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3권 삶과 생명의 공간, 집의 문화
  • 3 가신
  • 03. 한국 가신의 신체에 대한 이견
정연학

우리나라에서 가신의 신체로 여긴 것의 유형을 구분하면, 동물·식물·기물·복식·그림·사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동물로 등장하는 신체로는 주로 업과 관련된 뱀(긴업)·족제비·두꺼비 등이 포함되고, 식물로는 쌀과 보리·콩·미역·짚 주저리·엄나무·솔가지, 기물로는 바가지·단지·고리·포와 한지·돌·돈, 복식으로는 괘자·모자·무복, 그림으로는 문신과 세화, 사람으로는 인업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 가신의 신체로 삼는 대상 중에 곡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괘자나 벙거지를 고리짝에 담아 신체로 삼는 점에 근간을 두고 가신신앙이 곡령신앙과 애니미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하였다.166)인병선, 「가신」, 『민학회보』 24, 1990, pp.3 ∼10. 또한, 신체를 크게 용기류와 한지류로 구분하기도 하였고,167)박호원, 「가신신앙의 양상과 특성」, 『민학회보』 24, 1990, p.13. 바가지형 신체가 단지와 같은 용기류 신체보다 더 고전적이라고 보았다.168)김태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편), 문화재관리국, 1969, pp.89∼90 ; 김택규, 『한국농경세시의연구』, 영남대학교 출판부, 1985, p.330. 김알지를 탄생시킨 황금궤짝을 조상단지의 기원으로 삼기도 하였다.169)장주근,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 1975, p.91.

그런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신의 신체로 보기에는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의문점이 있다.

첫째, 가신에 대한 명칭은 신·왕·대감·장군·할아버지·할머니 등 인격성을 부여하면서도 정작 신체의 형태에는 인격이 없다. 따라서 신격이라고 부르는 여러 유형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자 양식이고, 폐백이자 옷인 셈이다. 신에게 바친 물건이기 때문에 그 자체에도 영험함을 부여하여 함부로 옮기거나 만지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감이라고 모신 무복은 신과 무당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신격 자체는 아닌 것이다. 단지나 바가지에 들어 있는 쌀과 콩 등의 곡물도 신에게 바치는 양식이다. 조왕과 칠성신에게 바치는 물도 정화수이지 신체로 보기에는 곤란하다. 삼신에게 바치는 쌀과 미역170)문정옥, 앞의 책, p.34.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가신에 대한 신체가 구체적으로 보이는 사례도 있다. 황해도에서는 나무를 깎아 만든 ‘홍패’를 조상 신위로 여겼고,171)이문웅,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황해·평안남북편, 문화재관리국, 1980. 충청북도 지방에서는 칠성의 신체를 북두칠성으로 여겼다.172)현용준,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북편, 문화재관리국, 1977. 부안 변산 지역에서는 터주신의 형체에 대해 50척이 넘는 거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며, 풍농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설명하고 있다.173)김형주, 『민초들의 지킴이신앙』, 민속원, 2002, pp.30∼31. 남성주를 위한 엽전 3개, 여성주를 위한 홍황남(紅黃藍) 3색실을174)赤松智城·秋葉 隆, 앞의 책, pp.161∼163. 신체로 보지 않고 엽전은 부귀, 3색실은 장수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175)김태곤, 『한국민간신앙연구』, 집문당, 1983, p.58. 또한, 김선풍은 강원도 강릉의 경우 성주가 성주단지와 종이성주가 동시에 공존하는데, 성주 단지의 벼를 양식으로 보기도 하였다.176)김선풍·이기원,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강원편, 문화재관리국, 1978.

둘째, 신체 표시 없이 관념적으로 모시는 것을 ‘건궁’이라고 하는데, ‘건궁터주’·‘건궁조왕’이라고 해서 흔히 ‘건궁’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177)장주근,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 1975, p.90. 그런데 ‘건궁성주’라고 해도 가정에서는 성주에게 축원을 하며, 성주는 보이지 않는 신임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신의 그림이나 신상 없이 가신에게 고사를 지내는 일체의 행위는 ‘건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보이지 않는 신에게 쌀 등의 양식과 천·옷과 같은 폐백을 드리는 것이다.

