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2. 가신의 종류
  • 가신의 종류
  • 7. 뒷간신
정연학

뒷간신은 변소 귀신, 부출 각시, 측도 부인, 측신 각시, 정낭 귀신 등 다양하게 부른다. 명칭으로 보아 뒷간신은 여신이고 다른 집지킴이와 달리 귀신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숭배하는 신적 존재라기보다는 잡신 또는 잡귀로 생각하는 정도다. 뒷간은 집 밖에 있는 공간으로, 집안의 안택이나 고사 때 떡과 술을 부어놓는 정도이며 중국처럼 양잠과 관련된 뒷간신의 신앙의례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중국에서 뒷간신[紫姑]은 ‘갱삼고양(坑三姑孃)’·‘삼고(三姑)’·‘칠고(七姑)’·‘마고(茅姑)’·‘자고(子姑)’·‘척고(戚姑)’·‘기고(箕姑)’·‘측고(廁姑)’·‘동시낭(東施娘)’121)施鸣保(清), 『闽杂记』, “闽俗妇女多諸扶紫姑神. 上諸府则在七月七日, 称为 ‘姑姑’ 下諸府则在上元夜,称为‘东施娘’.” 등으로 불리며,122)烏丙安, 『中國民間信仰』, 上海人民出版社, 1995, p.160 ; 崔小敬, 许外芳. 「“紫姑”信仰考」, 『世界宗教研究』 2005年 第2期, pp.140∼147. 문헌에서는 ‘의의(倚衣)’123)『白澤圖』, “廁神名倚衣.”·‘곽등(郭登)’124)牛僧孺, 『幽怪彔』, “廁神名郭登.”·‘후제(后帝)’125)劉敬叔, 『異苑』, “陶侃曾如廁 見數十人悉持大印 有一人朱衣上幘 自稱后帝云….” 등 구체적인 명칭이 거론되고 있다. 뒷간신의 성별은 유래담을 통해 여성임을 알 수 있다.126)유래담 가운데, ‘한나라 高祖의 비 戚夫人이 뒷간에서 呂后에게 암살당하자 후세 사람들이 척부인을 뒷간신으로 섬겼다.’는 유래담과 ‘당나라 측천무가 첩을 뒷간신으로 봉했다.’라는 유래담은 구체적인 왕조가 들어가 있다.

뒷간신은 노여움을 잘 타고 성질 또한 나쁜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뒷간신이 한 번 화를 내면 무당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있어 뒷간신은 두려움의 존재이기도 하다. “뒷간에 넘어지는 것은 귀신이 화를 낸 결과이다.”·“뒷간에 넘어져 생긴 병은 고칠 수 없다.”·“뒷간에 넘어지면 생명이 짧아진다.”·“뒷간에 넘어지면 친척이 죽는다.” 등의 속어는 뒷간신의 흉악한 모습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민간에서는 뒷간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하거나 똥독에 빠지는 경우에는 떡을 해서 뒷간신에게 바치기도 하고, 콩떡을 해서 환자에게 먹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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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신 명문(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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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을 새로 짓거나 헐어버릴 때는 길일을 택했고, 받침돌인 ‘부추돌’도 함부로 옮기지 못한다. 만약 이를 어길 때는 가족들에게 불행이 온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하늘과 땅이 맞닿는 ‘천지대공망일’에 뒷간을 수리하면 괜찮다고 여기며, 하늘과 땅이 붙는다는 것은 “하느님이 눈을 감아준다.”라는 의미로 이날에는 어떤 일을 해도 문제가 없다. 이날을 “하늘이 귀가 먹고 땅이 벙어리 되는 날”이라고 달리 표현하여 결혼, 장례식도 이날 거행하면 좋다.

강원도의 측간 각시는 언제나 긴 머리카락을 헤아린다. 사람이 갑자기 들어오면 놀란 나머지 화가 나서 머리카락을 뒤집어 씌우면, 그 사람은 병을 얻어 죽고 만다. 뒷간신은 6월 16일과 26일 등 6자가 든 날에만 머문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은 중국의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신이전(神異典)』에 적혀 있다. “측신은 매달 6일에 내려오며, 그날 그와 만난 사람은 보는 즉시 죽거나 병을 앓는다.”고 적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와 중국이 많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와 중국이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은 뒷간신 유래담에서도 볼 수 있다. 제주도 <문전 본풀이>에 보면 “남씨의 첩인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본부인과 일곱 아들을 없애려다가 들키자, 뒷간으로 달아나 자살을 하고 측도 부인이 되었다.”고 나온다.127)현용준, 「문전본풀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p.434.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와 『옥촉보전(玉燭寶典)』에서는 『동람(洞覽)』을 인용해서 뒷간신을 황제의 고귀한 딸로 표현하고 있다.128)『洞覽』, “帝喾女將死 云生平好樂 至正月可以見迎.” 그 중 북송 때 소식(蘇軾)이 기록한 뒷간신의 유래담을 보면 다음과 같다.129)苏轼(北宋), 『子姑神记』, “妾寿阳人也, 姓何名媚, 字丽卿, 自幼知读书属文, 为伶人妇。唐垂拱中, 寿阳刺史妾夫, 纳妾为带妾, 而其妻嫉悍甚, 见杀于厕, 妾虽死不敢诉也. 而天使见之, 为直其冤, 且使有所职于人间. 盖世所谓子姑神者, 其类甚众, 然未有如妾之卓然者也…….”

