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1. 가신이란
정연학

집은 개인에게 작은 우주와 같아서 ‘소우주(小宇宙)’라고 달리 표현되기도 한다. 우주(宇宙)를 나타내는 한자에 집 ‘우(宇)’자를 쓴 것도 그러한 개념에서이다. 집 안에는 다양한 신들이 좌정을 하고 맡은 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처럼 서열은 있지만 신들끼리 싸움을 하거나 다투지는 않는다. 이처럼 집에 깃든 신을 ‘가신(家神)’·‘집지킴이’라고 한다.

가신을 섬기는 신앙을 ‘가신신앙’·‘가족신앙’·‘가정신앙’이라고 일컬으며, 가신의 형태와 명칭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62)문정옥, 「한국 가신 연구」, 성신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1, pp.1∼164. 1969년에서 1981년도 사이에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63)문화재관리국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를 연도별로 발간하였다. 전남편(최길성, 1969), 전북편(김태곤, 1971), 경남편(장주근, 1972), 경북편(장주근, 1974), 제주편(장주근, 1975), 충남편(박계홍, 1976), 충북편(현용준, 1977), 강원편(김선풍·이기원, 1978), 경기편(이문웅, 1978), 서울편(이문웅, 1979), 황해·평안남북편(이문웅, 1980), 함경남북편(이문웅, 1981) 순이다.에서도 해당 지역 조사자에 따라 가신신앙에 대한 용어를 달리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태곤과 현용준은 ‘가신신앙’, 장주근과 박계홍은 ‘가정신앙’이라고 하였으며, 이문웅과 김선풍은 ‘가족신앙’과 ‘가신신앙’을 병기하였다. 현재도 ‘가신신앙’·‘가정신앙’이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64)김명자, 「가신신앙의 역사」, 『한국민속사논총』, 지식산업사, 1996, pp.271∼288 ; 김명자, 「가신신앙 이렇게 변화하면서 전승된다」, 『민속문화,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는가』, 집문당, 2001, p.205 ; 이필영, 「충남지역 가정신앙의 제 유형과 성격」, 『샤머니즘 연구』, 한국샤머니즘학회, 2001.

한편, 집 안에 있는 신들을 표현할 때 김광언은 가신에 해당하는 우리말인 ‘집지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65)김광언, 『한국의 집지킴이』, 다락방, 2000 ; 김형주, 『민초들의 지킴이신앙』, 민속원, 2002.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속에 관한 글을 남긴 이능화는 가신을 ‘가택신(家宅神)’이라는 용어로 표현하였다.66)이능화, 『계명』 19, 계명구락부, 1927(이재곤 역, 『조선무속고』, 백록출판사, 1976, p.177).

‘가신신앙’은 공간적 개념으로 집에 깃들어 있는 신을 지칭하는 것이고, ‘가정신앙’은 한 가정에서 섬기는 모든 신을 그 범주 안에 포함시킨 것이다. 따라서 가정신앙은 가정에서 행해지는 안택, 산멕이, 삼잡기, 굿, 풍수, 점복 등67)김명자 외, 「한국신앙연구사」, 『한국의 가정신앙』 상·하, 민속원, 2005, pp.1∼56. 이 논문에서 김명자는 한국의 가신관련 논문, 도서, 보고서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과 무교, 불교, 기독교, 신흥종교 등 모든 종교를 그 범주 안에 넣을 수 있다.