가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집안의 신령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해 모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령들이 삐칠 수 있으므로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령의 인간에 대한 태도도 인간이 하기 나름인 것이다.178)이필영, 「충남지역 가정신앙의 제 유형과 성격」, 『샤머니즘 연구』, 한국샤머니즘학회 2001, p.25. 아울러 신에게 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가신이 집안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고 여겨 정기적으로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폐백과 음식을 바친 장소는 신이 봉안되어 있는 신성한 영역이 된다.

셋째, 사찰의 조왕은 그림이나 글씨로 신상을 표현하는 반면 일반 민가에서는 보이지 않는데, 둘 사이에 모순점이 있다. 사찰의 조왕신은 민가의 가신과 마찬가지 기능을 하며, 사찰에서는 조왕에게 새벽 4시에 청수를 바치고, 오전 10시에 공양을 한다. 우리 민가에서 아침 일찍 조왕단지의 물을 갈아주는 것은 청수를 바치는 행위이며, 아침에 먼저 푼 밥 한 공기를 부뚜막 한쪽에 두었다가 먹는 것도 공양을 하는 셈이다. 또한, 무속179)장주근, 「가신신앙」,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p.63.이나 부군당, 성황당의 신상들은 모두 그림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가신에서는 문신을 제외하고 이러한 현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 신들 앞에 바친 쌀, 청수 등을 가신의 신체로 해석하는 것은 대단히 곤란하다.

넷째, 우리나라에서도 신상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처용설화에 신라인들이 역신이 집안을 넘보지 못하도록 처용의 화상을 걸었으며,180)나경수, 「문신기원신화로서 처용설화와 처용가의 기능확장」,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12, pp.63∼89. 무당들은 신당에 몸주신과 그 외에 자신이 모시는 신의 형상을 그림이나 신상, 글씨, 종이를 오려 전발로 모신다. 부군당이나 성황당의 신들도 그림이나 신상, 글씨 등으로 표현하는데 유독 가신들만 인간을 닮은 신상의 그림 등이 없는 ‘건궁’인 셈이다.

다섯째, 대주를 상징하는 성주를 비롯하여 조상, 삼신, 조왕, 터주, 업, 철륭, 우물신, 칠성신, 우마신, 측신, 문신 등이 나름의 질서를 유지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삼신을 성주나 조령보다 우위에 있는 곳도 있으며,181)김태곤,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편, 문화재관리국, 1969, p.256. 조왕을 성주나 삼신보다 상위의 신 격으로 여기는 곳182)장주근,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북편, 문화재관리국, 1974, p.160.도 있는 것으로 보아 가신의 위계질서가 결코 정연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주·터주·제석·조령·터주 등은 남성, 조왕·측신·삼신 등은 여성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조령의 경우 남성보다도 여성인 경우가 많고,183)장주근, 『한국의 향토신앙』, 을유문화사, 1975, pp.92∼93. 경기도 화성 지역 무당이 부르는 성주굿에서는 조왕이 할아버지 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부로 등장하기도 하고,184)김명자, 「무속신화를 통해 본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183. 사찰의 조왕은 아예 남성이다. 조왕이 남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부권 중심의 유교문화의 영향이며, 애초에는 여성신이었으나 점차 남성신으로 대체되거나 혹은 남녀 신이 공존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하나,185)김명자, 「무속신화를 통해 본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한국의 가정신앙』 상, 민속원, 2005, p.185. 반대로 조왕신은 원래 남성이었으나 부엌이 여성들의 공간으로 인식되어 신체의 개념도 바뀌게 된 것이다. 측신도 성별에 대해 대부분 여신임을 강조하나, 뒷간신으로 ‘후제(后帝)’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을 들어 애초에 남신임을 주장하기도 한다.186)潘承玉, 「浊秽厕神与窈窕女仙-紫姑神话文化意蕴发微」, 『绍兴文理学院学报』 第20卷 第4期, 2000, pp.40∼44.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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