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2. 가신의 종류
  • 가신의 종류
  • 1. 성주
정연학

성주신은 집지킴이 가운데 으뜸 신으로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한다. 집안의 으뜸 신답게 그 자리도 보통 집의 중심이 되는 대들 보에 잡는다. 그래서 상량신(上樑神)이라고도 한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성주신이 들보에 깃들어 산다고 믿는다. 새 집을 짓거나 이사해서 제일 먼저 성주신을 맞이하는 ‘성주맞이굿’을 벌이거나, 고사 때 첫상을 성주에게 올리는 것도 성주신이 가장 으뜸가는 신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시루의 크기도 다른 집지킴이보다 크고, 경기도 지역에서는 성주신을 ‘성주대감’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성주신은 남자신(神)임을 알 수 있다.

성주는 한자로 성주(城主),99)이능화, 『계명』 19, 계명구락부, 1927, “家宅神之稱城主.” 성조(成造)100)홍석모, 『동국세시기』 10月 月內. 라고 적고 있는데, 중국 고사에 삼황오제 중 황제인 요순씨가 최초로 집을 짓는 법을 가르쳐주어 가택신으로 좌정하였다 하여 성주와 음이 비슷한 성조(成造)로 표기하였다. ‘성주풀이’를 ‘황제풀이’로 명명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101)김태곤, 『한국 민간신앙 연구』, 집문당, 1983, p.53. 그러나 정작 중국에서는 성조(成造), 성주(城主)라는 신격 명칭을 쓰지 않는다.

이능화는 성주를 맞이하는 ‘성주받이’ 풍속이 지역에 따라 다름을 적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백지에 동전을 싸고 접어서 청수를 뿌려 붙인 다음 쌀을 뿌리고, 충청도는 서울과 풍속은 같으나 상량 중간에 붙이고, 평안도와 함경도는 쌀을 단지에 담아 상량에 안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02)이능화, 『계명』 19, 계명구락부, 1927. 이와 같은 풍속은 지금도 현지에서 볼 수 있어서,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는 한지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베나 헝겊을 상량에 걸어두기도 하고, 전라도 지역에서는 성주독을 안방 한쪽에, 경상남도 지역에서는 마루 한쪽에 둔다.

‘성주받이’에 행해진 여러 신앙물을 성주의 신체로 보고 크게 단지와 한지 형태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단지와 한지는 성주의 신체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성주에게 바치는 곡물의 그릇이나 폐백(幣帛)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엌 조왕에게 바치는 단지의 물, 터주나 업에게 바치는 쌀이나 콩 등의 곡물 등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터주가리에 흰 창호지를 걸고, 그것을 터주에게 바치는 옷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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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에 건 무명천
들보에 건 무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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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댓가지에 붙여 들보에 건 모습
한지를 댓가지에 붙여 들보에 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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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를 접어 안방 위쪽에 붙인 것
한지를 접어 안방 위쪽에 붙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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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의 성주 단지
마루의 성주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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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 들보에 건 모습
베를 들보에 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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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를 신체로 봉안하는 일은 아무 때나 할 수 없다. 주인(대주)의 나이가 일곱 해가 드는 해의 10월 상달 중에 날을 잡아서 성주신을 봉안한다. 성주신을 봉안하는 것을 ‘성주 옷 입힌다.’ 또는 ‘성주 맨다.’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 집주인을 성주에 비겨서 나이 젊은 성주를 ‘초년 성주’, 마흔에 이르면 ‘중년 성주’, 늙은이는 ‘노년 성주’라 부른다.

경기도 장호원의 성주받이 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장호원읍 이황리의 이씨네는 매년 봄, 가을이면 무당을 불러 안택굿을 벌였다. 또한, 봄, 가을, 파종 전에 백설기 떡을 해서 제사를 지내고 명태를 흰 종이로 묶어 들보에 올려놓는다. 성주굿 때는 마루에 제사상을 차리고, 떡도 몇 시루 찐다. 성주굿 과정 중 ‘성주받이’ 순서가 되면, 무당은 쌀을 넣은 창호지를 접어서 술에 찍은 후 들보에 던져 붙인다. 창호지가 들보에 붙으면 그 집안에 재수가 좋다고 여긴다. 붙은 창호지는 그 후 성주의 신체로 모셔진다. 성주굿 뒷전거리 과정이 끝나면 팥을 뿌려서 촛불을 끈다. 이것은 팥을 뿌려서 잡신을 쫓아내는 행위이다. 성주굿은 보통 1박 2일 동안 한다.

