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1. 왕의 춤
  • 정종, 조선 최초로 춤을 춘 왕
조경아

조선왕조를 건국한 태조는 재위 7년 만에 일어난 왕자들의 권력투쟁에 실망하여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후 태조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오른 정종(定宗, 1357∼1419)이 2년간(1398∼1400) 재위하였다.89) 한영우, 『다시찾는 우리역사』, 경세원, 2004, p.277.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정종은 재위 기간에 조선왕조 최초로 춤을 춘 왕이었다. 정종의 춤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은 임금 정종과 상왕인 태조가 함께 춤을 춘 경우이다. 태조가 왕위에 있을 때는 춤을 춘 기록이 보이지 않으나, 왕 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1399년에 정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아버지 태조에게 나아가서 헌수(獻壽)하였을 때이다.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은 당나라의 고사를 예로 들면서, 태종이 고조(高祖)에게 헌수(獻壽)하고 일어나 춤을 추니 고조도 일어나 춤추었다며, 정종에게 일어나 춤추기를 청하였다. 정종은 결국 일어나서 춤을 추었고, 태조도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었다. 임금과 전 임금의 관계이자, 아버지와 아들 관계인 두 사람이 즐거이 어우러져 춤을 춘 것이다.90) 『정종실록』 권1, 정종 1년 6월 1일 경자. 4개월 뒤 다시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태조에게 갔을 때도 정종은 상왕과 함께 춤을 추었다.91) 『정종실록』 권2, 정종 1년 10월 19일 을묘. 이처럼 정종과 태조가 함께 춤을 춘 경우는 빈번하였다.

확대보기
조선 태조 어진
조선 태조 어진
팝업창 닫기

두 번째 유형은 임금과 세자 이방원이 더불어 춤을 춤 경우이다. 1400년에 공식적인 연향이 끝나고, 사석의 성격이 강한 술자리에서 임금과 세자와 신료 몇 명이 참가하였고, 세자와 임금이 더불어 춤을 추었다. 내관은 임금인 정종이 아버지인 상왕과 춤을 춘다면 예에 어긋나지 않지만, 세자와 춤을 춘 것은 예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정종은 취해서 알지 못한다며 비난을 피해가려 하였다.92) 『정종실록』 권3, 정종 2년 3월 4일 기사. 그러나 이후에도 임금과 세자가 함께 어울려 춤을 추는 기록이 계속 등장하는 것을 보면, 내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임금 자신은 세자와 춤을 추는 일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듯하며,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 정도는 용인하였던 듯싶다.

세 번째 유형은 임금과 신하가 더불어 춤을 춘 경우이다. 1400년 7월, 정종의 탄신일에 모두들 술에 취하여 종친, 재상, 임금, 세자가 어울려 춤을 추었다.93) 『정종실록』 권5, 정종 2년 7월 1일 갑자. 탄일의 공식적인 하례를 마치고, 편전에서 일 을 의논한 뒤에 헌수하는 자리에서 춤판이 벌어진 것이다. 1400년 9월, 후원(後苑) 양청(凉廳)에서 이거이(李居易)·이저(李佇)·이무(李茂)·조영무(趙英茂) 등을 위로하기 위해 술자리를 베풀었을 때, 정종은 참석하였던 사관을 내보내고 술이 취하자 일어나 춤을 추기도 하였다.94) 『정종실록』 권5, 정종 2년 9월 8일 기사.

정종시대는 즐거워서 춤이 나오는 편안한 시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대부분의 정사가 이방원의 뜻에 의해 이루어졌고, 정종은 힘없는 왕이었다.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기는 등 민심을 수습하려는 방책을 썼으나 정치적으로 동생의 대리인에 불과한 입장이었다. 정종은 나랏일을 돌보기보다는 격구(擊毬)나 사냥 등 놀이에 골몰하며 유유자적하였다. 이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터득한 정종의 처세 방식이었다.95) 김경수, 『조선왕조사전』, pp.51∼52. 정종은 1400년 왕위를 양위하고 상왕의 자리로 물러나서 짬짬이 취미인 격구와 매사냥, 온천욕 등을 하는 것 외에는 외출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사실상 유폐된 생활로 하루하루를 보냈다.96) 이성무, 『조선왕조사』1, 동방미디어, 1998, p.160. 그런 중에도 동생 태종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즐겨 춤추기도 하였다. 정치적으로 불운하였던 정종이 즐겨 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종은 개인적으로 격구나 사냥을 즐기는 등 호방한 기질을 갖고 있었음을 볼 때, 타고난 천성에 의해 춤추기를 좋아하였던 것 같다. 또한, 술자리에서나마 훨훨 날갯짓을 하여 몸의 자유를 누리고자 춤추지 않았을까 싶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