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1 음악의 근원
  • 03. 의례와 상징
  • 숭례문에서 행한 선로포의(宣露布儀)
송지원

문은 이처럼 ‘소통’의 상징도 있지만 ‘포고’하는 장소의 의미도 있다. 역적을 토벌하거나 전쟁에 이긴 후 승리한 사실을 알리는 장소도 문이었다. 1728년(영조 4) 3월 15일, 경종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목으로 난을 일으킨 이인좌는 청주성을 함락시킨 후 서울로 오르는 길이었다. 그러나 3월 24일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 의해 격파되었고 청주, 영남, 호남 등에 남아 있던 무리들도 모두 무너졌다. 난을 진압하는 데에는 당시 병조판서 오명항(吳命恒)의 공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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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명항 초상
오명항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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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올라온 진압군은 적을 물리치고 승리한 사실을 노포(露布)에 적는다. 왕은 노포를 펴서 열람한 후 그 내용을 만방에 선포하도록 한다. 선포한 뒤에는 적의 수급을 바치는 헌괵(獻馘) 절차가 이어진다. 이러한 의례를 ‘선로포의’라 하는데, 『국조오례의』에 그 절차가 상세히 나와 있다. 노포란 글을 봉함하지 않고 여러 사람이 보고 들어 알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후위(後魏)가 전승 사실을 명주 천에 적어 높은 장대에 매달아 천하에 알린 후에 ‘노포’라 불리웠다. 이후 선로포의를 행할 때에는 긴 명주 천에 승전 사실을 적어 4척 길이의 장대에 매어 그 내용을 게시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노포의 위아래에는 붉은 실로 판축(版軸)을 묶어 사용하였다.

선로포의는 숭례문에서 행해진다. 누각의 정중앙에 왕의 어좌를 남향하여 설치해 놓는다. 병조는 헌괵, 즉 적의 머리를 바치기 위한 헌괵계(獻馘階)를 문 밖에 설치하고, 괵을 매다는 장대인 헌괵간(獻馘 竿)을 연지(蓮池) 주변에 마련해 놓는다. 의례를 집행하기 위한 관원으로는 노포를 받는 사람, 노포를 펴는 사람, 노포를 선포하는 사람, 의금부 당상 그리고 적의 머리를 받고 전하기 위한 수괵관(受馘官)과 헌부장교(獻俘將校)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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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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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준비를 마치면 문무백관, 유생 등이 각자의 위치에 도열하고, 의장을 갖춘 왕의 거가(車駕)가 남대문의 누각에 도착한다. 왕은 말에서 내려 여(輿)에 오른다. 누각의 동쪽 문 밖에 이르면 왕은 여에서 내려 누각 위로 올라 중앙에 마련해 놓은 어좌에 오른다. 승지와 사관, 종친, 문무백관, 유생 등은 미리 준비해 놓은 자리로 나아간다.

군악이 승전곡을 연주하는 가운데 의식이 시작된다. 승전곡의 정확한 곡명은 나와 있지 않지만 고취(鼓吹)계열의 음악일 것이다. 도순무사가 전한 노포를 근시(近侍)가 받아 무릎을 꿇고 왕에게 올린다. 왕은 이를 열람한 후 노포를 펴서 선포하도록 한다. 병조는 그 내용을 팔방(八方)에 알린다. 선포를 마친 후에는 적의 머리를 받는 헌괵 절차가 이어진다. 헌괵장교가 괵을 가진 군인을 이끌고 헌괵계 앞에 선다. 헌괵장교는 적의 머리를 담은 괵함을 수괵관에게 준다. 수괵관은 이를 헌괵계에 올려놓고 살핀다. 살피기를 마치면 어좌 앞에 나아가 수급(首級)이 실제의 것임을 왕에게 아뢴 후 이를 헌괵간에 매달도록 한다. 이러한 절차를 모두 마치면 각자의 자리에 서서 왕에게 4번 절한 후 의식을 마친다. 왕의 거가는 다시 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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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서례』의 노포
『국조오례서례』의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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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의례를 문 앞에서 행하는 일은 큰 상징을 지닌다. 겸허한 마음으로 선왕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하는 왕이 정전의 너른 공간에서 즉위의례를 행한다는 것은 관문을 아무런 댓가 없이 통과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인식하였던 듯하다. 오래도록 비가 내려 사람의 일을 모두 막아 버리는 수마(水魔)를 물리치도록 기원하는 일도 문에서 행하였다. 수마란 소통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었다.

그 밖에 왕의 거가가 궁으로 돌아올 때 백관이 왕을 맞이하는 곳도 사대문이다. 왕의 환궁을 환영하는 장소로서의 사대문의 모습도 있다. 이처럼 문은 드나드는 곳만이 아니다. 겸허함의 문, 소통하는 문, 선포하는 문, 환영하는 문 등, 문의 상징은 문의 의미만큼 다양하다. 이처럼 문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로 인해 조선시대의 주요 의례들이 문에서 행해졌다. 의례와 상징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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