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2. 음악과 이념
  • 조선 예악과 제사
송지원

조선의 궁중에서 행하는 제사는 오례 중의 길례로서 행해졌다. 『국조오례의』에 따르면 조선시대의 제사는 지내는 대상에 따라 용어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즉, 천신(天神)에 지내는 것은 ‘사(祀), 지기(地祇)에 지내는 것은 ‘제(祭)’, 인귀(人鬼)에 지내는 것은 ‘향(享)’ 그리고 문선왕 즉 공자에게 지내는 것은 석전(釋奠)이라 하였다. 또 제사의 등급을 대사(大祀)·중사(中祀)·소사(小祀)·기고(祈告)·속제(俗祭)·주현(州縣)으로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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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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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에는 사직·종묘제향 등이, 중사에는 선농(先農)·선잠(先蠶), 그리고 문묘 제례 등이, 소사에는 명산대천, 둑제(纛祭) 등이 포함된다. 기고는 기도와 고유의 목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홍수나 가뭄, 전염병, 병충해, 전쟁 등이 있을 때 기도하였고, 책봉, 관례, 혼례 등 왕 실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고유(告由)하여 각각 해당하는 대상에 제사를 올렸다. 속제는 왕실의 조상을 속례(俗禮)에 따라 제사하는 것이며, 주현은 지방 단위에서 지방관이 주재자가 되어 사직과 문선왕, 여제(厲祭) 등의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 가운데 대사와 중사 소사가 궁중에서 행하는 주요 제사에 속한다.

대·중·소의 등급은 실제 제사에서 헌관(獻官)의 수나 위격, 재계(齋戒)하는 일 수, 음악의 사용 유무, 제기의 종류와 숫자 등의 면에서 구분된다. 이들 제사에는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음악이 사용되었다. 이때의 음악은 넓은 의미의 악에 해당하는 악·가·무를 모두 포함한 형태로 연행된다.

길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종묘에 올리는 종묘 제향과, 국토의 신과 곡식의 신에 제사하는 사직제로 이 둘은 대사에 속한다. 또 공자와 그의 제자, 중국의 역대 거유(巨儒), 조선의 역대 유학자를 모신 문묘에 제사하는 문묘제와 농사신에게 제사하는 선농제(先農祭)와 양잠신에게 제사하는 선잠제(先蠶祭)를 비롯하여 산천제, 기우제 등의 제사도 중요하다. 이러한 모든 제사 행위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인귀에 대해 사람으로서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예와, 천·지·인 삼재사상을 음악적으로 드러내는 악을 구비하여 행해졌다.

종묘제례악은 세종대에 만들어진 회례악무를 세조대에 제례악무로 만든 것이다. 당상(堂上)에서 연주하는 등가(登歌)와 당하(堂下)에서 연주하는 헌가(軒架) 그리고 묘정(廟廷)에서 열을 지어 추는 춤인 일무(佾舞)가 의례와 함께 특정 절차에서 연행된다. 여기에서 등가는 하늘(天)을 상징하고, 헌가는 땅(地)을 상징하며, 일무는 사람(人)을 상징하여 천·지·인 삼재 사상을 악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였다. 일무에서 춤을 추는 열의 수는 제사의 대상에 따라 차등화되는데, 천자(天子)는 팔일무(八佾舞), 제후는 육일무(六佾舞), 대부는 사일무(四佾舞), 사 는 이일무(二佾舞)이다. 조선왕조는 제후국의 위상을 따라 육일무를 채택하였고, 고종이 황제로 등극한 대한제국시기부터 현재까지는 64인이 열을 지어 추는 팔일무를 연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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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1910)
종묘제례악(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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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의 악무는 왕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왕의 문덕을 칭송하는 내용은 보태평(保太平), 무공을 칭송하는 내용은 정대업(定大業)이다. 보태평은 문무(文舞)를 추고 정대업은 무무(武舞)를 춘다. 신을 맞이하는 영신례(迎神禮),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 때 보태평의 악무를 연행하며,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아헌례(亞獻禮)와 마지막 술잔인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종헌례(終獻禮) 때 정대업의 악무를 연행한다. 육일무를 기준으로 보면, 문무를 출 때는 왼손에 약(籥)을, 오른손에 적(翟)을 들고 추며, 무무(武舞)를 출 때는 앞의 2줄 12명은 검(劍), 중간 2줄 12명은 창(槍), 뒤의 2줄 12명은 궁시(弓矢)를 들고 춘다. 그러나 성종대 이후 궁시는 쓰지 않고 앞의 3줄은 검, 뒤의 3줄은 창을 들고 추었다. 현재는 64명의 팔일무를 추는데, 앞의 4줄은 목검(木劒), 뒤의 4줄은 목창(木槍)을 들고 춤을 춘다.

사직제례를 행하는 사직단은 동쪽의 사단(社壇)과 서쪽의 직단(稷壇) 두 개의 단으로 되어 있는데, 사단에는 국토의 신인 국사(國社)의 신주를, 직단에는 오곡의 신인 국직(國稷)의 신주를 모셔 놓는다. 종묘나 문묘, 선농, 선잠의 신위는 북쪽에서 남향하여 두는 데 비해 국사, 국직의 신은 남쪽에서 북향하여 둔다. 북쪽이 음이고 남쪽은 양이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을 수립하고 조선이 황제국임을 선언하면서 국사와 국직은 태사(太社)와 태직(太稷)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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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단
사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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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사직제례악은 1430년(세종 12) 아악을 정비할 당시에 『주례(周禮)』를 근거로 정비되었다. 지기(地祇)에 제사할 때는 당하의 헌가에서 태주궁(太簇宮)의 선율을 연주하고, 당상의 등가에서 응종궁(應鍾宮)의 선율을 노래하는 음양 합성의 원칙을 따랐다. 즉, 헌가에서 양율인 태주궁을 연주하고, 등가에서 음려인 응종궁의 선율을 연주함으로써 음과 양을 조화롭게 하는 연주를 실현한 것이다.

사직제례에서 음악이 연주되는 순서는 영신, 전폐, 진찬(進饌), 초헌, 아헌, 종헌, 철변두(徹籩豆), 송신의 순이다. 사직제례악의 악대는 세종대 초기만 하더라도 고제(古制)를 따라 등가에 현악기와 노래를 편성하고, 헌가에 관악기를 편성하였다. 그러나 1430년 이후 등가에도 관악기를 설치하면서 고제와 어긋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전통이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다. 사직제례의 일무는 조선조에는 육일무, 대한제국시기에는 팔일무를 추었다. 문무를 출 때는 왼손에 약, 오른손에 적을 들었고, 무무를 출 때는 왼손에 간(干), 오른손에 척(戚) 을 들었다. 간은 방패 모양으로 생명을 아낀다는 뜻을 지니며, 척은 도끼 모양으로 업신여김을 방어한다는 뜻을 지닌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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