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2.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
  • 사회·경제적 환경 요소, 생리와 인심
  • 1. 생리
이용석

생리는 경제적 조건을 의미한다. 특히, 이중환은 상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원의 대부분이 토지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중시하여 농업의 토대 위에서 교역의 촉진을 주장하였다. 생리는 재리(財利)를 경영하여 넓힐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집중하여 교환이 가능한 결절지점, 즉 입지와 조건이 모두 유리한 장소를 꼽았다. 이는 조선 후기 사회변동에 조응하여 상업적 농업의 육성, 수공업의 발달, 경제적 가치관의 변화 등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지방의 사대부들은 활발한 교역과 상품시장을 통한 부의 확대보다는 농경지의 확대와 노비 확보 등을 통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었다. 이는 철저한 유교적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서 ‘봉제사 접빈객(奉祭祀接賓客)’과 ‘관혼상제’의 예를 따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사대부들이 자족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면 적정 규모의 농경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농경지 규모와 비옥도는 취락의 규모와 발전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계거를 통해서는 넓은 평야지대에서 농사로 얻을 수 있는 큰 이익이나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획득할 수 있는 상업적 이익 또는 해안 지방에서 얻는 어염 이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밭에서 재배할 수 있는 채소류나 산지에서 생산되는 임산물은 풍부한 편이었다.

또 관개를 통해 농경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추고, 평야 같은 대규모의 경지를 갖지는 못해도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을 정도의 농경지 확보는 용이한 편이었다. 평지는 논으로 이용하고, 경사가 완만한 부분의 땅은 밭을 만들어 채소류를 비롯한 다양한 밭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다.

이는 주민들의 영양 공급원이 다양해지며, 산물의 교환이 없이도 자급자족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결과적으로 계거는 ‘피병’·‘피세’하는 데 유리한 자연적 지세를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한해(旱害)와 수해(水害)를 최소로 줄여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문을 닦고 유한(幽閑)한 정경(情景)을 선호하는 사대부들의 성향과 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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