오늘날 ‘성주받이’ 신물(神物)들은 좀처럼 보기가 어렵다. 그래도 가신 가운데 오랜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이 성주일 것이다. 도시 아파트에서도 처음 이사를 오면 거실에 시루떡을 놓고 고사를 지내는 가정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집의 가장 으뜸 신인 성주에게 새로 이사 온 가정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성주 고사가 끝나면 시루떡 일부를 부엌이나 화장실, 문, 베란다 한쪽에 떼어놓는 것도 집 안 곳곳에 깃든 가신을 위한 행동이다. 일부 가정에서는 10월 상달에 성주고사를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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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상(인천)
성주상(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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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주 가운데에는 중국의 강태공이 등장하기도 한다. 중국에서도 성주는 주로 강태공(姜太公)으로 묘사되며,103)仝晰纲, 「宗教行为与姜太公神话的文化积淀」, 『辽宁大学学报(哲学社会科学版)』, 1999年 第5期, pp.60∼63. 상량에는 ‘姜太公在此大吉(강태공재차대길)’ ‘姜太公在此諸神退位(강태공재차제위신퇴위)’ 등의 문구를 적는다. 그 뜻은 강태공이 상량에 깃들어 있어 길한 일이 많이 생기고, 강태공이 머무르고 있으니 모든 잡귀들은 물러가라는 뜻이다.

강태공은 서주(西周)의 건국 공신으로 70세 때 주나라 문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고 그 공로로 제나라를 다스려 태공이라는 명칭을 얻고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역사적인 인물인 강태공은 당나라 때 신으로 받들어지는데, 당 고종 원년(元年, 674)에 무성왕(武成王)으로 봉해지고, 당 현종 19년(731)에는 황제의 명령으로 경도(京都)와 각 주(州)에 태공묘가 세워지기도 한다.104)殷偉, 殷斐然, 『中國民間俗神』, 雲南人民出版社, 2003, p.68. 또 당 현종 천보 6년(747)에는 황제의 명으로 무과시험을 보는 사람들은 먼저 태공묘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강태공이 민간에 신적 존재로 부각된 계기는 명대에 쓰인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강태공이 신통력과 법력으로 사악한 귀신들을 쫓는 이야기가 소개되면서부터이다.

강태공이 신의 위치에 오르면서 “강태공이 있으면 모든 귀신들은 물러가야 한다. 내가 모든 귀신 위에 있기 때문이다(姜太公在此 諸神退位 我在衆神之上).”라고 선포하였고, 단 밑에 있던 귀신이 “당신이 왜 모든 귀신의 위냐?”고 묻자 “너희들의 신위는 집의 지면에 있지만 나의 신위는 상량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했다.

위의 내용을 통해 강태공이 명나라 때 상량신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건물 위에 좌정한 신이 땅에 있는 신보다 신격이 높음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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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에 고사 지내는 모습(인천)
성주에 고사 지내는 모습(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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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성주신은 보통 마루에 모시는데, ‘마루’라는 단어는 중국 동북 지방의 소수 민족들이 신성한 장소라는 의미를 가진 ‘말루’라는 단어와 관련이 있다. ‘말루’는 텐트형 가옥의 입구 맞은편에 조상신 등의 신들을 모신 장소로 일반인이 접촉할 수 없는 신성한 장소이다. 북방 인근 민족이 가족 수호를 위해 가내에 신체를 봉안한 점이라든지, 북방민족이 조상신과 목축신을 성스러운 장소인 마루에 봉안한 점 등이 우리나라에서 성주를 마루에 봉안하는 것과 공통된다는 점을 들어 상호 관련성을 제기한 학자도 있다.105)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 집문당, 1983, pp.66∼68.

다른 점은 북방민족은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목축신을, 우리는 농신을 중시하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우리의 가신신앙이 북방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신체의 형태가 북방민족은 사람을 닮아 우리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리고 북방 지역의 가옥 구조는 우리와 달라서, 유목을 위주로 생활하는 그들은 텐트에서 주로 생활을 한다. 텐트 안은 우리 가옥처럼 구획 구별이 뚜렷하 지 않으며 단지 북쪽에 가신을 모신 장소와 중간에 화당(火塘)이 있다. 마루에 모신 신격의 주체로 우리가 성주를 모신다면 북방민족은 조상신과 가축신을 모신다. 또한, 북방민족에게는 우리처럼 다양한 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마루는 남방의 고상식(高床式) 건축물의 특징을 가졌지만 마루에 으뜸 신인 성주를 모시는 것이나, 전라남도 일부 지방에서 신앙물을 모신 공간을 ‘마루’라고 지칭하는 것을 통해 북방민족의 ‘마루’와 용어상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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