닥이며 무문토기적인 기술로 만들었다.

이러한 토기를 발굴 보고자는 경질무문토기라고 불렀다.34) 崔盛洛, 『韓國 原三國文化의 硏究』, 學硏文化社, 1993, pp.137∼180. 즉, 무문토기의 태토와 무문토기의 성형 및 정면 기법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소성을 단단하게 하였기에 경질이라는 뜻이다. 강원도 춘천의 중도유적에서 집자리유적이 발굴되어 회색의 타날문단경호와 고구려의 끌머리형[鑿頭式] 철촉이 출토되었는데, 여기서 나온 생활용 토기의 대부분은 무문토기적인 기술로 제작된 것이었다. 납작바닥에 모래가 많이 섞인 점토로 만들고 산화염소성으로 적갈색을 띠며 표면은 마연이라기보다 거칠게 점토를 끌어올리는 정면을 하였다.

겉모습으로 보면 무문토기 그대로기 때문에 이 토기유물군에는 중도식토기(中島式土器) 혹은 중도식무문토기(中島式無文土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함께 나온 고구려 철촉의 연대를 4세기 이전으로 올려 보기는 어렵기에 이 지역은 무문토기 전통이 원삼국시대 이후까 지 계속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원삼국시대 동안, 이 중도식토기는 한강 유역과 강원도 동해안을 포함한 중부 지방 전역, 즉 마한과 예족의 영역에 널리 퍼져 있던 토기문화였다. 한강 유역 백제의 중심지에서 무문토기 기종인 옹과 발을 타날기법과 물레질로 제작하게 되면서 이러한 토기 제작이 한강 유역을 따라 확산되면서 중도식토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하지만 북한강과 남한강 상류에는 5세기까지도 이러한 무문토기 전통이 남아 있게 된다. 강원도 동해안도 중도식토기의 유형이 지배적이었던 지역이었지만 4세기 후반부터 신라 토기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도식토기 옹과 발이 타날기법으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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