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2. 가신의 종류
  • 가신의 종류
  • 2. 조왕
정연학

우리나라에서는 조왕은 ‘조왕할머니’라고 부르며, 부녀자들이 아침 일찍 조왕단지의 정화수를 갈아주며 집안의 평안을 기원한다. 또 작은 기름통에 불을 밝히거나 밥을 지어 조왕에게 제사를 지낸다.

조왕(竈王)은 한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엌을 지키는 왕(王)’이다. 부엌은 한 집안의 음식을 만드는 곳이자 불을 지피는 곳이기에 조왕은 불을 관장하는 신이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조왕을 조신(竈神), 조왕보살, 조군(竈君), 동주사명(東廚司命), 취사명(醉司命), 사명조군(司命竈君), 호택천존(護宅天尊), 정복신군(定福神君) 등 다양하게 부른다. 호칭에 붙어 있는 신, 천존, 보살, 왕, 군, 사명(司命) 등을 통해 조왕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민간에서 조왕신은 조왕할아버지[竈王爺] 혹은 조왕군(灶王君)이라고 부른다. 조왕군(灶王君)의 명칭은 『전국책(戰國策)』에서 처음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미 전국시대에 조왕이 등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호칭 가운데 ‘東廚司命(동쪽 주방의 사명)’은 ‘조왕신’과 ‘사명’을 같은 신으로 보고 있으나, 조왕신과 사명신은 원래 별개의 다른 신이다. 그러나 후대에 오면서 조왕신이 사명조군(司命竈君) 혹은 동주사명(東廚司命)이 되어 버렸고, 조왕신 신상에는 ‘司命神位(사명신위)’, ‘九天東廚司命張公定福君之神位(구천동주사명장공정복군지신위)’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편, 조왕을 ‘술 취한 사령[醉司命]’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왕신을 하늘로 올려보낼 때 술 찌꺼기를 아궁이 위에 붙여 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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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조왕 단지
부엌의 조왕 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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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의 성별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으로 보기도 하는데, 중국 장규(張奎)의 『경설(經說)』에서도 조왕신을 신통력이 있는 여신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조왕신의 유래와 관련하여 등장하는 인물을 보면 염제(炎帝), 황제(黃帝), 오(奧), 축융(祝融), 괄(髺), 별신(星神), 송무기(宋無忌), 소길리(蘇吉利), 선(禪), 장단(張單), 외(隗), 장자곽(張子郭) 등으로 남자 성이 많이 등장한다. 현재 중국의 조왕신 그림을 보면 각진 얼굴, 큰 귀에 긴 수염을 한 외모이고, 한대(漢代) 때의 문관 관복과 관모를 쓴 모습이거나 도교 도사들이 입는 저고리와 관을 쓰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사찰에서는 남성의 조왕신을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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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사의 조왕신
보문사의 조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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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
조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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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의 조왕
법주사의 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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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왕의 그림은 조왕신 단독으로 나오거나 부인과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그림 위쪽 동쪽에는 조왕이, 서쪽에는 조왕 부인이 나란히 앉아 있고, 중간에는 향과 촛불이 그려져 있어 늘 조왕신을 섬기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림 하단 서쪽에는 부인네가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고, 동쪽에는 어린 시중이 말고삐를 잡고 있다. 이 말은 조왕이 하늘로 올라갈 때 타고 갈 말이다. 그 밖에도 조왕 내외와 시중들만 등장하는 경우도 있고, 옥황상제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조왕 부인 없이 조왕신 단독으로 등장하는 경우에는 그림 가운데에 조왕신이 서 있고, 조왕 뒤쪽에는 어린 동자 둘이, 앞쪽에는 신하 두 명이 서 있다. 조왕의 모습은 왕 또는 황제로 승격된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조왕신은 조왕신 단독으로 보이며, 조왕신 주변에 장군이나 동자들이 서 있다. 조왕의 모습은 중국과 마찬가지로 황제로 표현하며,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기록하는 모습이다. 그 이외에도 중국의 조왕은 문신, 판관, 시중 등 7인이 등장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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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의 조왕신
용문사의 조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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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원사 조왕의 모습
봉원사 조왕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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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왕신은 옥황상제에게 한 가정에서 일어난 일 년 동안의 일을 보고하는 직책을 수행한다. 한나라와 동진 때 이와 같은 기록이 보이기 시작하며, 가정에서는 크고 작은 일이 있으면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 평안과 보호를 기원한다. 조왕신 그림 양쪽에 있는 “上天言好事(하늘에 올라가 좋은 일만 말하기) 下界保平安(하계 평안하게 보호)”, “上天言好事(하늘에 올라가 좋은 일만 말하기) 回宮降吉祥(돌아올 때 길상 내려주기)”, “世上司命主(세상은 사명이 주인) 人間福祿神(인간에는 복록신)”이라는 글귀는 조왕신에게 가정을 잘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중국에서 조왕신에게 바치는 제물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북경에서는 고기, 엿, 떡 등을 제물로 바치 는데 엿과 떡은 조왕신의 입을 붙게 하는 것으로 옥황상제를 찾은 조왕신이 제대로 입을 열지 못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술을 아궁이 주변에 바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조왕신이 술에 취해 제대로 옥황상제를 찾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조왕신을 ‘술 취한 사령[醉司命]’이라고 칭한다.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도 “12월 24일 조왕신을 부엌에 붙이고, 술떡을 아궁이 입에 붙여 사명(司命)을 취하게 하였다.”라는 기록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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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화교 식당 부엌에 붙어 있는 조왕신 그림
인천의 한 화교 식당 부엌에 붙어 있는 조왕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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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동성 한 민가 부엌에 붙어 있는 조왕신 그림
중국 산동성 한 민가 부엌에 붙어 있는 조왕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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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성에서는 설탕과 쌀가루를 반죽하여 만든 ‘탕원보(糖元寶)’, 팥 소를 넣은 떡 ‘사조단(謝竈團)’을 바친다. 헌 신상을 태울 때는 젓가락으로 가마를 만들어 조왕 그림을 올려 문 밖에서 태운다.

