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2 생활공간
  • 01. 소통을 위한 매개적 공간
  • 마당,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다
김미영

마당의 어원은 ‘맏+앙’이다. ‘맏’이란 맏아들이나 맏딸 등에서 쓰이는 것처럼 ‘으뜸’ 혹은 ‘큰’이라는 뜻이고 ‘앙’은 장소를 일컫는 접미사다. 이로 볼 때 마당이란 ‘가장 으뜸되는 큰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셈이다.18)서윤영, 『집(宇) 집(宙)』, 궁리, 2005, p.147. 실제로 마당은 가옥의 바깥쪽에 위치하면서 외부에 개방되어 있고 집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이런 이유로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먼저 빗질을 해두는가 하면, 봉숭아와 채송화 등을 심어 예쁜 화단을 꾸미기도 한다. 그야말로 마당은 집을 대표하는 얼굴인 셈이다. 실제로 시골길을 걷다 보면 비록 가옥은 허술할지라도 고운 황금빛을 내뿜으면서 잘 정리된 마당을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양반집의 사랑마당은 주인의 성품과 품격을 드러내는 까닭에 선비의 지조와 풍류를 상징하는 매화·난초·대나무·국화 등을 심어 단아한 정원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마당이 외부로 개방되어 있다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자면 내부와 외부 세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매개적 공 간이라 할 수 있다. 즉, 내부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여타 공간에 비해 은밀성을 확보받지 못하며, 또 담장과 대문으로 경계 지워져 있으므로 외부공간이라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마당은 완전한 내부공간도 아니면서 동시에 외부공간도 아닌 그야말로 중간적 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외출을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마당이고, 또 외부인이 방문할 때 첫발을 내딛는 곳 역시 마당이다. 내부에서는 마당을 통해야만 외부와 닿을 수 있는가 하면 외부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도 마당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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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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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당 주위를 울타리와 대문으로 둘러싸고 있다는 점에서는 폐쇄적 공간으로 보일지라도 대문을 열어젖히면 골목길과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적영역으로서의 단절이 아닌 외부로 개방되어 있는 매개적 구조를 취한다. 이런 점에서 마당은 내부세계와 외부세계를 연결하는 일종의 통로 및 매개역할을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 역시 외부와의 원활한 소통을 고려하여 비교적 낮게 쌓았는데, 대개 어른들 키보다 낮다. 이로써 굳이 대문을 나서지 않더라도 낮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이웃들과 음식과 물건 등을 주고받는 등 간단한 용무를 볼 수 있으며, 또 골목길을 지나는 마을 사람들과도 담 너머로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의 개방적 속성이야말로 마당을 가족들만의 사적인 공간으로 한정 짓지 않고 외부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마당은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매개적 역할뿐만 아니라 완충적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상류계층의 가옥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양반집의 경우 행랑마당·사랑마당·안마당·별당마당 등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마당들이 존재하는 걸 볼 수 있다. 행랑마당은 행랑채와 담장으로 둘러싸인 공간으로서, 대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된다. 또 행랑채와 근접해 있는 까닭에 하인들의 작업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사랑마당은 사랑채 앞에 위치한 장소로서 주로 정원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행랑마당과 그대로 연결되거나 혹은 사이에 중문을 만들어두는 경우도 있다. 안마당은 안채 앞에 조성된 공간이다. 주부를 비롯한 집안 여성들의 가사 작업장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이곳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사랑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중문을 거쳐야만 한다. 이는 남녀구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여성들의 전용공간인 안채의 은밀함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보호장치였던 것이다.

한편, 서민가옥의 경우 대문에 직결하여 안마당이 자리하는 곳이 많은데, 이때 안채나 안방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담(내외담)을 쌓아두기도 한다. 가옥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별당마당 은 담장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으며 주로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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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사당
사랑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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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들 마당은 각각의 건물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이때 마당에 들어선 사람의 발소리와 헛기침 소리 등이 마당을 통해 방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됨으로써 외부인의 방문에 대해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즉, 마당을 지나는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만남을 준비하는 시간을 벌어주었던 것이다.19)윤재흥, 『우리 옛집 사람됨의 공간』, 집문당, 2004, pp.52∼54.

