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1 전통적인 취락의 입지 원리와 풍수
  • 03. 전통적인 입지 원리로서의 풍수와 취락
  • 마을과 풍수
  • 3.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 남사마을
이용석

대전-진주 간 고속도로의 단성나들목을 지나 지리산 자락을 향해 5분여 남짓 가다 보면 20번 국도변으로 남사마을을 알리는 큰 표지판과 함께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보이는 즐비한 기와집들과 흙돌담길은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에게도 평범한 마을이 아니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의 남사마을은 전체 가구수는 약 130여 호가량 된다. 호수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 세(勢)를 달리하여 지금은 성주 이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지만, 밀양 박씨, 진양 하씨, 연일 정씨 등도 적지 않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 전통 마을은 일반적으로 같은 성씨가 마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성(同姓)마을의 모습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남사마을은 각기 학문과 벼슬로 뛰어난 조상을 모신 여러 성씨들이 한데 모여 살면서 하나의 마을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남사마을은 풍수상 길지로 알려져 일찍부터 사람들이 정착하였는데, 이 마을을 처음 연 것은 진양 하씨이며, 그 이후 여러 성씨들이 이주해 왔다고 전한다. 풍수상의 명당은 한정된 것이 아니므로 풍수적 이상향(理想鄕)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곳에서 다양한 성씨 집단 응집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 같다. 명당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다툼이 어찌 없었으랴마는, 어느 한 사람이 이를 독점하지 않고 서로 나누며 공존하는 조화와 상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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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록리의 풍수형국도
오록리의 풍수형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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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촌 기념비
개촌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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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에서 땅의 모양새를 살피는 형국론(形局論)은 산천형세를 사람, 동물, 문자 등 다양한 형상에 빗대어 그 길흉을 판단한다. 곧, 그 땅의 생김새는 그에 상응하는 성질과 기운을 안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명당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지세를 전반적으로 쉽게 개관할 수 있기 때문에, 풍수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거나 해석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한 마을을 두고도 여러 가지 형국이 거론되고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남사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이어진 산줄기와 그 사이를 흐르는 남사천이 서로 어울려 마치 태극 모양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서쪽의 니구산(尼丘山)의 산줄기가 북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남쪽으로는 당산(堂山)이 동쪽으로 뻗어 그 사이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모양새를 두고 니구산은 수용의 머리가 되고 당산은 암용의 꼬리가 되어 한쌍의 암수 용이 서로 머리와 꼬리를 무는 모습으로 본다. 또한, 암용과 수용이 마주하는 배 부분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암용과 수용이 서로 배를 맞대고 꼬리를 무는 모습은, 곧 암수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생산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사마을은 암수 용 두 마리의 형세[雙龍交遘形] 외에도 남사천이 마을을 휘감아 도는 모양을 두고 초승달형[初月形], 행주형(行舟形) 등에 비유되기도 한다. 남사천과 함께 마을 남쪽 당산(堂山)의 산자락이 마을 안쪽으로 파고들어 있어 마을은 마치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속담에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있 다. 곧, 세상의 온갖 일은 한 번 성하면 한 번은 쇠한다는 뜻으로 부귀와 영화도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남사마을 가운데 초승달 안쪽으로 파고든 부분은 아무것도 채우지 않은 채 집이나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하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마을 공동 소유의 논이었는데, 외지인이 이를 사들여 음식점을 내려고 했지만, 동네 주민들이 이를 막았다고 한다. 달이 차서 기운다는 것은, 곧 마을 공동의 운명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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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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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마을을 물 위를 떠가는 배형[行舟形]에 견주기도 하는데, 이 곳처럼 마을이 하천에 의해 둘러싸여 있거나, 두 물이 한데 모이는 곳은 대체로 그 모양새를 행주형이라 하여 우물 파는 것을 금한다. 우물을 파는 것은 물 위를 떠가는 배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아 배의 침몰, 곧 마을의 쇠락을 뜻한다. 이러한 곳은 오히려 우물 파는 것은 금하는 소극적인 행동보다, 배의 순항을 기원해 적극적인 방책[裨補]으로 돛을 달기도 하는데, 배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에 솟대(짐대), 돌기둥 등을 세우기도 하고 수형(樹形) 곧은 나무를 심거나 노거수 등을 돛으로 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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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마을의 흙돌담길(고샅)
남사마을의 흙돌담길(고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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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풍수 해석은 단지 그럴듯한 재미의 풍수담(風水譚)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다. 한 마을에 우물을 여러 개 파지 않는 것은 땅 밑으로 연결된 지하수가 갈수기에 고갈되는 것을 막고, 맑은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또한, 위생에 대한 대비가 충분치 못했던 과거에는 돌림병이 났을 때 우물을 막아 수인성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도 했다. 이처럼 풍수는 자연과 인간의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도록 하며, 오랜 경험을 통한 생태적 합리성과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 현대화는 전통마을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놓았다. 도시 사람들의 발길이 쉽지 않았던 예전에 비해 고속도로가 놓이고 대중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곳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였다. 마을을 찾아온 학생에게 주전부리를 내놓고 마냥 이야기보따리 풀어내던 예전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람냄새, 고향냄새 나던 그때가 더욱 그리운 것은 그동안의 변화가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당산 아래 마을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던 논과 마을회관은 그 모습이 확 바뀌었는데, 논은 대형버스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과 마을 기념비로 채워졌고 허름한 마을회관은 한옥으로 멋지게 옷을 갈아 입었다. 남사마을은 최근 ‘남사예담촌’이란 이름으로 불리는데, 옛 흙돌담길을 뜻하는 이름이다. 지난 2003년 농촌진흥청이 주관하는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산청 남사마을은 각종 체험활동, 관광수익사업 등을 통해 마을의 부흥을 기대하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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