가신은 집·토지, 집안의 사람과 재물을 보호하는 신이다. 이능화는 한국에서 가신을 신봉하는 풍속은 고대로부터 전해진 풍속이고, 무교, 도교 또는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어느 것이 무교·도교·불교에서 기원하였는지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고 혼재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68)이재곤 역, 앞의 책, p.183. 장주근은 가신의 성격에 대해 역사의 유구성과 여성성·조령성·불교성·유교재래성 등의 복합 신앙이라고 보았다.69)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pp.126∼128. 그들의 말대로 한국의 가신은 지역마다 기능이나 역할 등이 혼재되어 있어서 가신의 개별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인 학자 아키바(秋葉隆)는 한국의 가제(家祭)를 남성의 유교적 가례(家禮)와 여성의 무속적 가신신앙 두 가지 유형이 대립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가신신앙과 무속신앙을 동일시하였다.70)秋葉隆, 「가제의 2유형」, 『朝鮮民俗誌』, pp.137∼145 ; 张承宗, 「魏晋南北朝妇女的宗教信仰」, 『南通大学学报(社会科学版)』 2006年 第2期, p.94 ; 장주근, 앞의 책, pp.65∼66 ; 최진아, 「무속에 나타난 가정신-가정신의 직능을 중심으로」,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246. 가신신앙과 무속신앙의 관련성은 여러 학자들에 제기되었는데,71)문정옥, 앞의 책, p.9. ; 김태곤, 『한국의 무속신앙』, 집문당, 1985, pp.99∼134 ; 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p.100 ; 김명자, 「가신신앙의 역사」, 『한국민속사논총』, 지식산업사, 1996, p.273 ; 김명자, 「무속신화를 통해 본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p.177∼207 ; 최진아, 앞의 책, pp.246∼283 ; 홍태환, 「무가에 나타난 성주신의 모습」,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p.284∼304 ; 임근혜, 「안성굿의 성주신」,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p.208∼245. 장주근은 무속에서 섬기는 신과 가정에서 섬기는 가신이 혼합되어 있어 가신신앙과 무속신앙의 근원이 같은 것으로 보았다.72)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p.100. 실제로 무속신화에는 성주, 제석, 조왕, 지신(地神) 등이 가신으로 좌정하게 된 무가(巫歌)나 신화가 있으며,73)김태곤, 앞의 책, 1985, pp.99∼134. 가신들 가운데 여러 신들이 무당에 의해 처음으로 모셔지고, 무당이 주부(主婦)를 대신해 가신들에게 고사를 행하기도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도와 교동도 지역에서는 한 집 안에 여러 대감 을 모시며, 각각의 대감은 괘자와 벙거지를 한지로 싸서 집 안에 있는 선반이나 장롱 위에 올려두었다. 이들 괘자와 벙거지는 무당들이 안택이나 굿을 할 때 대감거리에서 입는다. 많은 대감을 모신 주부는 일일이 대감의 명칭을 외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 대감을 싼 봉지 한쪽에 그 이름을 써놓기도 한다.

가신에 대한 그동안의 개념은 집·부녀자·의례라는 단어들로 정리해 왔다. 문정옥은 가신을 서민 부녀자층이 제주가 되어 모시는 가내 신으로 규정하고, 조령·성주·조왕·터주·삼신을 주요 가신으로, 그 이외에 제석·업·철륭·칠성·수비·측신·액사령·풍신 등을 잡다한 가신으로 분류하였다.74)문정옥, 앞의 책, p.9. 장주근은 가신에 대해 “가정 단위의 신앙이고 그 담당자는 주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무당처럼 전문 사제자의 기능이나, 남성들이 주재하는 유교 제례처럼 논리성이나 이념성, 형식성을 갖지 못하는 가장 정적이고 소박한 민간신앙의 하나다.”라고 정의를 하고 있다.75)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p.65. 김태곤은 가택의 요소마다 신이 있어서 집안을 보살펴주는 것이라고 믿고 이 신들에게 정기적인 의례를 올리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76)김태곤, 『한국 민간신앙 연구』, 집문당, 1983, p.18. 이들의 가신에 대한 개념은 근래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주와 조상신에 대한 제사에 가장이나 남편이 참여하고,77)박호원, 「가신신앙의 양상과 특성」, 『民學會報』 24, 1990, p.20. 가신을 위한 안택에서도 남자들이 유교식으로 제의를 하기도 한다.78)서정화, 「공간 분화에 따른 가정신앙 의례」,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12, p.95. 터주나 업가리 등을 새로 만드는 일도 남자들의 몫이기 때문에 남자들이 가신신앙에서 배제된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주로 여성의 공간인 안채에 가신들이 깃든 것을 보면, 주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가신에 대한 고사는 집안에 우환이 있거나 집안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비정기적으로 행하며, 신의 봉안처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한국의 가신신앙은 복잡하여 명확히 규정하기가 어렵다.