특히, 내외관념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었던 상류계층의 경우, 여성들의 전용공간인 안채를 가장 깊숙이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는데 이때 행랑마당-사랑마당-안마당 등의 동선을 취하도록 하는, 이른바 중층적 구조를 이룸으로써 안채를 보호하고자 했다. 이런 배치구조에서는 대문을 들어선 외부 방문객은 가장 먼저 행랑마당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하인들과의 대면을 통해 내부로의 통과여부를 결정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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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 협문
안채 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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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때 평소 출입이 잦았던 낯익은 손님이 아니라면 행랑마당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해두고, 사랑채의 지시를 받아 출입여부를 판단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난 후 하인들은 사랑채의 방문객을 내부로 정중히 모시는가 하면, 그 외의 방문객들은 행랑마당에서 용무를 마치고 되돌아간다. 이런 점에서 행랑마당은 사랑마당(사랑채)으로의 출입에 대한 완충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안채에 볼 일이 있어 온 여성 방문객들은 내외관념이 엄격했던 탓에 남성들과 마주칠 수 있는 ‘행랑마당-사랑마당’이라는 통로를 거치지 않고 안마당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옆문(협문) 등을 통해서 출입하곤 했는데, 이것 역시 평소 안면이 있는 이들에게만 허용되었을 뿐 그 외 봇짐장수 등과 같은 외부 방문객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개 행랑마당에서 용무를 마친다.

마당은 각종 만남이 이루어지는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웃사람들이 방문했을 때 일일이 집 안으로 안내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마당에서 용무를 마칠 수 있는가 하면, 집 안으로 들여 놓기에는 왠지 꺼려지는 낯선 방문객과는 마당에서 간단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통가옥의 경우 남녀유별 관념으로 인해 안채와 사랑채로 각각 분리하였는데, 이때 가족 중에서 안채에 아내를 두고 있는 남성 이외의 사람들은 안채로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안마당이라면 큰 부담 없이 드나들면서 용무를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원칙은 하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여자 하인들의 경우에는 안방이나 건넌방 등으로의 출입이 비교적 자유스러웠지만 남자 하인들에게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유일하게 안마당으로의 출입은 허용되었다. 이처럼 마당은 친분의 정도, 성별과 신분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이 소통과 교류를 하는 주거공간의 핵심적 장소였다.

가옥의 공간 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확보하고 있는 마당은 일상 및 비일상의 주된 활동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임원경제지』에 “무릇 뜰을 만듦에 있어 세 가지 좋은 점과 세 가지 피해야 할 점이 있다. 높낮이가 평탄하여 울퉁불퉁함이 없고 비스듬해서 물이 빠지기 쉬운 것이 첫째 좋은 점이요, 담과 집 사이가 비좁지 않아서 햇빛을 받고, 화분을 늘어놓을 수 있는 것이 두 번째 좋은 점이요, 네 모퉁이가 평탄하고 반듯하여 비틀어짐이나 구부러짐이 없는 것이 세 번째 좋은 점이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세 가지 피해야 할 점이다.”20)徐有榘, 『임원경제지』 9, 「瞻用志」(강영환, 『집의 사회사』, 웅진출판, 1992, pp.237∼238 재인용).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들 조건들은 외부로 노출되어 있는 마당은 정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동시에 각종 활동공간으로 이용함에 있어서도 불편함이 없어야 함을 뜻한다.

