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3. 의례와 상징
  • 문에서 행하는 즉위의례
송지원

선왕이 승하하였을 때, 반정(反正)을 통해 정권을 잡았을 때, 왕이 자리를 물려줄 때, 왕에서 황제로 오를 때 즉위의례를 행한다. 선왕의 사망으로 왕위를 이어받는 경우에는 ‘사위(嗣位)’라 하여 오례 중의 흉례에 속한 의례를 행하였다. 이때에는 선왕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차마 그 자리에 나아가지 못하는 마음으로 의례에 임하였다. 또 정종, 태종, 세종의 경우와 같이 선왕이 살아 있으면서 자리를 물려주는 선위(禪位)의 경우 흉례의식과는 다른 의미의 즉위의례가 문이 아닌 전(殿)에서 행해졌다. 세조, 중종, 인조와 같은 경우 반정으로 왕위에 올라 즉위의례를 행하였으나 이는 예외적인 형태이다.

선왕이 승하하여 그 자리를 이어받는 사위의례를 행할 때 사람들은 잠시 상복을 벗는다. 문무관은 조복(朝服)으로 왕이나 왕세자는 면복(冕服)으로 갈아입는다. 사위의례를 행할 때만큼은 최대의 예복인 면복을 차려 입음으로써 새로운 출발에 대해 경건한 마음으로 임한다. 장악원은 악대를 전정(殿庭)의 남쪽에 벌여 놓는다. 물론 연주는 하지 않는다. 선왕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을 다해야 하는 상중이기 때문이다.

노부와 의장, 군사들도 벌여 놓아 왕의 위엄을 과시한다. 사위의례의 핵심인 선왕의 유교(遺敎)와 대보(大寶)를 받은 후 왕이 근정문(후에는 인정문) 한가운데에 남향으로 설치해 놓은 어좌에 오르면 종친과 문무백관은 물론 악공, 군교들도 “천세, 천세, 천천세!”라고 산 호(山呼)와 재산호(再山呼)를 외친다.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네 번 절한 후 의례를 마친다. 의례가 끝나면 참여자 모두가 다시 상복으로 갈아입고, 같은 장소에서 행해지는 교서 반포의례에 임한다. 새로운 왕은 (근정)문에 설치해 놓은 어좌 앞에서 교서를 반포하여 온 천하에 즉위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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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인정문
창덕궁 인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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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계승의 방식 가운데 가장 정상적인 형태는 선왕이 승하하여 그 뒤를 이어 즉위하는 사위였다. 사위의 의례에서 유교와 대보를 받은 후에는 반드시 근정문 혹은 인정문의 한가운데에 어좌를 설치해 놓고 거기에 오르도록 하였다. 새로운 왕이 탄생하는 즉위의례이지만 선왕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하고 즉위해야 하므로 정전에서 대대적으로 행하는 것을 꺼린 까닭이다. 문에서 의례를 행함으로써 선왕이 잘 닦아 놓은 위업을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겸허하게 이어 받은 후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는 상징적 의미도 부여하였다. 문이란 사람이 드나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왕의 즉위의례에서는 이와 같은 함축된 의미를 수반한다. 문에서 즉위의례를 행하는 맥락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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