집의 안과 밖의 실질적인 경계는 울타리이고 상징적인 의미에서 의 공간적 경계는 대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집의 경계는 건물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터가 기준이 된다. 따라서 집 밖의 뒷간, 돼지우리, 곳간 등도 관념적으로 집 안에 속한다.79)최길성, 『한국민간신앙의 연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89, p.94. 또한, 이들 공간에도 가신이 깃들어 있다.

가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새로운 곡식을 수확하는 10월 상달에 주로 행하고, 단지나 바가지 등에 넣어두었던 기존의 곡식을 햇곡식으로 교체한다. 또한, 정월 초하루, 보름, 칠석, 한가위 등 절기에도 하는 것으로 보아 가정신앙이 세시와 상관성이 있는 것을 보인다. 가족 생일이나 조상 제사 때도 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보아 가족주의의 혈연강화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80)박호원, 「가신신앙의 양상과 특성」, 『民學會報』 24, 1990, p.19. 가신에게 바쳤던 곡식을 가족끼리만 나눠 먹는 것도 그러한 이유를 반영한 것이다.

삼신과 조령 등은 자손의 번창과 안녕 기원을 목적으로 하는 신이라고 하지만 가신은 가내평안, 부귀와 풍농, 가택의 수호라는 공통된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81)문정옥, 「한국가신의 분류」, 『한국민속학』 15, 민속학회, 1982, pp.33∼34.

