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2.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
  • 사회·경제적 환경 요소, 생리와 인심
  • 2. 인심
이용석

인심은 주거지 주변 마을들과의 관계, 풍속, 교육환경, 주민들의 생활양식 등을 포함하는 사회적 환경을 의미한다. 현대 지리적 관점에서 보면 근린(近隣)과 의미가 통할 수 있다.10)최영준, 「『택리지』 ; 한국적 인문지리서」, 『국토와 민족생활사』, 한길사, 1997, p.93. 이는 사대부로서 학문을 탐구하고 자기 수양을 하며, 또한 마을 간의 혼인을 통해 인척관계를 맺거나 학문적 상호교류를 하여 유교적 가치관·도덕관을 확립하고 양반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공자와 맹자는 “사는 동네를 가린다.”고 하였는데11)『論語』의 里仁章에서 보면 ‘里仁爲美.’라고 하였다. “사람이 어진 마을을 선택해서 거주할 줄 모른다면 그런 사람을 가리켜 어찌 知者라고 일컫겠는가(擇不處仁 焉得知).” 鄕里에는 인후한 풍속이 감돌고 있어야만 아름답고, 또한 그런 곳이어야만 살 만한 곳임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향리가 갖추어 지녀야 할 아름다움을 잃는다면 그곳의 사람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의 마음을 갖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失其是非之本心 而不得爲知矣).”, 이는 속세를 피해 은둔한다는 뜻이 아니라 미풍양속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에 정착하여 좋은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히려 사대부들은 소극적으로 미풍양속이 자리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거주하고 있는 향촌을 적극적으로 교화하여 향리풍속을 선양하고자 하였다. 즉, 둔세적(遁世的)인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가 거처하는 향리에서는 그 향리가 어진 곳이든 어질지 못한 곳이든 주민을 교화하여 보다 나은 향풍을 진작하고 양민을 기르는 데 힘써서 나라의 은총이 미치지 못하는 곳일지라도 그에 못지않은 마을이 될 수 있게 한다는 데 그 본질적인 의의를 두었다.

조선 중기 퇴계 이황이 시행한 ‘예안향약’12)「예안향약」은 퇴계 이황에 의해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향약이며, 이 향약을 효시로 각지에서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다. 「예안향약」에 이어 1560년 율곡 이이에 의해 「파주향약」이 시행되었고, 1571년 「서원향약」(청주 지방), 1579년 「해주석담향약」(해주 지방) 등이 이어졌다. 향약은 문자 그대로 향인간의 약속으로 이루어지는 共同遵行의 규범이다. 여기서 말하는 향인이란 水火를 상통하는 이웃임을 뜻한다. 이웃의 개념으로 성립되는 사회는 대체로 마을과 같은 소단위의 지역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향약이 시행되는 지역범위의 일반적인 규모는 오늘의 面 단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지역민간의 숙지도는 대단히 높기 때문에 역시 마을의 개념으로 통용되는 경우도 있다.을 살펴보면, 이는 단 순한 조약규정의 문건이 아니라 이에 내재된 당대 사대부들의 사회관·향촌관을 볼 수 있다.13)김유혁, 「퇴계의 향약과 사회관」, 『퇴계학연구』 1, 1987, pp.211∼235. 퇴계는 “선비는 마땅히 도를 실질적으로 실행해 가야 할 장으로 가정과 향당(鄕黨)을 삼아야 하며,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교화하고 풍속을 순화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그 지역사회에 신망이 두터운 지도자가 있으면 고을의 풍속이 숙연해지고, 그런 지도자를 지니지 못하면 그 고을은 해체된다.”14)“得人則一鄕肅然 匪人則一鄕解體.”고까지 말하고 있다.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향촌에서 적극적으로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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