예를 들어 가을철 수확한 곡식을 마당에서 말리거나 타작하고, 또 탈곡을 하지 않은 곡물을 쌓아두는 노적가리21)노적은 곡식알이 붙은 쪽을 안쪽으로, 뿌리 부분을 바깥쪽으로 가도록 하여 2미터 정도의 높이로 곡식단을 쌓아둔 것을 일컫는다. 그런 다음 비나 눈을 맞지 않도록 그 위에 삿갓 모양으로 엮은 덮개를 씌운다. 등도 마당에 쌓아두는데, 이때 바닥이 고르지 않고 또 비가 내린 후에 물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면 작업공간으로 활용하기에 매우 부적절하다. 이런 이유로 지금도 농가에서는 비가 내릴 때 마당에 함부로 들어서면 꾸 지람을 듣곤 한다. 질척해진 땅에 발을 디디면 시간이 지나 그대로 굳어져 마당이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인데, 이럴 때는 마당 앞에 진흙을 가져다 놓고 이겨서 고르게 바르는 ‘마당들이기’ 혹은 ‘마당맥질’을 해야 한다.22)서윤영, 앞의 책, pp.15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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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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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의 건조는 마당의 주된 기능이었다. 『임원경제지』에서도 “ㅁ자형 집의 가장 안쪽은 안마당이라 할 수 있는데, 마당이 협착한 데다가 지붕의 그늘이 서로 드리워진 까닭에 곡식이나 과일을 말리는 데 모두 불편하다.”23)서유구, 『임원경제지』 9, 「瞻用志」.라고 마당의 기본 조건으로 채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농사 규모가 큰 집에서는 탈곡한 곡식을 넣어두는 곡물창고로 ‘뒤주’나 ‘장석’ 등의 시설을 마당에 설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농작물은 농가의 주된 재산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감시가 비교적 용이한 장소에 보관할 필요가 있었으며, 이때 마당이 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24)강영환, 앞의 책, pp.236∼237.

여름철 마당은 그야말로 최고의 피서지이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면 방에 열기가 달아오르는 탓에 이동식 아궁이를 마당에 설치하여 밥을 짓는가 하면,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平床)에서 식구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광경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낮 동안의 열기가 가득찬 방을 피해 온 식구가 평상에서 찐 옥수수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거나 아예 그곳에서 잠을 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마당의 넓은 면적은 잔치를 벌이기에도 제격이었다. 혼례와 회갑연은 으레 마당에 잔칫상을 차렸으며, 의례가 끝나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차양을 쳐서 손님접대를 하는 공간을 조성하였다. 생일잔치나 돌잔치 등에서도 비록 잔칫상은 마루에 차려졌지만 손님들은 마당에서 음식상을 받곤 하였다. 이처럼 마당은 잔치나 큰일이 있는 날에는 그야말로 마을 사람들 모두 함께 소통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마당은 신앙공간으로도 이용되었다. 이른 새벽 주부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을 드리는 장소 역시 마당이었으며, 터주신이라 하여 뒷마당에 곡물을 넣은 독을 안치해 두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앞마당에는 탈곡하지 않은 곡물을 보관하는 노적가리를 쌓아두었는데, 이를 지키는 신을 ‘노적지신’이라고 하였다.

곡물을 수장하는 장소로서 마당의 중요성은 지신밟기 노래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다음은 울산 지역에 전하는 지신밟기 노래이다.25) 앞의 책, p.237.

에이야루 노적지신 눌루자

가리자 가리자 수만 석으로 가리자

불우자 불우자 수만 석으로 불우자

막우자 막우자 발 큰 도둑 막우자

천양판도 여게요 만양판도 여게라.

지신밟기는 마당밟기라고도 한다. 지신(地神)을 밟아줌으로써 터주 신을 위로하여 신이 흡족해하면 한 해 동안의 악귀를 물리쳐 복을 가져다준다는 신앙행위이다. 마당에 노적가리가 있는 경우에는 ‘노적지신(露積地神)’을 위로해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신밟기에서는 ‘수만 석의 곡식을 쌓아 노적지신의 은신처를 마련해 주리라’고 노래 부르는가 하면, 이로써 노적지신이 만족하면 수만 석의 곡식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기원하고는 이들 곡식을 도둑으로부터 지키리라는 다짐으로 마무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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