가신 또는 가정신앙에 대한 연구는 총체적 연구,82)李能和, 『朝鮮巫俗考』, 『啓明』 19, 계명구락부, 1927, pp.55∼57 ; 임동권, 「한국원시종교사」, 『한국민속학논고』, 집문당, 1971 ; 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학개설』, 민중서적, 1974 ; 장주근,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 1975 ; 문정옥, 앞의 책 ; 문정옥, 「한국가신의 분류」, 『한국민속학』 15, 민속학회, 1982, pp.33∼68 ; 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pp.65∼129 ; 박계홍, 『한국민속학개론』, 형설출판사, 1983 ; 김명자, 「가신 신앙의 성격과 여성상」, 『여성문제연구』 13, 효성여자대학교 여성문제연구소, 1984, pp.227∼242 ; 김광언, 『한국의 주거민속지』, 민음사, 1988 ; 인병선, 「가신」, 『民學會報』 24, 1990 ; 박호원, 「가신신앙의 양상과 특성」, 『民學會報』 24, 1990 ; 김명자, 「가신신앙의 역사」, 『한국민속사논총』, 지식산업사, 1996, pp.271∼287 ; 서해숙, 「가택신앙」, 『남도민속학』 4, 남도민속학회, 1997, pp.64∼73 ; 김광언, 『한국의 집지킴이』, 다락방, 2000 ; 황루시, 「가신신앙」, 『한국민속학의 새로 읽기』, 민속원, 2001 ; 서정화, 「영동산간지역의 가신신앙 연구-삼척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관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 김형주, 앞의 책, 2002, pp.17∼46 ; 김종대, 『한반도 중부지방의 민간신앙』, 민속원, 2004, pp.131∼148 ; 이필영, 「충남지역 가정신앙의 제 유형과 성격」, 『샤머니즘 연구』, 한국샤머니즘학회, 2001, pp.23∼52. 가신 각각의 성격 및 기원에 대한 개별 연구,83)장주근, 김택규, 「동제와 세존단지」, 『신라가야문화』 1, 청구대학 신라가야문화연구원, 1966 ; 변덕진, 「한국의 민간신앙에 있어서의 성주신에 대하여」, 『효성여대 연구논문집』, 효성여자대학, 1968 ; 김태곤, 「성주신앙속고」, 『후진사회문제논문집』 2, 경희대학교 후진사회문제연구소, 1969 ; 김용기, 「김해지방의 농경의례 성주단지고」, 『우헌 정중환박사기념논문집』, 1974 ; 장주근, 「조상단지의 조왕중발」,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 1975 ; 좌동렬, 「제주도 조왕 신앙연구」, 『학술조사보고서』,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1976 ; 최광식, 「삼신할머니의 기원과 성격」, 『여성문제연구』 11, 효성여자대학교, 1982 ; 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 집문당, 1983, pp.50∼77 ; 김명자, 「업신고」, 『斗山 金宅圭박사 화갑기념 문화인류학논총』, 논총간행위원회, 1989, pp.403∼421 ; 최인학, 「조군령적지」, 『비교민속학』 5, 비교민속학회, 1989, pp.53∼144 ; 김명자, 「안동지역의 용단지」, 『문화재』 26, 문화재관리국, 1993, pp.165∼180 ; 신영순, 「조왕신앙연구」, 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3 ; 이수자, 「구렁이업 신앙의 성격과 형성기원(1)-칠성맞이제 및 칠성본풀이와의 상관성을 중심으로」, 『한국민속학보』, 1995, pp.157∼183 ; 김명자, 「업신의 성격과 다른 가택신과의 친연성」, 『한국민속학보』 7, 한국민속학회, 1996, pp.23∼88 ; 김명자, 「경기지역의 터주신앙」, 『역사민속학』 9, 집문당, 1999, pp.169∼190 ; 김명자, 「경기지역 업신신앙의 지속과 변화」, 『민속문화의 지속과 변화』, 실천민속학회·집문당, 2001, pp.57∼82 ; 임근혜, 「성주신 연구-안동 수동마을신앙의 사례를 중심으로」,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 임재해, 『안동문화와 성주신앙』, 민속원, 2002 ; 정연학, 「주거민속으로서 한·중 大門의 비교」, 『비교민속학』 32, 비교민속학회, 2006, pp.193∼198. 현지조사를 통한 민속지적 연구,84)赤松智城·秋葉 隆, 『朝鮮巫俗の現地硏究』, 大阪星號書店, 1937 ; 村山智順, 『釋尊·祈雨·安宅』,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45輯, 1938 ;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문화재관리국, 1969∼1981.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도별 가정신앙에 대한 보고서로 『한국의 가정신앙』을 발간하고 있다. 경기편(1985), 충청북도편(2006), 충청남도편(2006. 6), 강원편(2006. 12) 등이 순차적으로 발간되고 있는데, 주로 가정신앙의 대상과 내용, 전승 현황 등을 다루고 있다. 김종대, 「가신신앙」, 『위도의 민속』, 국립민속박물관, 1987, pp.64∼73 ; 김승찬, 『가덕도의 기층문화』,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993, pp.125∼149 ; 김종대, 「가정신앙」, 『경기민속』Ⅰ-개관편, 경기도박물관, 1998, pp.554∼555 ; 김명자, 「경기 동·북부의 가정신앙」, 『경기민속지』Ⅱ-신앙편, 경기도박물관, 1999, pp.36∼90 ; 김지욱, 「경기 서·남부의 가정신앙」, 『경기민속지』Ⅱ-신앙편, 경기도박물관, 1999, pp.92 ∼132. / 이필영, 『부여의 민간신앙』, 부여문화원, 2001 ; 정연학, 「경남 남해안 민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2. 한국과 인접 국가 간의 비교 연구85)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 집문당, 1983, pp.66∼68 ; 최인학, 「비교민속학적 방법-조왕의 성격규명을 위하여」, 『한국민속학의 과와 방법』, 정음사, 1986 ; 김인희, 「한민족과 퉁구스민족의 가신신앙 연구」, 『문화재』 37,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pp.243∼266 ; 정연학, 「중국의 가정신앙-조왕신과 뒷간신을 중심으로」,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p.394∼396.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가신의 개별적인 연구를 모은 책이 근자에 발간되기도 하였다.86)김명자 외, 『한국의 가정신앙』 상·하, 민속원, 2005. 12. 이 책에서는 26명의 학자들이 가정신앙의 지역적, 역사적, 무속 관련성 등에 대한 논문을 실었고, 인접 민족 국가의 가정신앙도 소개하고 있다. 가정신앙 관련 논문만을 엮은 전문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역의 시지나 군지, 일반 보고서 등에 가신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보고되고 있다. 이와 같은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가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조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가신신앙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에 의해 급속히 단절되었으며,87)장주근은 1975년에 발간한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의 머리말에서 가신 등이 미신으로 간주되고 있는 당시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밖에도 기독교 문화의 영향, 가옥 개량, 병원에서 출산·출생, 전승 주체의 사망, 생업의 변화 등을 가신신앙의 단절을 야기시킨 원인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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