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4권 음악, 삶의 역사와 만나다
  • 3 조선시대 사람들의 춤
  • 02. 선비의 춤
  • 왕 앞에서 춤추는 신하
  • 1. 개국공신의 충심을 담은 춤, 정도전
조경아

“임금과 신하는 엄숙하고 공경함을 주로 삼으나, 한결같이 엄숙하고 공경하기만 하면 자연히 서로 멀어지고 정이 통하지 않게 된 다. 그런 까닭에 연향을 만들어 음식을 풍부히 차리고 부드럽고 성실하게 하고 깨우침을 희망”하였다.132) 鄭道傳, 『삼봉집』, 『조선경국전』 예전, 권13 연향. 조선 전기는 이러한 인식 아래 군신의 정이 통하는 술자리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춤을 권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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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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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권유로 신하가 춤을 춘 사례로 정도전의 춤을 살펴보기로 한다. 태조 4년(1395) 초겨울 밤에 태조가 정도전 등 여러 훈신들을 불러 술자리를 베풀 때였다. 한창 술자리가 무르익자 태조는 정도전에게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경 등의 힘이니, 서로 공경하고 삼가서 자손만대에까지 이르기를 기약함이 옳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정도전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책을 포숙(鮑叔)에게 묻자, 포숙이 가장 어려운 시절을 잊지 말라는 충언을 하였다는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였다.

이성계가 1392년 명나라에서 돌아오는 세자를 마중 나갔다가 사냥 중 말에서 떨어져 황주(黃州)에 머물렀을 때가 있었다. 정도전은 고려를 수호하려는 정몽주 일파에게 정치적으로 제거 당할 위기에 처하였던 그 시절을 잊지 마시라고 당부하였다. 또한, 정도전 자신도 고려를 수호하려는 세력에게 탄핵을 받고 감옥에 투옥되었던 시절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를 통해 조선의 무궁함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충언을 올렸다.

어려운 옛 시절을 상기시키는 정도전의 말을 듣고 태조는 옳다고 여기면서 정도전이 지은 <문덕곡(文德曲)>을 사람을 시켜서 노래하게 하였다. <문덕곡>은 태조가 언로(言路)를 열고, 공신을 대우해 주고, 경계를 바로잡고, 예악(禮樂)을 제정한 것을 칭송하는 내용이었다. 그 중 예악 제정과 관련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爲政之要在禮樂 / 정치하는 요령은 예악에 있다 하니

近自閨門達邦國 / 안방에서 비롯하여 온 나라에 달하도다

我后定之垂典則 / 우리 임금 법칙을 제정하여 남기시니

秩然以序和以懌 / 질서가 바로잡혀 평화롭고 즐겁구려

定禮樂臣所見 / 예악을 제정하였네, 신의 소견으로는

功成治定配無極 / 공 이루고 다스려져 무극과 짝하리라.133) 鄭道傳, 『삼봉집』 권2, 「악장」. 『악학궤범』에 실린 <문덕곡>은 정재의 형태로 이후에 재편성된 것이며, 이때 악장의 내용은 『삼봉집』에 실린 것과 일부 다르다.

태조는 자신의 공을 칭송하는 <문덕곡>을 들으며 정도전에게 눈짓을 하고, “이 곡은 경이 지어 올린 것이니 일어나서 춤을 추라.”라고 명하였다. 태조의 요청에 정도전은 즉시 일어나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정도전은 어떤 춤사위를 선보였을까. 아마도 넓은 도포자락을 느릿하게 너울너울 휘날리는 춤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정도전의 춤을 보던 태조는 다시 상의를 벗고 춤을 추라고 주문하였다. 거추장스러운 옷 때문에 춤을 추기가 불편하게 보였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조는 정도전에게 거북 갖옷을 하사하고 밤새도록 즐기다가 파하였다.134)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 10월 30일 경신.

조선 왕조의 설계자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정도전이 ‘상의를 벗고 춤을 출’ 정도로 격의 없는 춤 문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처럼 개국 초기 조선의 왕과 신하가 어우러져 춤추는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조선시대의 모습보다 훨씬 자유롭다. 정도전은 개국공신으로서 태조와 함께 나라를 세운 동료이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초 태조대의 국정 운영은 군신공치(君臣共治)로 이루어졌고, 정치권력도 국왕과 공신·재상 세력이 나누어 가졌다.135) 민현구, 「조선 태조대의 정국운영과 군신공치」, 『사총』 61, 2005, p.28. 따라서 태조와 정도전은 군신이라는 수직적 관계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을 나누어 가진 수평적 관계였기에 비교적 유연한 분위기가 마련되었던 듯하다.

조선 건국의 주역이며, 정치계의 대표격인 정도전은 춤을 포괄한 악(樂)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자유롭게 춤을 추었을까? 정도전은 “조정의 악(樂)은 군신 간의 장엄하고 존경함을 지극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산 사람 사이에서 악을 사용하면 군신 이 화합”한다고 하였다.136) 鄭道傳, 『삼봉집』, 『조선경국전』예전, 권13의 樂. 앞에서 말한 것이 신분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 서열의 측면을 강조한 내용이라면, 뒤에서 말한 것은 악의 본원적인 기능인 화합(和)을 강조한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정도전은 악이 가지고 있는 화합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왕 앞에서 춤으로 추어 이를 실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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