조왕신을 보낼 때도 여러 의식이 있다. 산동성에서는 풀과 콩을 문 밖으로 뿌리는데 이는 조왕을 태우고 갈 말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다. 산동성 교동 지역에서는 매년 12월 23일에 옛 조왕신 그림을 떼고 그림 속에 있는 조왕신의 눈을 바늘로 찌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앞을 못 보게 함으로써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집안의 나쁜 일을 알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왕신의 입이라고 여기는 아궁이에 엿이나 술을 바르는 풍속이 있다.

우리나라 민가에서는 아침마다 청수를 조왕에게 올려 매일 치성을 드리며, 사찰에서도 청수는 물론 아침 10시에 공양을 올린다. 중국에서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향불을 피우고 축원을 올리며, 식당에서는 조왕에게 매일 치성을 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조왕에게 지내는 제사 중 가장 성한 것은 조왕이 하늘로 올라가는 12월 23일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솥에 밥을 가득하고 밥주걱을 꽂거나 솥뚜껑을 뒤집어 그 위에 제물을 진설한다. 이러한 내용으로 보아 조왕신은 한·중 간에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조왕신에 대한 제사 시기는 분분하다. 문헌에 보이는 제사 시기는 1월, 4월, 8월, 12월인데, 『예기』에서는 4월에, 도교 서적인 『옥압기(玉壓記)』에서는 조왕신의 생일날인 8월 3일에, 『후한서』 음흥전(陰興傳)과 『형초세시기』에서는 12월에, 『포박자』(진)와 『제조(祭竈)』(남송)에서는 12월 24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남송 이후에 민간에서는 12월 24일이나 23일에 제사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이능화는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이수광(李睟光)이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주장한 내용을 비판적으로 소개하면서 우리의 조왕신은 중국식의 수입이 아니고 단군시대부터 내려온 오랜 습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가례의절』에 조왕에 대한 신문(神文)이 실려 있으므로, 양반이 조왕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이를 모방하여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한 이수광의 의견에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또한, 조왕신앙이 송나라 때 우리나라로 들어왔거나 모방했을 것이라 고 보는 견해도 잘못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과 우리나라의 조왕신앙에 나타나는 관념이나 종교적인 행위 등은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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