첩 하미(何媚)는 자가 여경(麗卿)이고 어려서부터 학문을 습득하였는데, 수양자사(壽陽刺史)가 하미의 남편을 죽이고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았다. 그의 처가 하미를 질투하자, 하미는 뒷간에서 자살을 하였고 구천을 떠돌자 그녀를 뒷간신[子姑神]으로 삼았다.

청나라 때 왕당(王棠)이 쓴 『지신록(知新錄)』에도 소식의 조왕신 유래담이 보이며, 뒷간신을 가리키는 ‘칠고(七姑)’가 ‘척고(戚姑)’에서 음이 변해서 생긴 용어라고 설명하고 있다.130)王棠(清)『知新錄』 卷9, “紫姑姓何字丽卿.为人妾, 妻嫉, 杀之于厕. 天帝命为厕神, 後人于厕中祀之. 东坡文集有子姑神传. 传有三姑, 问答善吟咏, 即其人也. 又有戚姑, 相传戚夫人是也. 按 ‘七姑’ 定即 ‘戚姑’之讹.” 청대 육풍조(陆風藻)의 『소지록(小知錄)』에서는 수양자사(壽陽刺史)의 이름이 이경(李景)이라고 명확히 나오고, 자살한 날짜도 정월 보름날로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131)“嫉之, 正月十五夜杀于厕中. 天帝哀之, 封为厕神. 人于正月望夜迎祀之, 祝曰, 子胥(婿名) 不在,曹姑(大妇)亦归 可占众事.” 다만, 첩이 처에게 질투를 한다는 것이 중국과 다른 점이다. 그러나 젊은 첩이 죽었다는 것은 공통점이며, 그러기에 뒷간신을 무서운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정월 보름날 뒷간에서 뒷간신을 영접하고 일 년 동안의 길흉화복을 점친다. ‘뒷간신[紫姑] 점’은 남조에서 당나라 때 뽕나무 농사가 잘 되는지를 점치는 풍속에서 시작되었다. 『이원(異苑)』의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은 정월 보름날 밤에 첩의 형체를 만들어 뒷간과 돼지칸 주변에서 그녀를 맞이하였고, 이때 “오자서(伍子胥, 남편)이 죽었고, 조씨(처)가 죽었으니 나와서 놀아라.”고 축원을 한다. 그리고 뒷간귀신의 신체를 들어 무거우면 신이 강림한 것으로 여겨 술과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고 양잠의 풍년을 점쳤다. 이 기록을 통해 유경숙(劉敬叔)이 『이원(異苑)』을 쓴 남북조시기에 뒷간신을 청해 양잠의 풍흉년을 점치는 풍습이 성행하였음 알 수 있다.

그 밖에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정월 보름날 뒷간신을 맞이하여 누에치기의 풍흉년을 점쳤다.”고 적고 있으며,132)宗懔(梁), 『荊楚歲時記』, “正月十五其夕迎紫姑以卜將來蠶桑 幷占衆事.” 『옥촉보전(玉燭寶典)』에도 “저녁에 뒷간신을 맞이하여 점을 쳤다.”고 기록되어 있다.133)杜臺卿(隋), 『玉燭寶典』, “其夜則迎紫以卜.” 또 『형초세시기』134)『荊楚歲時記』, “俗云厠溷之間 必須靜 然後至 紫姑.”와 『옥촉보전』135)『玉燭寶典』, “俗云厠溷之間 必須淸淨 然後能降紫女.”에는 뒷간을 깨끗이 청소해야 뒷간신이 강림한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에도 키와 빗자루를 가지고 뒷간신의 신체를 만들어 제사를 지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남자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뒷간신이 강림하지 않는다고 여긴다.136)高洪興, 『黃石民俗學論集』, 上海文藝出版社, 1999, pp.307∼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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